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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l 26. 2020

여행은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또 다른 나와 손잡고 오라

   


  작년 봄, 나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동유럽 간다는 얘기만 들어도 열병처럼 안달이 났다. 이번에는 꼭 프라하를 다녀오고 싶었다. 프라하는 오래전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된 로망의 도시였다. 하지만 해외여행을 혼자 떠나려니 더럭 겁이 났다. 아직은 연습이 필요했고, 유사시에 누군가 의지할 동행이 필요했다. 이럴 때 가장 만만한 사람은 언제나 남편이다. 그러나 남편은 여행에 별 흥미를 두지 않는 현실 만족형 인간이라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고심하던 내게 프라하 카를교 근처의 ‘레논 벽’이 눈에 번쩍 띄었다. '레논 벽'은 공산정권 치하에서 자유를 그리워하던 체코의 젊은이들이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의 죽음을 기리며 낙서로 자유를 외치기 시작한 곳이다. 사실 레논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지만, 그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 기록이니 전혀 무관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사진으로 본 ‘레논 벽’엔 낙서가 가득했다. 나는 비틀즈의 광팬이었던 남편에게 넌지시 미끼를 던져보았다.


  "당신, 존 레논 팬이잖아.

  프라하에 '레논 벽'이 있다는데, 당신도 자유의 메시지 하나쯤 남겨야 하지 않겠어?"


  여행을 떠나지 않으려고 처음부터 단체여행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배수진을 치남편의 동공이 흔들렸다. 둘만의 여행에 렌터카를 포함시키자는 제안까지 덧붙이자, 신통방통하게도 프라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시로 컴퓨터 검색을 하며 내게 프라하 관련 정보를 열심히 카톡으로  날랐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남편은 발동을 걸기가 어렵지 한번 발동이 걸리면 나보다 훨씬 책임감 있고 성실하다는 걸, 나는 제주 전원생활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배시시 회심의 미소가 흘러나왔다.


레논벽, 자유를 향한 외침들


  그로부터 여행까지 주어진 시간은 딱 한 달, 우리는 여행 준비로 마음이 바빴다. 바로 프라하행 항공권을 끊고 교보문고로 직행하였다. 프라하 관련 책들을 사 가지고 와서 서로 번갈아 읽으며 의견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일정은 주로 내가 짰는데, 프라하에 간 김에 주변 나라까지 둘러볼 생각에 욕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스케줄이 한없이 빡빡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람선 사고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보름간 렌터카로 동유럽 5개국을 돈다는 것은 패키지여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욕심이 화를 불렀으니, 우리도 조금은 내려놓아야 했다.


  결국 일정은 대폭 수정되었다. 프라하에 주로 머물며 중간에 체스키 크룸로프와 오스트리아만 렌터카 여행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그동안 여행 일정으로 마음이 크게 부대꼈던 남편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였다. 나도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 그제야 남들 따라 하는 여행이 아닌 우리만의 여행을 떠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렌터카 여행 관련 도서를 추가로 구입하고, 동유럽 영화를 섭렵하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여행 원칙을 세웠다.    


  하나,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는다.(솔직히 그럴 시간이 없었다.)

  , 짐을 최소화한다.

  , 느리고 천천히 여유 있게 다니며 많이 느낀다.

  , 프라하에 오래 머물고 사람을 만난다.

  다섯, 각자 여행 버킷리스트를 준비한다.



 

   우리는 여행에 유용한 정보를 모으는 틈틈이 넷플릭스로 동유럽 영화 보았다. 여러 편을 보았지만 두 가지가 특히 기억에 남다. 첫째는 부다페스트가 배경인 '글루미 선데이'다.  2차 대전이 배경인 이 영화는 세체니 다리 아래로 흐르는 음악의 선율이 가슴을 파고들며 슬프도록 아름다웠고, 작품성도 뛰어났다. 두 번째는 비엔나에서 촬영한 '비포 선라이즈'다. 이는 추후 '비포 선셋''비포 미드나잇'으로 연속되며 비포 시리즈가 탄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비포 선라이즈'는 영화가 끝난 후의 이야기가 더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드는 절절한 젊은 사랑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장 보고 싶었던 영화는 바로 '프라하의 봄'이었다. 오래된 영화라 넷플릭스나 왓챠에서는 찾기가 어려워 주변에 수소문까지 해놨는데, 다행히 올레 tv를 뒤지니 그곳에 있었다. '프라하의 봄'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각색한 영화다.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을 배경으로 주인공 세 남녀의 존재방식을 그렸다. 자유와 책임, 역사와 사랑 앞에서 가볍게 부유하는 인간 토마스와 사비나에 비해 테레사의 순수가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깃털처럼 가벼운 사비나도 매력적이었지만 테레사는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사유케 하였다.


  나는 원작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프라하 여행의 동반자로 데려가기로 했다. 소설의 철학적 깊이가 심오해서 조금은 난해하므로, 천천히 소설의 배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의 글을 곱씹으며 인생을 음미하고 싶었다. 나는 카를교가 보이는 블타바 강가 카페에 앉아 그 책을 읽는 것을 이번 여행의 버킷리스트로 준비했다. 남편은 '레논 벽'에 남길 짧고 간결한 자유의 메시지를 준비하였다. 우리는 몇 개의 햇반과 함께 하나의 가방을 꾸리며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때마침 박노해 시인의 시, '여행은 혼자 떠나라'가 나의 카톡을 타고 날아들었다.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둘이 떠나는 나에게 시인은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며, 대신 "돌아올 땐 또 다른 나와 손잡고 오라"속삭였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이 여행을 발판으로 앞으로는 혼자서도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신과 만나기를 기대하니, 프라하로 향하는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기 시작했다.



<여행은 혼자 떠나라>


여행을 떠날 때는 혼자 떠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득 내가 사라질 때

난무하는 말들 속에서 말을 잃어갈 때

달려가도 멈춰서도 앞이 안 보일 때

그대 혼자서 여행을 떠나라.


존재감이 사라질까 두려운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충분한 존재감이다.


여행을 떠날 때는 혼자 떠나라

함께 가도 혼자 떠나라

그러나 돌아올 땐 또 다른 나와 함께 손잡고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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