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omforter
May 20. 2022
조승우와 배두나 배우가 주연한 <비밀의 숲>이라는 드라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 장면이 있다. 극중 황시목(조승우) 검사는 머리가 매우 비상하지만,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 이명으로 고통받았는데, 이로 인해 늘 신경이 날카롭고 공격적인 태도까지 보였다. 치료를 위해 14세 무렵 뇌수술을 받지만, 부작용으로 감정을 느낄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이명도 완전히 치료되지는 못해서, 이따금 심한 이명과 두통으로 기절하는 일도 있었다. 그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그를 봤다. 감정을 느낄 수 없으니, 사람들과 인간적인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냉혈한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다. '머리는 좋지만, 인간미 없고, 지 잘난 맛에 사는 그런 재수 없는 놈'.
그런 그가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각종 비리사건을 해결해 나가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의 차가운 심장에 가끔 동요를 일으킨다(정작 황시목은 감정적 동요를 못 느꼈을 수도 있지만, 그걸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에는 파문을 일으켰으리라). 황시목과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해 나가던 경찰 여진(배두나)은 황시목의 과거와 그가 뇌수술의 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여진: "머리 수술한 거 왜 말 안 했어요?"
시목: "그게 뭐라구요"
여진: "지금은 안 아파요?"
시목: "네 안 아파요."
여진: "됐어요 그럼. 아프면 얘기해요 그땐... 하긴 말해줘도 해줄 게 없네... 그래도 말해요. 병원에 옮기기라도 하게"
'말해줘도 해줄 게 없네, 그래도 말해요.' 나는 이 대사가 마음에 들어서, 몇 번이고 이 장면을 돌려보았다. 인간은 다 자기만의 괴로움을 안고 살고, 궁극적으로 그 괴로움을 누군가 대신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내가 당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줄 수는 없더라도, 그래도 당신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겠다는 조용한 위로. 너의 힘듦을 대신 짊어 지지도, 그렇다고 모른 척 하지도 않고, 그저 당신이 버티고 있는 순간에 함께 버텨주겠다는 그 말 한마디. 감정을 나눔으로써 인간이 주고받을 수 있는 최선의 위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대사에 꽂혀서 몇 번이고 곱씹어 본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맥락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아마도 주의 깊게 귀 기울여 들어주고, 그 자리에 함께 머물러주는 대상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그 갈망을 채우는 방편으로, '그것(힘듦을 나누고 함께 머물러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데 몰두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내가 맺어왔던 관계의 양상을 돌아보게 되고, 그 출발점에 해당하는 엄마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했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한 엄마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엄마는 감정을 나누는 데에는 무척 서툰 사람이었다. 늘 바쁘게 일하던 엄마의 단골 멘트 중에는 "우리 가족은 다 바쁘니까 서로 도와줄 수 없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해."가 있었다. 나는 뭐 그렇게 살갑거나, 나에게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풀어놓는 딸도 아니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땐 뭔가... 도움도 청하기 전에 거절당한 느낌이었다. '뭐지? 누가 도와 달랬나?'
그러한 순간들의 기억이 쌓여, '나의 힘듦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은 폐를 끼치는 것이고, 짐을 지우는 것'이라는 신념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이 공고하게 자리잡기 전부터, 그 신념의 근거가 되어왔을 '부재'의 경험은 내가 인식도 하지 못하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있었다. 뭔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어떠한 사건이나 경험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결과는 그 기원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예를 들어, 심각한 폭력이나 폭언, 흔히 학대라 불리는 경험들이 심리상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그 인과관계를 확인하기가 쉽다. 그러나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 주어지리라 기대되는 것이 주어지지 않는 부재의 경험으로 인한 영향은 그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나는 오랫동안 풀지 못할 질문들을 품은 채, 기억의 흔적들을 뒤적였다. 그 질문들 중 하나는 '부모님은 필시 나를 사랑했을 것인데, 나는 왜 그들을 친밀하게 느끼지 못하는가' 같은 것이었다. 이런 질문은 항상 거대한 죄책감을 동반했기 때문에, 그것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누군가에게 드러낼 수도 없는 감정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와 공유되지 못한 감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그 무거운 감정들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하면서, 나는 가늠하기 어려운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매듭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매듭들은 내 인생의 어떤 중요한 순간, 몹시 힘들고 괴로운 순간, 그리고 어렵게 그 이야기를 엄마에게 풀어놓았을 때의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순간을 구성하는 매듭들은 신기하게도 내 기억 속에서 삭제된 장면으로 남아있었다. '나는 그때 어떤 일로 인해서 힘들었지. 그래서 엄마에게 말했어. 그때 엄마는 어떤 반응이었지?' 