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이 바랜 팜플렛이 주는 이 쎄한 느낌

더블데커 탈 생각에 들뜬 우리를 기다린 것은?

by 박수소리


"오늘은 여행자 안내센터에 가서 부하라 지도도 무료로 받고, 투어도 신청하는거야. 그리고 부하라 관광패키지를 끊어서 편하게 다니는거야."

어제 길거리에서 우연히 본 시티투어버스 팜플렛 때문에 아침부터 우리 셋은 들떴다! 영국 더블데커 닮은 귀여운 빨간 버스라니, 버스마니아 주원이는 "2층 뻐쯔(버스, 다섯 살 아이의 발음) 탈래요" 노래를 불렀고, 컨디션 안 좋은 엄마는 걷지 않을 생각에 기뻤고, 나는 가이드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나는 신이 나서, 이 정도 관광인프라면 유럽여행도 부럽지 않다고 아침부터 극찬을 해댔다.


부하라 시티투어버스 광고



룰루랄라 시티투어버스 매표소에 가니,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았다. 가격이나 알아볼까 하고 매표소에 부착된 시티투어버스 포스터를 보는데, 다시 보니 색이 다 바래있었다. 어제 저녁에는 깜깜해서 보지 못했는데, 매표소에는 오랫동안 사람이 드나든 흔적도 없었다. 느낌이 쎄했다.

주변 주차장 관리아저씨한테 시티버스를 가리키며 물어봤지만, 아저씨는 우리가 말이 안 통하는 걸 알고, 팔로 엑스자를 긋거나, 고개를 옆으로 도리도리 흔들 뿐이었다. 마침 주원이가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유료화장실에 갔더니 카운터에 젊은 여자가 매니큐어를 바르며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여자에게 번역기로 시티투어버스가 어디 있는지 물었더니, 러시아어로 돌아온 답변 역시 없다는 것이었다. 부하라의 희망, 주원이의 사랑, 우리의 시티버스는 운행하지 않는 게 확실했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다. 이 여름에 덥기도 하거니와 코로나까지 겹쳐 관광객들이 올리 만무했다. 돈이 되어야 2층 버스를 운행하지.
물론 내가 어제 기대했던 관광객안내소도 없었다. 히바에서도 2일 패키지 입장권만 사면 히바성 전체 맵은 허접하게나마 나누어주었는데, 부하라는 관광객 패키지 표도 없거니와, 무료 배포지도도 없었다. 물론 유료 지도도 없었다. 모든 관광지는 개별 수납을 받고 있었다.

부하라 시티투어버스(구글 캡처)



부하라는 히바에 비해 도시가 너무 아름답고 쾌적하길래, 관광인프라가 더 갖춰져있을 것 같다는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시티투어버스만 믿고 아무 스케줄도 짜오지 않는 나는 이 더운 날씨에 막막해졌다. 우리는 해를 피해 레스토랑 랴비하우스에 잠깐 앉았다 가기로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랴비하우스


레스토랑 랴비하우스(Lyabi_Hauz)의 테라스는 정말 끝내줬다. 히바의 레스토랑 테라스에 비견할만한 멋진 식당이었다. 카페 한가운데 연못에는 오리들이 몇 마리 있고, 연못을 둘러싸고 수시로 나오는 물줄기는 청량감을 더했다. 연못에 둥실둥실 떠있는 부하라 상징 조형물도 페인트가 좀 벗겨져 있었는데, 오리들이 이곳에 소풍을 종종 다녔다.

한쪽 그늘에 앉아있던 종업원이 어슬렁대며 가져다준 메뉴판은 김밥천국 수준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먹을 수 있는 샤슬릭부터, 라그만 등 식사류, 아이스크림까지 없는 게 없었다. 다만 우리가 중앙아시아 음식에 이미 질린 게 문제였다. 배도 고프지 않아, 그저 주원이 먹을 체리주스만 하나 시키고 호수만 한참을 바라보았다.


일어날 때 종업원에게 체리주스값을 지불하고 나가는데, 아까 우리에게 돈을 수령한 종업원이 유아차를 밀며 거리로 진입한 우리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계산한 금액이 세금이 덜 붙었기 때문에 돈을 더 내야 한다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도 아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세금가격을 불포함하고 메뉴에 적다니. 세금 따로, 가격 따로 적혀있는 메뉴판은 늘 손해보는 느낌을 준다.

그래도 뭐 주스값 세금 더 내는 게 일인가. 시티투어버스가 없어져 희망의 배터리가 다 날아가버린 우리에게, 라비하우스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였다.


부하라의 라비하우스

왜 우즈베키스탄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부하라 이전에 어디에 갔었는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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