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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forter Oct 28. 2022

행복은 불연속적이지만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실제로 이동진이 눈물 쏟은 영화 10선 (어그로 아님)>이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추천해준 영화를 보고 눈물, 콧물 다 쏟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스포일러 주의*


  '에이아이(A.I,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2001년)'라는 영화는 극지방의 해빙으로 세계 곳곳이 물에 잠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천연자원이 고갈되어 극히 제한적인 삶을 영위해야 하기에, 인간은 물도 음식도 필요 없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여 그들의 조력을 받으며 생활했다. 로봇은 집안일도 해주고, 애도 키워주고, 운전도 해주고, 성욕도 채워주고, 각자 프로그래밍된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나, 낡고 부서진 로봇들은 가차 없이 폐기처분당한다. 하지만 그들은 감정이 없기에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비 박사에 의해 로봇공학 발전의 최후 보루였던 '사랑'의 의무를 주입받은 최초의 어린이 로봇, 데이빗이 탄생한다. 데이빗은 로봇 제조사의 직원인 스윈튼 부부에게 입양되는데, 부부에게는 불치병에 걸려 냉동인간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아들 마틴이 있었다. 데이빗은 마틴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사랑의 의무를 다하였으나, 어느 날, 마틴이 의식을 되찾고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엄마는 진짜 아들 마틴을 우선시하고, 데이빗과 마틴의 갈등이 심해지자 급기야 데이빗을 유기한다. 데이빗은 엄마가 들려준 피노키오 동화처럼, 자신이 인간 아이가 되면 엄마의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푸른 요정을 찾아 떠난다. 온갖 고초 끝에 수몰된 도시 맨하튼에서 푸른 요정의 동상을 만나게 되고, 데이빗은 '제발, 인간이 되게 해 주세요'라며 빌고 또 빌었다. 2000년 동안.


 나는 여기서 영화가 끝나는 줄 알고, 폭포수 같은 눈물을 이미 다 쏟았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바닷속에 얼어 붙은 채 2000년이 지나고, 초월적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신 로봇들이  데이빗을 발견한다. 인류는 소멸하였고, 로봇들은 마지막 인류의 기억을 간직한 데이빗을 소중히 대해주며, 그를 통해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한다. 로봇들은 데이빗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DNA 복제를 통해 이미 죽고없는 엄마를 복원하기로 한다. 허나 데이빗에게 허락된 시간은 단 하루뿐, 하루 동안 엄마를 되살릴 수 있으나, 잠이 들면 엄마는 영원히 소멸한다. 데이빗은 단 하루만이라도 엄마와 함께 하길 원하고, 그 하루 동안 함께 케이크를 만들고, 책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엄마가  잠들자 그녀 곁에 누워 영구 정지된다.


 이 시점에서 나의 눈물은 짜게 식어 있었다. 아무래도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가 비극으로 끝나면 관객의 집중포화를 맞고 흥행에 실패할 것을 걱정하여 엔딩을 바꾼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SF 판타지 영화라지만, 너무 작위적인 해피 엔딩 아닌가. 영화가 어땠냐고 물어보는 남편에게 '그다지 슬프지 않군.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대꾸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다지 슬프지 않은데... 왜 자꾸 눈물이 나지. 나는 몰래 흐느끼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데이빗, 인간 아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사랑받는 건 아니야. 이게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교육심리학자 가토 다이조는 '힘들 때 안아주던 엄마의 품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는 모래폭풍 부는 사막에서 실오라기 하나 없이 서 있는 것'과 같은 삶을 산다고도 했다. 오랜 시간 나를 지배하던 벼랑 끝에 선 느낌, 무엇이든 잘 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는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다. 일단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진이 다 빠져서 무조건 누워서 몇 시간이고 쉬어야 했다. '세상에는 무서운 것이 너무 많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아.'

 가토 다이조는 부모의 인정을 얻기 위해 애쓰는 '착한 아이'는 사랑받고 싶고, 호감을 얻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자신의 본성을 배반한 채 살아간다고 했다. 사실 코끼리인데 벌새 흉내를 내며 살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을 실감할 수 없다고. 그들은 집에 있다는 감각 없이 집에 있고, 부모라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 채 부모와 함께 살며, 친구라는 감각을 느끼지 못한 채 친구를 사귀고, 선배라는 감각 없이 선배와 알고 지낸다고 하였다. 자신의 본성을 배반하고 긴장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감각도 느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선배가 어떤 사람이든 '고유한 인간으로서의 그 선배'가 아니라, '그냥 선배'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무미건조하고 황량하지만, 차마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세계.


