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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forter May 28. 2022

발가락이 닮았네

  '너는 아빠 판박이구나.'

  '너는 영락없이 엄마랑 똑같구나.'

  아무리 유전의 힘은 강력하다지만,  나는 누군가를 보고 그 부모를 닮았다고 평하는 것에 인상이 찌푸려지곤 했다. 그저 닮아서 닮았다고 한 것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런 말들이 내게는 마치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족쇄처럼 느껴졌다. 마음 한 구석에서 반항심마저 올라왔다.

  '나에 대해서 뭐 얼마나 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나는 '부모를 닮았다'는 지극히 과학적 근거가 충분한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도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기가 어려웠다. '어, 그래 닮았어. 내가 부모를 안 닮으면 누구를 닮겠어?'라고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상황에서도, '그래서 뭐?'라는 감정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그리고 나의 이 께름칙한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알량한 심리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나를 보호할 논리를 구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를 테면, '개인에 대한 심리적 평가를 수행할 때, 절대 그 개인에 대한 단정적 진술을 하지 않아야 하며, 단지 주어진 정보와 관찰 자료를 토대로 일관성 있는 가설을 제시할 뿐이다.' 같은 직업 정신에 기반하여, 충분한 근거 없이 한 사람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나아가 '자녀는 부모와는 다른 독립적인 개체이며, 그 독립성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 자기 분화를 촉진하고, 이는 곧 심리적 건강과 원만한 대인관계의 토대로 작용한다' 같은 내용을 기반으로 독립성과 자율성을 쟁취하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정서적 스트레스나 마주하기 힘든 무의식적 갈등을 피하기 위하여, 이성적 논리와 지식을 동원하는 방어기제를 주지화(intellectualization)라고 한다. 나는 배움을 무기 삼아, 무언가로부터 열심히 도망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삶의 원칙과 목표들이 원론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더라도,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나는 왜 그렇게 까지 '독립적 개체'라는 포인트에 열광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에서 그러한 가치들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자유의 열쇠를 얻은 것 마냥 홀가분했다. 그것은 이성과 논리의 작용이 아니라, 다분히 정서가가 잔뜩 실린 감정적 차원의 문제였다.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사실, 무의식적 갈등은 아마도, 너무나 당연하게도, 내가 실제로 부모님을 많이 닮았다는 사실이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당연한 생물학적 사실을 부정해 가면서  '닮았다'는 말속에 얽혀있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내 안에서 '부모를 닮았다'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가득 내포된 비난으로 자동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로, '닮았다'는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보다는 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나의 단점과 허물을 꼬집는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유독 부정적인 맥락만 인상 깊게 남았는지도. 너는 아빠 닮아서 성격이 그 모양이라던가, 너는 엄마 닮아서 노래를 못한다던가, 너는 아빠 닮아서 콧대가 낮다거나, 너는 엄마 닮아서 냉정해 같은 말들.

 그것이 꼭 나의 단점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거나, 못생기고 부족한 면까지도 부모를 닮아서 사랑스럽다는 애정 어린 농담이었을 지라도, 그 당시의 어린 나는 그런 말들을 걸러내고 선해해서 받아들일 배포도 유연성도 없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말을 던진 당사자들은 이미 새까맣게 까먹은 농담 섞인 가벼운 말들조차도, 나에게는 내 단점과 허물을  확대해서 전시하는 현미경으로 작용했고, 나는 무슨 큰 치부라도 들킨 것 마냥 그것들을 숨기느라 애를 썼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의 나에 대한 '닮았다'는 평들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고, 어느 정도는 나와 관계없는 본인들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실제로 아빠를 닮아서 욱하는 면이 있고, 엄마를 닮아서 억척스러운 면도 있다.  이런 평들은 기분이 나쁘고 말고 할 이유가 없는 평이한 사실 적시에 그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내적 세계에서 그 말들은 악의적인 의미로 증폭되었는데,  왜냐하면 그 말을 던지는 엄마, 아빠의 진심과 의도를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의도를 알 것도 같았지만 알아주고 싶지 않았다. '너는 엄마 닮아서 냉정해'라고 말할 때 아빠는 아마도 딸과 살갑게 애정표현도 하고, 친밀감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고,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다정한 표현 방법도 알지 못했던 투박한 남자의 표현은 그러했다. '너는 아빠 닮아서 콧대가 낮아. 엄마는 콧대가 높은데'라고 말할 때 엄마는 젊은 나이에 결혼하고 바쁜 일상에 치여,  외모를 가꾸지 못하는  자기 신세에 대한 한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꾸미면 한 미모 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돈과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던 여인의 표현은 그러했다.   그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것인가. 어쩌면 내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닮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부모의 욕구를 대신 알아차리고, 그것을 대리 충족시켜줘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이었는지도.


