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omforter
Oct 28. 2022
이번 학기에 처음 맡은 집단상담 수업 시간에서 종결되지 않은 기억을 다루는 세션이 진행되었다. 떠올리면 부정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미해결 된 갈등과 관련된 기억을 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해보는 활동이었다. 나의 종결되지 않은 기억은 늘 같은 장면으로 시작된다.
[ 30대 남성 A씨는 만취한 채 늦게 귀가하였고, 그의 아내 B씨는 이에 대해 강하게 불만을 표현하였다. 둘의 부부싸움은 점점 과격해져 고성과 폭력이 오갔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들의 딸 C양은 이번 싸움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C양은 같은 지역에 살고 있던 이모 댁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으나, 수화기를 붙잡고 한참 망설였다. 같은 지역이지만 꽤 먼 거리이고, 늦은 밤이기 때문에 이모에게 도움을 구해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C양은 부부싸움을 말리기 위해, 느닷없이 울며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시험을 잘 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모르는 문제가 나와서 앞자리 친구의 시험 답안을 몰래 훔쳐봤다고. 커닝한 것이 들통나면 나는 퇴학을 당할 거라고 서럽게 울었다. 딸의 돌발행동에 부부싸움은 그쳤으나, C양은 당시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이 눈물은 꾸며낸 것이라 느꼈다고 한다.]
이런 기억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떠올릴 때마다 나를 무력하게 만들곤 했다. 나는 아직도 이 기억을 고통스럽게 떠올리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부모님도 어렸고, 사는 게 힘들었으며, 지나간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누구나 이만한 부정적 기억은 안고 살아가는데, 아직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유별난 거라고 부모의 입장에서 나를 다그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저항도 한발짝 떨어져서 보도록 한다. 더 들어가봐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부모가 불화가 있는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전쟁고아 수준의 스트레스를 겪는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수시로 공습이 이뤄지던 런던에서 거주하던 아이들 중에는 전쟁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공습경보가 울리면, 자신을 집안 가장 깊숙하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 뒤, 꼭 안아주던 부모의 품을 기억한다고 보고하였다. 온 세계가 산산조각 나도 따뜻한 부모의 품을 기억하는 아이들은 안전하겠지만, 온 세계가 꽃밭이어도 부모의 불화를 기억하는 아이들은 살아가는 게 전쟁이 된다.
폐쇄적인 가족주의를 고수하던 부모님은 '세상에는 가족 밖에 믿을 게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나는 살면서 원가정에서 겪은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겪은 적이 없다. 그들의 이상은 자녀에게 세상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고 싶었겠으나, 현실은 이상과 괴리가 컸다. 그 말이 지독한 점은 가정이 실제로 보호막이 되어주지도 못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신의 씨앗을 뿌림으로써 외부로부터 자원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는 점이다. 가정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감추고, 치부를 숨기고, 세상과 단절시키며 혼자 곪아가게 된다.
언젠가 친모와 계부로부터 학대받던 아이가 발코니를 통해 빌라 지붕을 타고 옆집으로 넘어가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고 펑펑 울었는데, 어쩜 이 작은 아이가 그렇게 용감하고 서글픈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구조된 아이는 자신을 엄마아빠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큰집(예전에 함께 살던 위탁부모)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다행히 아이는 이 지옥 밖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고, 자신이 다른 세계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믿었던 게 아닐까.
이제 늙고 불같은 화와 열정도 사그라들어 서로 보듬어가며 살아가는 두 분을 보면, 어쩐지 나만 불행한 과거에 남겨진 것 같은 배신감을 느끼곤 하였다. 그들의 부부싸움이 철없는 열정의 미숙한 표현일 뿐이었다면, 나의 불행한 어린 시절은 누가 보상해주지? 같은 생각도 들었다.
성인이 된 시점에 나는 이 장면을 여러 차례 리플레이해보았다. 나는 도대체 그때 왜 뜬금없이 죄를 고백했을까? 왜 스스로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느꼈지? 좀 더 효과적으로 그들을 만류할 수는 없었을까? 그때 어떻게 했어야 이 기억에 마침표를 찍고 제대로 종결할 수 있었던 것인지?
부모의 불화에 직면한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내가 죄를 지었고, 그 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느꼈던 것 같다. 따라서 싸움을 멈추기 위해선 죗값을 치러야 하고, 나의 죄를 고백해야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학교 시험에서 앞자리 친구의 답안이 하나 보여, 내 답과 맞춰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퇴학을 당할 정도의 심각한 일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배덕함을 고하고 용서받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이 싸움을 멈출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전복하여, 상황을 통제하는 입장에 서고 싶었다. 어쨌든 나의 어설픈 시도는 성공하였고, 내 눈물의 진정성을 스스로 의심했다. 그렇게 슬프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질질 짠 거야?
