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이 이미 지났을 무렵 우리는 부하라성이 보이는 성 외곽의 한 전통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좌석이 신발을 벗을 수 있는 평상이라, 더위에 지친 우리는 음식이 나올 동안 마음껏 다리를 편채, 축 늘어져 있었다.
우리 밖에 없던 레스토랑에, 저 멀리서 또 다른 손님들이 들어왔다. 전동휠체어를 탄 할머니와 손녀뻘 아가씨는 우리 옆 평상에 자리 잡았다. 신발을 벗고 올라와야 하는 좌석인 관계로, 아가씨만 신발을 벗고 평상에 올라오고, 할머니는 올라오지 못한 채 전동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할머니가 전동휠체어에 탄 채 화장실에 갔고, 아가씨도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이웃한 테이블의 손님들이 가건 말건, 더위에 지친 우리는 무심하게 샐러드와 빵을 먹고 있었다. 5분도 안 되어 금세 자리로 돌아온 할머니는 돌아오자마자 부산했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휠체어 바닥을 보고, 손으로 옷을 들었다 놨다, 평상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난리였다. 아가씨도 덩달아 부산해졌다. 다시 할머니와 아가씨는 식당 뒤로 사라졌다. 딱 봐도 뭔가를 찾는 듯한 행동이었다.
다시 돌아온 할머니는 잃어버린 물건을 찾지 못했는지, 큰 소리로 울면서 아가씨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는 그야말로 대성통곡하며 화를 내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든, 할머니가 우는 게 안쓰러웠다.
"주원아, 저기 할머니한테 사탕하고 휴지 드리면서 울지 마세요 하고 와."
주원이는 전동휠체어에 앉은 할머니에게 사탕과 휴지를 건넸으나, 화가 잔뜩 난 할머니는 옆에서 사탕과 휴지를 들고 주저주저하며 서 있는 주원이를 보지 못했다. 도와줄 것이 없어진 우리는, 소란한 와중에 다시 샐러드와 빵을 먹기 시작했다.
내 등 뒤 할머니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번에는 아가씨에게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표정, 목소리, 제스처, 그리고 아가씨의 표정만으로 그게 악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졌는지, 직원들도 하나둘 할머니와 아가씨 자리로 몰려와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때였다. 샐러드와 빵을 집어먹고 있던 내 등짝이 시원해졌다. 분노하던 할머니가 자신의 화를 못 이기고 물을 뿌린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할머니의 물을 정면으로 받은 건 할머니를 보필하던 아가씨였다. 아가씨의 얼굴과 머리카락, 상의 모두 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봉변을 당하기 전 레스토랑에서 찍은 엄마사진(물론 봉변은 내가 당했다.)
직원들도 나에게까지 물이 튀긴 걸 보더니, 할머니를 제지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보필하는 아가씨도 자신도 물을 흠뻑 맞아 정신이 없는 와중에, 함께 물을 맞은 외국인을 인지했다. 어떠한 악담도 잘 견디던 아가씨가 드디어 참을성이 바닥이 난 모양이었다. 아가씨는 할머니에게 나를 가리키며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현지어를 알아듣지 못하지만 아가씨의 어조와 제스처로 추측한 바로 분명 이런 내용이었다.
"이제 그만 좀 하세요. 물이 저 외국인한테까지 튀었잖아요."
할머니는 그제야 나를 인지하고,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는 동작을 반복하며 나에게 큰 소리로 사과했다. 레스토랑 사장도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고 인사하고는, 다시 할머니가 갔던 것으로 보이는 화장실 방향으로 직원들을 데리고 갔다. 나는 입에 샐러드를 가득 문 채, 아가씨와 주인에게 괜찮다고 제스처를 취하긴 했지만, 등이 축축해서 당장이라도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할머니의 잃어버린 물건 사건은 매우 허무하게 끝났다. 직원들이 할머니의 물건을 찾으러 화장실에 간 사이, 할머니는 몸을 뒤적거리더니, 드디어 물건을 찾아냈다. 아마도 할머니가 찾던 물건은 할머니의 휠체어와 할머니 몸 사이, 어느 구석에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급격하게 진정이 되더니 기력이 분노로 다 쓰였는지 몸에 힘이 다 빠졌다. 할머니와 아가씨는 그렇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조용히 자리를 떴다.
나는 이 사건으로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노인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거나, 공경을 받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젊은 사람은 연장자가 함부로 대해도 그것은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로 아무런 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치고 식당에서 나가니, 할머니와 아가씨는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식당 앞 나무 그늘 아래 있었다. 부하라가 얼마나 덥고 건조한지, 아까 물을 잔뜩 맞은 아가씨와 내 옷 모두 말라있었다.
작가의 말 > 연장자가 권력을 지닌 우즈베키스탄의 가정문화
위 사례에서 물을 정면으로 맞은 아가씨는 손녀일 수도, 며느리나 딸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연장자가 공개적으로 물을 뿌린 건, 폭력이었다는 겁니다.
제가 물을 맞은 단편적인 사례에서 유추했듯, 우즈베키스탄의 가정에서는 연장자가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고 합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한 심리학자는 우즈베키스탄의 가정폭력의 본질을 설명하며, 과거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출처)
회고에서도 알 수 있듯, 연장자는 최고의 힘을 가지며, 가정에서의 가장 약자는 며느리, 그리고 여자아이입니다.
할머니는 엄마를 감정적으로 학대했고, 그 결과 부모님은 많이 싸웠습니다. 내가 6살 무렵, 참다못한 엄마는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가출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버스정류장에서 엄마를 붙잡았고, 아이들만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또 그 이후 한 달 동안 가족들은 엄마가 집에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아빠는 내가 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먹게 했고, 먹지 않으면 구타 당했습니다. 어느날 제가 10살 무렵, 할머니가 저에게 달걀을 사보냈는데, 오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할머니는 깨진 달걀이 든 봉지로 내 머리를 내려쳤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막내아들이 대개 부모와 함께 삽니다.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것은 우즈베키스탄의 존경스럽고 훌륭한 문화 전통입니다. 노부모는 요양원으로 보내지지 않고, 가족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습니다. 가정 내 노인의 힘은 선하게 쓰일 수 있지만,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가정에서 양육 방식은 권위주의적이며 폭력적입니다. 며느리는 하루 세 끼 청소와 요리를 포함한 각종 집안일을 해야하며, 모든 가족 구성원을 책임져야 합니다. 이런 상황은 남편, 시부모 및 친척들의 가정 폭력에 의해 강제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