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보호하는 감정 정리의 마법
격렬한 감정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숨겨져 있다. 작고 여린 감정들은 별 것 아니라고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분노나 증오, 불안, 기쁨, 수치심 같은 격렬한 감정들보다 오만, 아집, 외로움, 열등감, 시기와 질투, 가벼운 불안 같은 여린 감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질병 중에는 감기와 같이 증상이 분명한 것들이 있다. 고열이 나거나 오한이 발생하고 극심한 근육통도 준다. 증상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울지언정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간염, 간암과 같이 자각증상이 없는 경우는 결과가 많이 다르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린다. 자각증상이 없기 때문이다. 심각한 상태로 악화되기까지 아무런 신호나 증상이 없다. 간암의 경우 간의 70%가 감염될 때까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이런 경우 오히려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채 큰 위험에 처하곤 한다.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진단기술이 선진화된 국가일수록 주기적인 진단검사를 권장한다. 조기진단은 완치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간이라고 해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느낌이나 통증은 불완전하고, 몸과 마음은 때로 속고 속이기를 반복해서, 서로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다. 상황과 직책에 따라 가면을 바꿔 쓰고, 그래서 내가 나를 속이기도 하는 요즘 사람들처럼, 진짜 내가 누구였는지조차 알 수 없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면 제삼자의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처럼, 초음파나 내시경, 혈액검사 등의 적절한 진단도구를 통해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러한 진단검사가 바로 감정을 점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관심 속에 내팽개쳐진 감정들은 마음속에 쌓인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진다. 하지만 우리는 원인은 모른 채 그저 내가 요즘 피곤해서 예민한가 보다 하며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내면에서 보내는 분명한 SOS 신호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그때그때 털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과를 소화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에게 감정을 정리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조급한 마음으로 “감정을 쌓아두면 안 돼. 털어내어야만 해!” 이렇게 강박관념을 가지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난다. 더 불안해하고 민감해지고 또 다른 불안을 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조급함에 신음하기보다는 가볍게 산책을 하거나 바깥공기를 쐬면서 호흡을 고르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요한 포인트는 감정의 잔재를 수 일이 지나도록 마음속에 남겨두지 않는 것이다.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그 날 생긴 감정은 적어도 ‘그 날’ 정리하는 것이다. 매일 퇴근 후 또는 식사 후, 가족들이 잠든 시간 등 편안한 시간을 정해서 ‘감정 점검’을 하는 것이다. 점검 결과 노트에 쓰인 ‘감정 단어’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감정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정리된다. 나를 힘들게 하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별것 아니었음을 깨닫고, 한 번 알아차린 감정은 다음에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쉽게 정리된다. 알아차려주는 것만으로도 쉽게 정리되어가는 감정들을 느끼며 가슴속에 따뜻함과 후련함이 느껴질 것이다.
‘당일’ 정리하는 것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깊고 편안한 수면을 방해한다. 무의식에 남아 당시의 기억에 대한 잡음을 만들어 수면의 질을 떨어트리고 뇌의 휴식을 방해한다. 충분한 수면을 취한 후에도 개운하지 못하고 머리가 둔한 느낌이 든다.
아침의 기분은 하루를 좌우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의 컨디션에 따라 하루의 운세가 결정되는 것 같은 날도 있을 정도다. 하루의 시작이 말끔하면,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도 술술 풀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아침부터 삐그덕거리는 인상을 받으면 당시의 기분이 하루 온종일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잠들기 전에 그날 느꼈던 불쾌한 감정이나 사건, 느낌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일 정리의 원칙’을 통해 오늘의 부정적인 감정을 내일로 가져가지 않고, 다음 날을 생동감 있고 활력 넘치게 생활한다면 감정의 불순물들이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우울한 감정에 잠식되어 매일을 부정적 감정 속에 보냈던 적이 있다. 그때의 우울증이 유난히 나를 괴롭혔던 이유는 ‘감정 정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억울하고 부당한 느낌, 고된 하루를 보내고도 보람은 없는 하루,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비난당하는 느낌, 작은 실수 하나로 다른 노력들이 모두 무시받는 느낌’
이런 것들이 마음속에 쌓여 점점 덩치가 커지고 몇 가지의 의문형 문장들로 형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나는 왜 이렇게 무시받으며 이곳에서 버텨야 하는 걸까? 나는 왜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걸까? 언제까지 이렇게 버티며 살아야 하는 걸까? 이 삶에 끝은 있을까?’
답은 찾을 수 없고 불행만이 찾아졌던 이 질문들로 인해서 마음속의 불만과 불안, 괴로움, 미움, 증오 같은 것들이 더 쌓이고 증폭되어 갔다. 인생에 대한 비관과 선택에 대한 자책, 이런 것들이 가족에 대한 원망으로까지 이어졌다. 내 마음의 텃밭은 햇볕도 들지 않고 물도 이르지 않아 더욱 갈라지고 썩어버렸다. 당시의 나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상태였다.
지금 그때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다. 무엇이 나를 억울하게 만들었고, 내가 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드는지 그 원인을 찾아볼 것이다. 부하에 대한 공감능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말 따위 바라지도 않을 것이다. 다른 직책에 있는 동료와 나를 비교하지 않았을 것이며, 인생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나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혹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유사한 상황을 한 번쯤은 겪어보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노도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를 비난하는데 분노조차 치밀어 오르지 않는다면, 자신이 이미 정신적인 한계에 부딪힌 것은 아닌지 곰곰이 살펴보아야 한다.
분노는 여러모로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감정임에는 분명하다. 잘못 표출하다 보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기 때문에 억눌러야 하고, 잘 다스려야 하는 격한 감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 중에 필요하지 않은 감정은 없다. 분노 역시 자신을 지키는 역할을 하며, 외부의 공격에 대응할 최후의 수단이다.
치솟는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과 분노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상태다. 나에게 비난을 퍼붓거나 악의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 또는 추문을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런 상대방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최악의 상태를 의미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에 사랑과 애정이 사라진 상태, 나를 지켜주는 자존감이라는 방패가 사라진 상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비난 어린 화살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치명적인 상태에 놓이지 않기 위해 반드시 그 날 생긴 감정은 그 날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기 바란다. 시간이 약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감정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더욱 증폭되는 감정들도 있다. 방치해둔 감정의 문제들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될 상처들까지 받으며 살아간다.
타인이 배려해주기를 기대하기 전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서로 배려하고 따뜻한 호의만으로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엄혹하고 냉담하다. 우리는 타인에게 호의를 베풀 만큼 여유롭지 못하며,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벅차다. 마음속은 시장바닥처럼 온갖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신경 쓰기에는 인지 자원은 언제나 결핍에 시달린다.
내가 그렇다면 타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자.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피기에도 너무나 바빠 내 마음과 내 상처에까지 신경 쓰지 못한다. 그래서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삶 속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들과 관계, 그리고 갈등 속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주체는 오로지 자신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