  고된 노동과 일상에 치여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말을 들은 상대의 기분이 어떨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내뱉은 다듬어지지 않은 몇 마디 말이었을 뿐인데, 타고난 나의 예민함은 그 말의 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의도까지 샅샅이 찾아냈다. 그리고 부모의 욕구를 내 것처럼 받아들였던 나는 그 말들에 휘둘렸다. 그리하여 그 말들이 나에 대한 어떤 확정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당사자의 내면 상태를 반영할 뿐이라는 것을, 부모가 던진 말속에 나를 가둬두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못나지도 냉정하지도 않으며, 이만하면 충분히 사랑스러운 구석이 있고, 내 안에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함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기까지 길고 긴 사투를 벌여야 했다. 그리하여 '닮았다'는 말이 더 이상 부정의 의미가 아니라, 그저 닮았다는 사실 그 자체를 의미할 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말이다.


 '닮았다'는 말에 묻어있던 부정적인 뉘앙스를 털어내고, 그저 담백한 표현으로 남겨두고자 애썼던 나는 땡땡이와 쌩쌩이를 낳은 뒤, 그 말속에 담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와. 완전 나랑 똑같이 생겼네. 누가 봐도 내 아들이야."

   하얀 속싸개에 싸인 채 눈도 뜨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 땡땡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유전의 강력함을 체감했다. 땡땡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나와 닮은 점이 많았다. 찌푸린 미간에서 예상되듯이, 땡땡이는 처음 만난 낯선 세상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많아 보였고, 내가 그러했듯 잘 못 먹고, 잘 못 자는 까다로운 기질의 아기였다. 넘어지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까지 걸음을 떼지 않았으며, 무엇이든 처음 시도할 때는 몸을 뒤로 빼며 찡얼댔다.

 한 까달하는 땡땡이를 키우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궁극적으로 나는 그 예민함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라고 묻지 않아도, 왜 그러는지는 참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까지 닮은 점을 발견할 때는 복장이 뒤집어지고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뭐 까다롭고 예민한 것도 나쁘지 않아.'라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면, 그렇게 아이가 걱정되지는 않는 것 같다. 그 말도 못 할 정도의 까다로움과 예민함에서 나의 모든 단점이 비롯되었듯이, 나의 모든 장점도 거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었으니까. '괜찮아. 관리하면서 살면 돼. 이만하면 나쁘지 않아.' 아이를 믿음으로 지켜볼 수 있기 전에,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가장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년생 동생이 태어나면서 땡땡이는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남편은 마누라를 쏙 닮은 아들을 케어하는 데 재주가 있었다. 아이가 처음 시도하는 낯선 활동을 거부할 때에도, 한 번은 해볼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 주고 진득하게 설득하는 집요함을 갖추고 있었다. 위험회피 기질이 극상 수준에 해당하는 나는 '아 어린 시절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저렇게 무서움을 이겨내고 한 발 내딛을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존재였구나'를 깨달았다. 그런 아빠의 도움으로 땡땡이는 나와 닮았음에도 조금은 다르게 커 나가지 않을까,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땡땡이가 힘들어할 때 더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품게 되었다.

  물론 땡땡이는 나와 다른 면도 많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생존을 위해 양파, 파 등을 입에 대기 시작한 프로 편식러였는데, 땡땡이는 미역줄기와 콩나물 무침, 물김치를 좋아하는 야채 러버다. 나는 지는 게 싫어 게임도 싫어했지만, 땡땡이는 브루마블과 체스 게임을 이길 때까지 시도하는 근성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요구에 '그건 아니지 않아요? 내가 어린이인데 어떻게 그렇게 해요?'라며 당당하게 어린이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하여 부모를 기 막히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 막힘의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가 나의 예상을 넘어설 때마다,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Hi, stranger! 너는 점점 더 변화하고, 점점 더 내 예상에서 멀어질 거란 걸 잊지 않을게.'


  어찌 되었든 아빠와 애착이 돈독한 땡땡이는 '이런 면은 참 엄마랑 닮았네'라는 말을 들으면, 씨익 웃으며 '힝! 나는 아빠 닮고 싶은데!'라고 앙탈을 부린다. 물론 아빠 닮은 것도 있지. 하얀 속싸개 위로 쏙 내민 손가락을 보고 남편과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 무슨 아기 손가락이 저렇게 길지?" 처음 만났을 때 긴 손가락을 휘적거리며 자기소개를 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발가락을 보고는 더 깜짝 놀랐다. 유난히 넓적한 왕엄지 발가락이 아빠와 쏙 닮았던 것이다. "닮았네, 닮았어. 발가락이 닮았네." 그렇게 우리는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그 무엇이든 우리와 닮은 점을 찾아내고는 희열을 느꼈다.

  땡땡이와 쌩쌩이를 낳은 뒤,  '닮았다'는 말은 닮았다는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같은 핏줄임을 일깨워 주는, 너와 나를 연결해주는 가장 강력한 연대의 표현이자, 가족으로 묶일 수 있음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의미였다.  

  얼마 전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세상천지에 우리 닮은 사람은 너 하나뿐인데..."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더 이상 나는 발끈하지 않았다.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닮았다는 말에 담긴 엄마의 진심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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