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돌아오니 엄마가 아직 미술관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방의 열쇠는 엄마가 가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엄마가 올 때까지 꼼짝 없이 숙소 앞마당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이비에커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숙소에 오니, 이제야 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가 쌓이고 쌓여 분출되기 시작했는지 나는 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혼잣말을 시작했다.
"왜 나한테 화내고 난리야. 미친 꼰대."
그러자 자파 옆에서 게임을 구경하던 주원이가 말했다.
"엄마, 누가 엄마한테 화냈어요?"
"아이비에커가 나한테 화냈잖아."
"아이비에커삼촌이 엄마한테 화냈어요? 왜 화냈어요?"
"엄마가 아이비에커 삼촌이 준 선글라스를 망가뜨려서."
"엄마가 선글라스 망가뜨려서 삼촌이 화냈어요?"
내 말을 반복하던 주원이는 금방 흥미를 잃고는 다시 게임하는 자파 옆에 갔다.
남편이 생각났다. 우리 남편은 사귈 때부터, 특별히 웃기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참신한 이벤트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지도 않았다. 남편의 행동은 모두 예측가능한 것이었다. 술마시면 술 마셨다고 하지, 거짓말을 한 적도 없었다. 인생의 신조가 거짓 없는 참만 선택해야 하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젊은 20대의 나는 낭만적이고, 웃기고, 예측이 안 되는 아이비에커에게 얼마나 설렜던가. 말끝마다 유머에, 갑자기 사라져서는 장미꽃을 사와 건네고, 또 내가 다른 남자와 이야기한다 하면 질투하고, 화내고, 또 내 기숙사방을 바라보며 노래도 부르고, 구구절절 마음 아프게 하는 연애편지도 써줬다. 그와의 만남은 늘 예측불가능했고, 국적과 종교가 달라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서사에 도취되어 느끼는 안타까움이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아이비에커의 행동에 불안해지는 것을 설렘이라 해석했다.
이제 애 엄마가 된 나는 20대 나의 직관에 다시 한번 놀랐다. 설렜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가슴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나는 그가 나에게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이별을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