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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l 31. 2020

구시가로 떠나는 시간여행

두근두근 프라하, 빌딩에 사람이 매달렸어요~

 


  프라하를 여행할 때,

  여행자들이 걱정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집시들의 소매치기이고, 다른 하나는 도로가 돌길이라 캐리어 바퀴가 고장 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둘 다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돌길을 걸어 다니느라 샌들을 신으면 발이 불편해서 더워도 운동화를 신어야만 했다. 유럽의 돌길은 로마시대로부터 시작된다. 전차의 이동을 위해서 균일한 노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프라하의 역사는 그보다 짧지만, 그래도 천년의 시간을 버텨왔다고 생각하면 돌의 무게만큼이나 묵직하게 다가온다.               

 

  남편과 나는 매일 새벽 숙소를 빠져나와 블타바 강변의 돌길을 어슬렁거렸다. 시차가 선사해준 새벽형 인간은 여행 내내 계속되었고, 우리는 아침을 먹을 때까지 프라하의 골목을 뒤지고 다녔다. 트램과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서부터 골목과 다리, 공원에 이르기까지 돌길의 모양새가 어찌나 다양하던지 나는 그 매력에 빠져들며 눈에 띄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곤 하였다. 그렇게 돌길이 이끄는 대로 카를교를 건너 캄파 공원으로 들어섰다.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방앗간을 개조했다는 캄파 박물관은 아직 문을 열기 전이었지만, 그 앞에서 땅을 기고 있는 얼굴이 기괴한 '청동 아기들'을 만났다. 앞으로 계속 만나게 될 다비드 체르니의 작품이었다.


  강가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커다란 개가 강물에서 첨벙 대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6월의 태양이 막 이글거리기 시작해 우리도 땀이 흥건했던지라 무척이나 부러웠다. 눈이 마주친 주인에게 엄지 척을 해주고 길을 돌아섰다. 숙소 앞 슬로반스키 섬의 진입로로 들어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결혼식이 있는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멀리서 신랑 신부가 팔짱을 끼고 걸어가있었다. 순간 공원 안에 깔린 돌길이 카펫으로 보였고, 그것은 결혼의 의미가 가볍게 부유하지 않도록 무게의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였다.


다양한 문양의 프라하 돌길


  우리는 한인 숙소에서 차려준 아침밥을 두둑이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남쪽 방향으로 블타바 강변을 따라 돌길을 조금 내려가니 댄싱하우스가 나타났다.


앗, 빌딩이 춤을 추고 있네요.


  이 빌딩은 캐나다 태생의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1996년에 완공된 이 빌딩은 체코의 자유화 물결을 타고 기발한 모습으로 등장해 프라하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나는 빌딩의 전체 모습을 감상하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니, 멋진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중심을 곧게 잡은 듬직한 남자에게 살포시 안기듯 기대며 춤을 추는 이미지였다. 아코디언을 켠 듯 벽면에서는 흥겨운 리듬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건물은 직선이라는 고정관념을 깼고, 그 자체로 위대한 작품이 되었다. 건축은 단연코 예술이었다. 덩달아 즐거워진 발걸음이 한결 자유롭고 경쾌해졌다.

     

  구시가를 가기 위해 트램을 탔다. 자리에 앉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는 사이, 트램은 서서히 마법을 일으켰다. 시간은 빠르게 과거로 뒷걸음질 쳤고, 나는 어느새 중세와 근대의 어느 언저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카를교와 프라하 성뿐만 아니라 도로와 건물에도 천년의 역사가 흐른다. 시민들의 주거지인 아파트까지 과거의 건축양식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회화나 조각이 장식을 하고 있었다. 여행자의 시간은 때때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흘렀다. 시간 여행을 하는 데는 프라하가 적격이었다.

     

  우리는 바츨라프 광장에서 트램을 내렸다.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의 봄을 기대하며 1968년 체코의 자유화 운동이 일어났던 곳이다. 그러나 소련군 탱크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후, 자유화가 무산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체코는 탱크에 의해 망가진 돌길을 복원하지 않고, 시멘트를 발라 상처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했다. 바츨라프 동상을 향해 가는 길은 이렇게 돌길과 시멘트 길로 나뉜다. 국립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바츨라프 광장을 내려오는 두 갈래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인파에 나는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굴곡진 역사 속에서도 예술을 사랑하고, 전통을 지켜내려는 공동체 의식이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내심 부러웠다.


댄싱하우스(좌)와 천문시계(우)


  관광객의 행렬은 바츨라프 광장에서 구시가 광장으로 이어졌다. 시가 광장에서는 군악대의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국경일을 축하하는 듯 행사장은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하지만 구시가 광장의 최고 명소는 천문시계다. 구시청사 건물 한쪽 벽에 세워진 시계는 디자인도 멋지지만, 매시 정각에 보여주는 퍼포먼스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1410년 천문학자 얀 신델이 디자인하고 시계의 장인 미쿨라시가 제작한 시계는 시간과 함께 날짜, 요일, 일출·일몰, 농사 시기와 태양계 행성의 관계까지 보여준다.


  후 2시를 앞두고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관광객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상단 2개의 창문이 열리며 12 사도의 행진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해골인형은 죽음을 재촉하듯 종을 계속 쳐댔고, 쾌락과 허영, 탐욕을 상징하는 인형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지막으로  닭이 울고 나팔을 불면서 이벤트는 모두 끝이 났다. 1분 30초 남짓한 쇼는 죽음이 다가오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는 교훈까지 들려주고 있었다. 너무 짧게 끝나버린 쇼가 못내 아쉬워 나는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렸다.     




빌딩에 남자가 매달려 있대요.

  편은 내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나우리도 한번 가보자고 남편의 팔을 잡아끌었다. 행여 놓칠세라 구글 맵을 켜고 찬찬히 살펴가 보니, 과연 지붕 꼭대기 빌딩 사이로 봉에 매달린 남자가 보였다.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은 그는 한 손으로 봉을 잡고 행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기 속에서도 다른 한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여유를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지나는 행인이 아무런 정보 없이 이를 보았더라면 놀라 소리를 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예측 불허한 곳에서 행인에게 던지는 위트와 유머가 감탄을 자아냈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체코의 세계적인 조각가 다비드 체르니의 '매달린 사람'이다. 그는 과연 미술계의 악동이라 불릴 만했다. 현실을 시적으로 파악하려는 체코의 예술가답게, 프로이트를 봉에 매달아 놓고 관객과 함께 즐겼다. 프로이트가 아무리 정신분석학의 대가라 할지라도, 그도 별수 없이 대롱대롱 버티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21c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매달린 사람’(좌)과 `오줌 누는 사람’(우)

 

  우리천재적인 체르니의 작품하나만 더 찾아보기로 했다. 카를교를 건너 프카의 박물관을 다. 마당엔 '오줌 누는 사람'이 엉덩이를 흔들며 소변을 보고 있었다. 엉덩이 안에 전자장치가 있는 것 같았다. 기발했다. 체르니는 '핑크 탱크'의 작가이기도 하다. 젊은 날 그는 게릴라 아트 퍼포먼스로 체코를 점령한 소련 탱크에 핑크 색을 입혀 조롱하고 희화화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탱크를 평화의 이미지로 부활시켰다.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그의 발상은 매번 기상천외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프라하가 멋지고 아름다운 이유에는 체르니도 크게 한몫을 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만보계가 3만 보를 기록했다.

종일 프라하 시내를 누비며 여행한 년의 시간이 만보계에 고스란히 담겼다. 길 위에서 보내는 여행자의 하루는 치열하고 고달프다. 고단해도 행복한 하루가 저물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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