이어지는 엄마의 반응을 전혀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누락된 기억의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나는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조금 객관적인 관점에서 관찰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기억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잃어버릴 기억이 없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저장될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 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학습해서인지 나는 차츰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정말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즈음에 흘러 넘치듯이 새어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에게 누락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난 뒤, 나는 흘러 넘치듯 새어나간 내 감정의 물결 뒤로, 순식간에 스쳐가는 엄마의 무반응을 조금 더 민감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요즘 힘들어요.' 라는 나의 말에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한 정적. 그리고는 엄마는 '그나저나 요새 경기가 안 좋아서 자영업자들이 다 죽을 맛이다.'고 하면서 엉뚱한 대화가 전개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래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하였다. '어떻게라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반응할 수가 있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둘째 아이를 출산하게 되어, 첫째 땡땡이를 맡길 곳이 없었다. 난생처음 지방에 계신 엄마에게 하루만 와서 아이를 봐달라고 도움을 청했는데, 일을 쉬는 법을 몰랐던 엄마는 갈 수 없노라고 했다. '뭐 그럴 수 있지' 예상했던 바이지만, 섭섭함이 남았던 나는 출산 후 용기를 내어, '그때는 참 서운했노라'고 카톡을 보냈다. 그것은 정말 몇 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감정 표현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찬란하게 읽씹을 당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불편한 감정들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그런 감정적 호소를 듣게 되면, 자동반사적으로 그 이야기들을 튕겨내 버렸다. 또한, 그런 감정적인 낌새가 느껴지면 얼른 주제를 전환하거나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누군가의 힘듦을 들어줄 수 없으니, 자신의 힘듦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리라."각자 알아서 살아야 해"라는 말속에는 강박적인 자기 의존의 몸부림이 서려있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가? 그 '왜'에 대한 대답은 다소 뻔하고 진부하다. 아홉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엄마는 일곱 남매의 막내로 자랐는데, 엄마가 태어나기 전, 엄마의 엄마는 두 아이를 잃고, 말도 잃었다. 엄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외할머니는 항상 말없이 하염없이 밭을 매었고, 엄마는 한마디 말도 없이 일만 하는 외할머니를 쫄래쫄래 따라다녔다고 한다. 엄마는 어떠한 정서적인 대화를 통한 유대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부재한 채로 엄마가 되었다.
정서적 방치(emotional neglect)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조니스 웹(Jonice Webb)은 자녀의 마음을 텅 비게 만드는 부모 유형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 유형을 WMBNT(Well- Meaning-But-Neglaected- Themselves: 선의의 의도를 가졌으나 자신도 방치되었던 부모)로 명명하였다. 안타깝게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달리, 누락된 경험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랐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결과적으로 자녀를 정서적으로 내치고 마는 많은 부모들이 존재한다.
누락된 기억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 엄마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의 구슬들을 꿴 뒤에는, 가끔 엄마와 있었던 일들을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곤 한다. '엄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분노가 일기도 했지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황당해서 실소가 나오는 시트콤 같은 상황인 것이다. 진지하게 며칠을 고민해서 서운함을 말했는데, 쿨하게 씹혔어. '와...이것은 실화인가' 싶은 뜬금없는 전개.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냥 그게 엄마가 살아온 인생이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들.
그리하여 스스로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다른 무엇보다 '힘들 때 말해'라고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허나 나 또한 적절한 정서적 반응이 무엇인지에 대한 모범 답안을 경험해 본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적절한 반응을 찾아내고 연습하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그 일환으로 '내가 힘듦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면, 상대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가장 위로가 될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언젠가 힘든 일을 겪은 친구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에게 그런 일이 있었노라 덤덤하게 얘기해 준 적이 있다. 친구는 '너에게 부담이 될까 봐,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나에게 중요한 일이어서 너에게 말해주고 싶었어'라고 하였다. 무슨 말로도 온전히 위로를 전할 수 없을 것 같던 순간에 그저... "부담되지 않아. 나한테 말해줘서 고마워."라고 했다. 너에게 중요한 경험을 내가 놓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너의 슬픔을 모른 채 지나갔더라면 나도 슬펐을 거라고.
하루는 둘째 쌩쌩이가 감기에 걸려 어린이집에 못 가고 집에 있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했는데, 거실에서 혼자 뒹굴거리던 쌩쌩이가 가만히 다가오더니 내 다리를 꼭 껴안았다. 나는 고무장갑을 빼고, 자세를 낮추어 쌩쌩이를 꼭 껴안으며 물었다. "갑자기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어?" 쌩쌩이는 엄마 품에 얼굴을 묻으며 "응, 갑자기 슬픈 기분이 들었어."라고 말했다. 나는 힘주어서 그동안 상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연습해 왔던 말을 건넸다.
"그럴 땐 엄마에게 말해. 언제든 꼭 안아줄 테니까. 엄마에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순간, 나의 어린 시절 누락된 기억의 공백들도 따뜻한 기억으로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