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그러나 실속 없는 영혼을 위한 찬가
출근하자마자 j가 슬그머니 내 옆에 무언가를 밀어놓았다.
“뭐니?” 내 말에 그녀는 웃음부터 흘렸다.
“별 것 아니에요. 이따 드시라고요. 음료수 사면서 같이 샀어요.”
“또? 사지 말라니까 또 사왔구나.”
“혼자 어떻게 먹어요? 같이 먹어야 해요.”
“그래, 누가 널 말리겠니. 고마워.”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호호호’ 웃었다. 나도 ‘흐흐흐’ 웃었다.
“대체 넌 어느 별에서 온 아이니?”
“우리별에서요.” “하하하, 호호호” 우리는 같이 웃음을 터트렸다
j는 아르바이트생이다. 대학교 사학년이고 서울에서는 내로라하는 여대에 다니는 여학생이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평일 오전에 나와 함께 일한다. 그녀를 알게 된 건 3년쯤 되었다. 3년 전에 비해 달라진 게 있다면 쌍꺼풀 수술을 받아 큰 눈이 더 커졌다는 것,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한 아이다. 아니, 순수함의 잣대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고 그녀의 엄마 입장에서 보면 속 터지는 아이일수도 있다. 어쨌든 난 그녀와 일하는 게 재미있다. 그녀덕분에 많이 웃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잤어?” 그녀와 일하는 날이면 내가 꼭 물어보는 질문이다.
“아니요, 못 잤어요.” 그녀의 대답 또한 늘 비슷하다. 잠을 안 잤거나 조금 눈을 붙였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게 제대로 잠을 못자고 출근했다는 거다. 그 이유는 아침에 못 일어날까봐서란다. 오전 7시까지 출근이니 어찌어찌하다보면 새벽이고 그러다보면 깊이 잠들어버릴까 두려운 거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출근하는 아르바이트생 j.
그녀는 출근할 때 꼭 뭔가를 손에 들고 온다.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나 요구르트, 아침용 간식이나 죽, 또는 김밥 등이다. 그런데 자신이 먹을 것만 사오는 게 아니고 꼭 곁가지를 붙여서 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를 나무랐다. ‘나는 아침밥을 먹고 오니까 너 먹을 것만 사와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콧등으로도 안 듣는다. 심지어는 골고루 사오기까지 한다. 덕분에 나는 평생 구경도 못해본 편의점 일회용품들을 맛보게 되었다. 나름 건강식들이다. 그녀는 나의 까다로운 식성(이를테면 인스턴트식품을 안 먹는)을 알기에 과일을 갈아 만든 주스나 두부, 요거트 등을 사온다.
그뿐이 아니다. 그녀는 11시쯤 되면 살며시 내 옆에 와서 속삭인다.
“뭐 시켜먹을까요?” 배시시 웃으며 큰 눈을 깜박거리고 있는 그녀를 보면 나는 그만 웃음이 터져버린다.
“난 밥 먹고 왔으니까 네 것만 시켜.” 내가 단호하게 말하면 그녀는 일인분을 시킨다. 그런데 입이 짧다. 그것도 다 못 먹는다. 슬그머니 접시에 덜어서 내 옆으로 밀어놓는다. 그리고는 내가 안볼 때 한 숟갈, 두 숟갈, 이렇게 얹어서 정작 내접시의 양이 더 많다. 한번은 공차가 먹고 싶어 죽겠단다. 빵집에서, 그것도 음료를 골고루 파는 빵집에서 공차를 시켜먹자는 그녀에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난 차가운 거 안 좋아하니까 네 것만 시켜.” 하지만 그녀는 두 개를 시켜야 한단다. 행사기간이라 두 개를 시켜도 반값이란다. 어찌나 졸라대는지 그만 허락하고 말았다. 사실 나는 공차가 뭔지도 몰랐다. 그녀덕분에 공차를 처음 마셔보게 되었다.
나는 그녀와 일하는 날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보다 한참이나 어린 아르바이트생이 뭘 사오는 것도 부담스럽고 이걸 먹자, 저걸 먹자 하는 것도 곤란했다. 그렇다고 아침도 안 먹고 출근하는 아이에게 음식 시켜먹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밥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빵으로 대충 때우라는 말은 더더욱 하기 힘들었다.
나는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터라 특별히 밥을 먹고 싶지는 않고 외식조차 안하는 내가 음식을 시켜먹는다는 것도 좀 그렇다. 더구나 퇴근을 두어 시간 앞두고 음식을 굳이 시켜먹을 일이 없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시켜서 펼쳐놓고 먹을 시간이 없다.
어느 날부터 나는 도시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j의 음식배달을 막는 건 내가 밥을 싸가는 방법밖에 없다 싶었다. 결단코 그녀의 배달앱 활성화를 막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볶음밥 종류를 만들었다. 시간이 없으니 일하면서도 먹기 간편한 볶음밥이나 주먹밥이 제격이었다. 나의 작전은 효과를 발휘했다. 내가 좋아하지도 않은 스팸볶음밥을 싸갔을 때 그녀는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했다. 그녀의 배달앱은 힘을 잃었다.
사실 그녀를 보면서 나는 우리 둘째아들을 많이 생각했다. 배달앱의 편리함에 빠진 아들과 몇 번 말다툼 전쟁을 치른 적이 있어 나는 그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빠르고 쉽게, 간편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에 빠져버린 요즘 젊은이들에게 밥다운 밥을 먹이고 싶은 엄마들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j는 엄마이야기를 자주 한다. 가끔은 엄마가 싫다고 한다. 잔소리를 많이 해서란다. 나한테는 세상없는 천사 같은데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툴툴거리는 j를 보면 꼭 우리아들을 보는 것 같다.
“이놈 자식, 엄마한테 말 예쁘게 안할 거야?” 하면 헤벨레 웃고 만다.
실속 못 차리는 j는 일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 일이 산더미같이 밀려있는데도 자꾸만 내 옆에 와서 “뭐 도와드릴까요?” 하며 오지랖을 떤다.
“이놈아, 너 일은 언제 다 할 거야?” 그러면 “그러게요. 언제 다 할까요?” 하며 웃는 j, 미워할 수 없는 아이다. 커피 주문이 들어오면 쪼르르 달려와서 자기가 하겠다고 할 때 ‘요 순진한 놈을 어찌 할꼬’ 라고 나는 생각한다. 제 이득만 챙기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커녕 이용하려는 사람들 천지인 세상에서 이 맑은 영혼이 어찌 견뎌낼까 걱정이 된다. 그녀는 대체 어느별에서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