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 점검해보기

by 작가 전우형

힘든 상황에 놓이거나 커다란 시련을 경험할 때 격렬한 감정을 느낀다. 때로는 심적 마비 상태가 되어 온몸이 얼음장처럼 식어버리기도 한다. 느껴지는 감정의 색깔은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할 때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극단적 선택을 내리거나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하며, 씻을 수 없는 인생의 오점을 남기기도 한다.


감정의 홍수로 이성이 마비되는 순간에 놓인다면, 우선 들끓는 감정을 달래는 것이 중요하다. 펄펄 끓는 주전자 속은 들여다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감정을 일으킨 상황은 금방 종료되지만 한 번 시동이 제대로 걸린 감정은 가라앉는데 시간이 걸린다. 분노가 또 다른 분노를 부르고 슬픔이 계속해서 눈물의 재료를 찾는 것처럼, 현재를 지배한 감정을 기폭제로 다른 감정이 계속해서 생산된다. 감정에 감정을 더하다 보면 나와 감정의 구분이 불가능해진다. 감정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감정이라는 급류에 내가 휩쓸려가는 상태가 된다.


펄펄 끓는 감정 덩어리를 나로부터 분리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감정에 휩싸여 함께 흥분하고 있는 내가 아니라 제삼자의 눈으로 뚜껑이 들썩이는 주전자를 바라보는 것이다. 감정의 진원으로부터 심적 거리를 두면 현재의 상태를 조금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물을 너무 많이 부었구나! 가스불이 너무 세게 틀어져 있었구나. 사소한 일로 내가 너무 흥분했었구나!’와 같이 문제를 좀 더 이성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우선 나를 힘들게 만드는 감정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내어야 한다. 점검의 사전적 의미는 ‘낱낱이 검사함’이다. 세밀하게 있는 그대로를 살펴보는 것이고 대부분의 점검의 목적은 더 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점검은 주로 타인이나 타 기관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스스로 체크하는 것만으로는 명확히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점검하는 과정은 철저히 스스로 제삼자가 되어 자신의 현상태를 바라보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내 감정을 점검한다는 것에 대해 개략적인 의미는 짐작되겠지만 그보다도 막연함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제삼자가 되어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 정도로는 제대로 된 점검이 이루어지기 힘들다. 우선 상상을 통한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을 설명하면 개략 이렇다.




마음속으로 한 가지 형상을 떠올린다. 자신이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물체도 좋고 사람도 좋다. 나의 경우에는 주전자를 주로 생각했다. 주전자를 ‘나’로 상상하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가장 격렬한 감정을 ‘주전자 뚜껑’에 이름 붙인다. 불꽃이 하나 있다. 서서히 그 불꽃은 주전자를 끓이기 시작한다. 이 불꽃에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가상으로 써본다. 그리고 점차 들썩거리는 주전자뚜껑을 상상하고 가스불을 점점 낮추어 불이 완전히 꺼진 상태를 상상한다. 그때부터 느껴지는 감정이 무엇인지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정자로 써본다. 남는 것이, 더 이상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까지 꺼내어서 써본다. 최종적으로 아무 느낌도 들지 않으면 감정을 점검하는 과정이 끝난 것이다.




종이에는 어떤 감정들이 써져 있는가? 눈으로 그 단어들을 보기 바란다. 쓰여 있는 그 감정들이 바로 여러분이 정리해야 하는 감정들이다. 내면에 잠자코 숨죽이고 있으면서 서서히 속을 썩여가는 실제 감정들인 것이다. 이제 그 감정의 원인을 찾아 하나씩 해결하는 것이 남았다. 바로소 감정을 정리할 실마리들을 찾게 된 것이다.

감정이 모두 격렬한 형태로 반응이 잃어 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마음을 동결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극심한 공포 상태가 바로 그렇다. 어쨌든 이 힘이 센 감정들에 힘이 약하고 여린 감정들은 깊은 곳에 묻혀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내게 생겨난 감정적 문제들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이나 쓸쓸함, 소외감과 같은 여리고 부드러운 바깥으로 잘 표출되지 않는 감정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 감정들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점검하는 과정이 필수다. 우리는 그것을 연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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