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지하철에서 땀 뻘뻘

말 안 통하는 타슈켄트 지하철에서 헤매기

by 박수소리

오전 9시 넘어 우리 셋은 버스터미널(Avtovokzal Toshkent)에 도착했다. 널찍하고 웅장한 버스터미널이었다. 길가에는 쓰레기 한 점 허용하지 않는 깔끔함이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와서 그런지 우즈베키스탄이 정말 발달해 보였다. 버스에 내려 짐을 내리니, 중앙아시아에서는 그다지 볼 수 없었던 택시기사들의 호객 행위가 시작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호객 행위가 매우 흔했지만, 왠지 중앙아시아에서는 호객행위가 다소 생소했다.

무거운 백팩에 유아차에, 이미 12시간의 심야버스까지 탄 지라 솔직히 택시를 타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엄마는 배낭여행객답게 지하철을 타자고 하셨다. 엄마가 부킹닷컴으로 잡은 숙소도 초르수 역에만 내리면 찾기 쉽다고 했다.

타슈켄트 버스터미널(https://www.gazeta.uz/ru/2019/05/10/bus-station/)


지하도로로 길을 건너 Olmazor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주원이는 어려서 그런지 값을 받지 않았고, 성인은 일인당 1,400 솜(한국돈 181원)이었다. 지하철값이 워낙 작아, 내 지갑 중구난방 지폐 속에서 가장 작은 단위의 화폐를 내미는데도 한참 걸렸다. 아무 지폐나 내밀었다가 지하철 매표소에서 빠꾸 당하기를 몇 차례. 결국 나는 5,000 솜을 찾는 데 성공해 지하철 표를 살 수 있다. 나는 소련에 가본 적은 없지만, 분명 말할 수 있는 것은 우즈베키스탄 지하철도 책에서 본 소련식 지하철이었다. 한국에 비해 지하철 층고가 높고, 사람들이 앉을 만한 의자도 거의 없었다. 당연히 쓰레기통도 없었다. 벽이나 기둥이 거의 대리석이었고, 널찍널찍했다. 낯설지만 익숙했다. 왜일까? 언젠가 구글에서 보았던 북한 지하철역과 실내 장식이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했다. 소련의 영향을 받은 나라의 지하철들은 서로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타슈켄트 지하철



"초루스 바자르(Chorsu Bazaar)?"
깨끗하다 못해 노선도 하나 없는 지하철역에서, GPS며 인터넷도 안 되니 나는 순식간에 경비원을 붙잡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 여행자로 변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뜬금없이 "남대문?"이라고 하는 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지하철 8위에 빛나는 서울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내가 이런 기초적인 질문을 던지다니.
당황하고 있는 나와 달리, 기차 마니아 주원이는 지하철을 타게 되어 매우 기쁘고 흥분해 있었다. 잠시 후 지하철이 왔다. 사람들로 지하철은 가득 차있었다. 유아차는 커녕 사람조차 탈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빽빽했다. '엄마 다음 거 탈까?'라는 말을 꺼낼까 하고 고민하던 찰나, 지하철 문이 열리자, 엄마는 주원이 손만 달랑 잡고 살짝 공간이 보이는 곳으로 날름 타버렸다. 짐에 유아차까지 책임지고 있는 나 따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 엄마는 주원이와 앞만 보고 돌진했다. 당황한 나는 유아차를 얼른 챙겨서 그나마 공간이 있어 보이는 다음칸 문으로 진입했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좁은 지하철은 사람으로 가득 차있었는데, 에어컨이 애초부터 설치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고자 여기저기 지하철 창문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터널 내 매캐한 공기가 지하철 내부로 들어왔다. 나는 공기에 부쩍 예민한 사람이라, 지하철 속에서 숨 쉬는 게 먼지구덩이에 파묻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빽빽한 사람들 속에서, 유아차를 붙잡고, 등 뒤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주원이와 엄마는 사람들 사이로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공기까지 안 좋으니 금방이라도 내리고 싶었다.


'함께 중국 유학했던 바허랑 아이비에커도 학생 때 이 지하철을 타고 대학에 다녔겠지?', '설마 바허랑 아이비에커도 지금 지하철을 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낭만적인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금방 현실로 돌아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아야 했다.


나는 방향을 빨리 잡고자 맵스미(Maps Me)를 켜서 방향을 잡고자 했지만, 지하라 그런지 GPS조차 잡히지 않았다. 한국 지하철은 인터넷도 빵빵 터지고, GPS도 잘 되는데...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지하철 내부에 게시된 지하철 노선표도 없었다. 전날 대충 기억한 정보에 의하면 우리는 한번 환승을 해야 했다.


나는 또 바보 여행자로 전락하여, "초루스 바자르(Chorsu Bazaar)?"를 반복했다. 지하철에 탄 승객들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나를 도와주고자 했지만, 러시아어도, 우즈베크어도 못하는 나에게 선뜻 다가오지 못했다. 그들끼리 이 여행자를 어떻게 도와줄지, 초르수 바자르에 가는 길을 누가 설명해 줄지 토론하기 시작했다. 긴 토론이 끝나갈 무렵, 영어 책을 손에 들고 있던 히잡을 쓴 어떤 여학생이 수줍게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대화를 미처 다 하지 못하고 그녀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타슈켄트 지하철 노선도


외국인인 나를 두고 웅성웅성 토론하던 사람들은 다시 조용해졌다. 나의 "초르수 바자르?" 질문은 침묵 속에 그렇게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직장인처럼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제스처만으로 다음에 내리라고 했다. 객차 어딘가 있을 엄마와 주원이에게 다음에 내리라고 해야 할 텐데.. 사람들로 빽빽한 지하철에서 엄마와 주원이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분명 나만 믿고 엄마는 손 놓고 있을 터인데 어쩌나. 인터넷도 안 되고, 엄마에게는 우즈베크 돈도 한 푼도 없다. 정말 이렇게 헤어지면 답이 없다. 궁지에 몰린 나는 허공을 향해 "엄마, 다음 역에서 내려!"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현지인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고, 그제야 저 한 구석에 용케 자리를 잡고 앉자 주원이를 안고 앉아있던 엄마가 내 시야에 나타나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날렸다. 지하철 문이 열리기 바로 직전, 어렵게 소통이 되어 지하철을 모두 내릴 수 있었다.


환승역에서 남자는 손을 들어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유아차를 끌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유아차 한쪽을 계속 들어주었다. 남자는 앞서서 걷다가 자신이 목표한 지점에 도착을 했는지, 여기서 지하철 타고 두 정거장 있다가 내리라고 했다. 현지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 그는 모든 것을 손으로 말했고, 나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열심히 도와주던 그에게 주원이는 한국에서 기념품으로 사 온 한복 냉장고 자석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수줍게 웃고는 손으로 인사를 건네고 쿨하게 사라졌다.


우즈베크사람들이 주는 첫인상이 너무 좋았다. 따뜻한 마음으로 언어도 안 통하는 우리를 제스처든 눈빛이든 그 어떤 것이든 동원해서 열심히 도우려 애썼다. 천신만고 끝에 우리는 초르수 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Chorsu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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