감정에 대한 나의 평가는 차가웠다. 그 눈물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고, 나는 그렇게 슬프지도 않다고. 나는 슬프지 않으며, 그들의 싸움은 나를 흔들 수 없다고. 점점 감정을 마비시키는 전략에 익숙해졌다. 그리하여 몇 년쯤 지나서는, 만취하여 '엄마, 아빠가 이혼할 건데 누구를 따라갈 거냐'고 묻는 아빠에게, "나는 혼자 살 거니까, 둘이 알아서 하도록 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래도 부모님은 이때의 일을 재미있는 일화쯤으로 기억하는 것 같았다. "너는 참 어린애가 맹랑하게 어쩜 그런 말을 하니?" 무엇이 웃기고 재미있다는 것인지.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내 안에서 뭔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훗날 감정을 마비(numbing)시키는 전략이 트라우마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손가락질받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었던 나의 성향이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였음을 이해하였다. 내가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내 감정에 대한 정당성을 외부에서 확인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조금씩 믿게 되었다.
성인이 된 시점에 나는 과거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기억들이 나의 인생을 망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과거 때문에, 상처 때문에, 기억 때문에, 내 인생이 불행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패배자가 되는 것만 같았다. 'C양은 불행한 기억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종결을 꿈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억을 깨끗이 떨쳐내지 못했으며, 때때로 불행감에 빠졌고, 상처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기억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땡땡이와 쌩쌩이가 태어난 후로 나는 그 이전의 시점으로 내 인생을 돌이키고 싶지 않게 되었다. 불행했던 순간들마저도 그 순간들 중 하나가 빠져버리면 더 이상 지금의 내가 아닐 것이고, 그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선택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치 않던 과거의 경험까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선택한 셈이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은 변화될 수 없지만, 그 의미는 시시각각 재구성된다.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낄 때, 과거는 내 발목을 잡는 걸림돌 같지만, 내 인생이 이만하면 괜찮다고 느낄 때, 과거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디딤돌이 된다.
과거가 내게 남긴 유산을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피할 수 있는 상처였다면 좋았겠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애쓰며 열심히 살았던 것도 맞고, 내가 하는 일과 공부에 진심을 다했던 것도 맞다. 그 덕분에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배우고, 소중한 인연들을 만났으니 이만하면 많은 행운이 따라주었다고.
간혹 언성을 높여 부부싸움을 할 때, 땡땡이와 쌩쌩이는 '그만해. 시끄러워. 엄마도 조용히 하고, 아빠도 조용히 하세요! 작게 말해도 다 들려요.'라고 싸움의 종료를 알렸다. 아이들이 꽥꽥 소리지를 때 마다, '소리지르지 않아요. 작게 말해도 잘 들려요~'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내가 한 말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그래. 소리쳐서 마안해.' 사과를 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안아주고, 그들의 세계를 안전하게 지켜주고자 다짐을 한다. 한편으로는 공포에 질리지 않고 또박또박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 안심하였다. '그래, 너희들은 나와 다르지' 완벽하진 않더라도 조금은 다르게 대처함으로써 나의 빛바랜 과거도 색을 되찾고 허물어진 벽돌을 쌓아 올리는 것만 같았다.
집단상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각자 나름의 종결되지 않은 기억을 안고 있었다. 많은 기억들이 부모가 부모답지 못했던 순간, 그리하여 아이의 세계가 붕괴되던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쓰라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중의 화자가 누구인지는 너무나 쉽게 드러났다. 아마 학생들이 내 글을 보더라도, C양이 나라는 것을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거리를 두기 어렵다. 나라는 존재는 그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나 여러 이들의 도움으로 그 경험을 다양한 관점에서 천천히 응시함에 따라, 놓치고 있던 기억의 조각들을 발견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것이라 기대를 한다. 기억의 이쪽저쪽 측면을 들여다본 다음에는, 그 기억을 안고도 내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내본다.
"어떤 종결을 원하시나요?"
끝나지 않은 기억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현재의 나는 기억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간다. 9세의 C양에게 다가가 그녀의 귀를 막아주고, 눈을 가려준다. 그녀의 손을 잡고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집을 빠져나온다. 이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며,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들의 싸움은 지나갈 것이고, 너의 세계는 안전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