  지인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왜 좋았던 일은 기억도 안 나고, 힘든 기억만 이렇게 생생한 걸까요?"

 "잘 찾아보면 어디 있을 거야.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있으니까 살아있는 거 아닐까요?" 어쨌든 나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즐거운 추억이 없는 아이가 많은 원망과 분노와 미움과 슬픔 속에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용서하고픈 마음과 용서하고 싶지 않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며, 한 줌의 좋았던 기억을 찾아내려고 분투하는 까닭, 사랑받았던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까닭이... '대상을 살리기 위한 영혼의 노력'이라고. 살아 생전 행복한 기억이 하나도 없던  데이빗은 결국 소멸했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즐거운 추억' 속에 영원히 사는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동진 님의 또 다른 슬픈 영화 추천작 중 '몬스터 콜(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2017년)'이라는 영화를 보면,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엄마를 둔 소년, 코너가 나온다. 코너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어느 날 코너를 구하러 나무 괴물이 찾아온다. 나무 괴물은 '세 개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네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이야기할 차례가 된 코너는 차마 말할 수 없는 비밀 앞에 망설이고, 나무 괴물은 얼른 네가 밤마다 꾸는 꿈을 털어놓으라고 한다. 그가 간직한 비밀은, 꿈속에서 벼랑 끝에 매달린 엄마의 손을 놓아버린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곁에 있어주길 간절히 바라는 만큼, 생의 끝에서 힘겨워하는 엄마를 떠나보내고픈 마음, 그 죄책감이 코너를 집어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은 늘 함께 있고, 코너가 느낀 그 죄책감이야말로,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방증이었을 것이다.

 현실에서 어딘가에 있을 즐거운 기억들을 되살리는 일은, 어딘가에 있을 괴로운 기억들을 되살리는 일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으려면, 긍정과 부정을 함께 느껴야 하고, 사랑과 미움을 함께 겪어야 했다. 감정이 롤러코스터 타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고나서야, 서서히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줄 보호막을 장착한 느낌이 들었다. 종결되지 않은 기억 속에 박제된 9세의 C양은 그제야 떠날 채비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커다란 투명 공 속에 들어가 있는 어린 여자애가 발을 굴리며 세상으로 나아가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금도 사는 게 무서워질 때마다 그 장면을 떠올리고, '괜찮아.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곤 한다.


 그래서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했으면 좋았겠지만, 여전히 감정의 풍랑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아, 이런 게 사는 거군'하다가도, '이게 다 무슨 의미야?'라며 좌절하고,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지'에서 적당히 타협한다.

 아이들과 TV를 보다가, 부부가 투닥거리는 장면을 보고, 쌩쌩이가 "엄마, 아빠 같네"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저러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아빠한테 매일 빨리 해! 빨리! 그러잖아."라고 하였다. 그래도 엄마가 아빠에게 매일 그러는 건 아니지 않냐고 물어보니, "가끔은 웃으면서 해"라고 했다.

 "그 가끔이 아주 중요한 거야. 그 가끔을 꼭 기억해야 해. 엄마가 너를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하고. 알겠지?"

 어린이 과학 대백과를 보다가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감쪽같이 사라진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때 화산 폭발로 잿더미에 묻혀있다가 발견된 엄마와 아기 화석에 대한 얘기를 땡땡이에게 해주었다. 엄마가 아기를 꼭 안은 채 웅크리고 있는 화석이었다. 땡땡이는 한참 설명을 듣다가 "엄마가 아기를 왜 안고 있었어요?"라고 물었다. "그야... 엄마가 아기를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어서지." 물끄러미 나를 보던 땡땡이가 갑자기 뽀뽀를 쪽 했다.


 물론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굳이 기록을 남기고 싶을 정도로 희소하고, 어떤 날들은 그저 그렇거나, 투닥거리거나, 때로 매우 별로일 것이다. 그래도 행복은 불연속적이지만, 행복한 기억을 끌어옴으로써 불행한 시간을 견뎌낸다. 처음에는 숱한 불행이 깔린 사장에서 진주알 같은 행복을 겨우 찾아내는 것 같겠지만, 끌어올 수 있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언젠가 평범한 많은 행복들 중에서 산책하다 밟은 개똥 정도의 불행을 발견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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