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온갖 감정이 휘몰아칠 때

눈물의 출처도 모른 채 나는 왠지 슬퍼졌다.

by 작가 전우형

거울 속에는 기이한 표정의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은 나와 닮았지만 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내 얼굴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복잡하고 의뭉스러워 보이는 그의 표정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었지만 다만 나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해석되지 않는 목소리들로 인해 마음만 더욱 복잡해졌다.


한동안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그를 응시했다. 눈을 깜박이기라도 하면 그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그를 불렀지만 그는 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로의 존재를 느끼면서도 서로 의미 있는 교감을 나눌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응시하던 눈빛을 거두었을 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다만 이제는 나와 똑같은 얼굴과 표정을 한 우울한 눈빛의 남자가 서 있었다. 차마 더 이상 쳐다볼 수 없어 뒤로 돌아섰다.


나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두 볼을 따라 흐르는 차가운 물방울의 흔적은 때로는 시렸고 때로는 뜨거웠다. 눈물의 출처도 모른 채 나는 왠지 슬퍼졌다. 고개가 떨구어졌고, 손톱자국이 아릴 정도로 주먹을 말아쥐었지만 한번 내리기 시작한 눈물방울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입을 열면 처량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부끄러운 눈물을 누군가에게 들키기 실어 흐르는 눈물을 닦는 것을 포기한 채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순간적으로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금 흐르는 이 눈물은 이들 중 과연 누구의 것일까?




이유 없이 마음속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칠 때가 있다. 감정의 홍수에 이성이 휩쓸려가고, 머릿속은 더욱 혼탁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감정은 결코 같은 편이 아니다. 감정이란 녀석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만들어지지도 않고,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의지와 감정은 서로 상극이다. 의지로 찍어 누르려할수록 감정의 반발은 더욱 심해진다. 결국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감정은 온종일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감정은 항상 혼자 오지 않았다. 한 가지 감정의 끝에는 또 다른 감정의 방아쇠가 걸려 있었다. 하나의 감정선이 당겨지면, 그것이 또 다른 감정을 촉발시키고, 이 연쇄반응은 한 번 시작되면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날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감정으로 가득 찬 나의 하루에 행복을 논할 여유 따윈 없었다.




감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감정이 걸어오는 대화에 응할 수 있게 됐고, 희미한 안개를 걷어내고 감정의 본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두려움이 줄어들었고 불안도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자연스러운 감정의 변화에 순응하게 되었고, 내면 깊숙이 잠재된 숨은 감정들을 감당할 수 있었다.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이 쉽지가 않다. 마치 외국인과 처음 대화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것보다, 그들이 하는 말을 해석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처럼, 감정이 걸어오는 대화에 응하려고 해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감정의 언어'를 익혀야만 한다.


감정의 언어를 익히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감정을 우리가 흔히 쓰는 언어로 형상화해보는 것이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상상 속에 그려보자. 감정은 언제나 사건과 함께 해왔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감정이 떠오르는 경우는 없다. 다만 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감정을 느낄 겨를이 없을 정도로 다른 무언가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 아이가 교통사고가 나서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부모는 당장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다만 정신없이 그 병원을 향해 달릴 뿐이다. 주마등을 스치듯 온갖 감정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것도 우리가 인지할 수 있을 수준으로 마음을 파고들지 못한다. 당시의 마음속에는 온통 아이에 대한 걱정뿐, 내 감정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고 아이가 이미 들어간 수술실 문 앞에 멍하게 서 있을 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온갖 감정이 머리를 들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눈물이 흐르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때로는 오한과 현기증, 호흡곤란 등의 신체증상이 나타나지만 이 증상들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다만 슬픔과 분노 등과 같은 대표적인 몇몇 감정들만 희미하게 느낄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언어를 이해하게 되면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문장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것들은 대략 이런 내용일 것이다.


아이를 다치게 한 운전자가 원망스럽고, 초등학생밖에 안된 아이를 혼자 하교하게 한 것이 후회스럽고, 무슨 중요한 일을 한다고 아이 혼자 내버려 뒀는지 스스로에게 자책감이 든다. 지금 옆에 없는 배우자가 밉고, 아이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유난히 외롭고 어깨가 시리며, 신이 있다면 그에게 빌고 싶어 진다.




감정의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감정을 진정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 그들의 말을 알아차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들고 억울하고 외로울 때 그런 심정을 알아차려주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마음은 훨씬 더 편해지고 진정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감정들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려주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다만, 감정에게 그런 일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대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살펴보는 것을 등한시한다. 다른 사람을 살피느라 바빠 자신의 마음을 돌볼 겨를이 없다. 그래서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조용히 감정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중요하다. 내가 나의 감정을 읽어줄 수만 있어도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것은 몇 배로 쉬워진다. 물론 그 감정에 누명을 씌우지 않고 긍정적 감정, 부정적 감정으로 양분하지 않는 단계로 이어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거기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일단은 충분하다. 자신의 감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나머지는 서서히 이루어져 간다.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솟아오를 때면 잠시 그 상황을 벗어나 시간을 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대개 이런 상황은 누군가와 극한의 갈등 상황일 경우가 많다. 그 상황이 벌어진 장소로부터 물리적 거리를 두는 행위는 당시의 감정과 심리적 거리를 두는 효과를 준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상황을 보면 자신만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상황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 더불어 감정으로부터 심리적 거리를 벌이면 감정을 느끼는 주체에서 잠시 벗어나 감정에 휩싸인 자신의 모습을 또 다른 시선으로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초감정의 영역에 진입하면 감정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더 쉽게 진정시킬 수 있다.


감정은 에너지의 또 다른 형태이기 때문에 통로를 만들어주면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때때로 폭발하는 감정에너지를 진정시키기 위한 잠시의 시간이다. 일단 거리를 두면 이성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감정을 정리할 수 있다. 부풀어 오른 풍선의 공기를 빼면 그 풍선이 원래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때때로 진정시키기가 무섭게 곧 다른 감정이 일렁이기 시작하지만, 그때는 그저 내버려 두는 방법으로 대응하면 된다. 이때 도움이 되는 것은 빠른 걸음과 산책, 그리고 심호흡이다. 빠른 걸음은 에너지를 배출해주며, 산책은 시각적 이미지의 전환을 통해 상황이 바뀌었음을 암시하는 효과를 준다. 깊은숨을 내쉬고 새로운 공기로 몸을 채우는 심호흡은 감정 주머니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해 감정을 진정시켜주고 막힌 구간을 열어주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 중 한두 가지만 해도 감정의 급한 불은 꺼지고 마음이 한결 진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감정 주머니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나면, 상대방의 감정을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상황을 보다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갈등은 줄이고 협력의 손을 내밀 수 있으며, 적을 만드는 대신 친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감정의 조급한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나면 잠깐이라도 자신만의 대화 시간을 가져보기 바란다. 고요한 마음으로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해보며 내가 원하는 행복의 선명한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차분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은 감정을 진정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주로 이런 시간을 이용해 감정일기를 쓴다. 하지만 '쓰기'라는 행위가 편하지 않다면 그저 나와 대화를 나누는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하다. 감정으로 가득 찬 마음에는 행복이 들어설 공간이 없다. 행복이 거주할 좋은 집을 만들어주는 자신만의 지혜를 발휘한다면, 내일 눈을 떴을 때 조금 더 좋은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자신만의 스킬을 연습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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