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이미지는 마음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주변을 정리하면 우리의 감정도 함께 정리된다.

by 작가 전우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덮친 이후로 예전보다는 평온해졌지만, 그래도 평일 아침은 꾀나 부산스러운 시간이다. 집이라는 안전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조건의 변화는 어른이 된 부모와 성장 중인 아이 모두에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출근준비를 할 때는 놀이공원을 가거나 가까운 맛집을 찾아나설 때와는 달리 준비하는 과정은 더디고 순탄하지 않다. 불편한 환경으로 제발로 가야한다는 현실을 맞이하고싶지 않은 무의식적 반발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준비가 잘 끝나고도 출발을 못하는 일도 있다.




그날따라 모든 준비가 순조로웠다. 기상시간도 적절했고 아침도 잘 먹었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옷을 다 입고도 시간이 남을 정도였다. 이제 통원버스가 올 시간이 되었고 아이와 웃으면서 현관문을 나섰다. 그런데 막상 통학버스가 도착하는 것을 본 막내아이의 얼굴이 사색이 되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망부석이 된채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막내아이를 웃으며 달래보지만, 아이는 말을 듣지 않았다. 다른 날이었다면 통원버스를 보내고 따로 태워주었겠지만 그 날 따라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울음보가 터진 아이를 안아서 통원버스에 반강제로 태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급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를 억지로 보낸 것이 걱정스럽고 후회되었다.


아이를 그렇게 떼어내듯 보내야만 했을까? 볼일을 봐야 한다는 건 어쩌면 핑계는 아니었을까? 출발한 뒤로는 울지 않고 잘 놀고 있는걸까?


온갖 생각의 꼬리들이 물음표를 그리며 머릿 속에 떠다녔다. 문을 열자 집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옷가지들, 아이들의 장난감, 쌓인 설거지거리, 가스렌지 위에 놓여진 후라이팬과 냄비, 안방의 이불더미들이 보였다. 모든 형광등은 켜져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속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던 나는 청소를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커튼을 묶었다. 늘어져있는 빨래들을 통에 담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장난감들을 박스에 담았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니 그나마 방바닥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 했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베란다 너머로 세탁기 소리가 들렸고, 가까이에서는 커피포트에서 나는 보글보글 끓는 물소리가 들렸다. ‘탁’ 소리로 커피포트는 자신이 일을 끝냈음을 알려주었고, 팔팔끓는 물을 커피잔에 천천히 부었다. 자욱한 수증기와 함께 커피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커피를 한모금 들이키자 다시 아침의 일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상념들을 그저 지켜보며 가만히 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떠오르는 잔상은 많았지만 아침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심각했던 마음이 차분해진 것이 느껴졌다. 떠오르는 장면들은 커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처럼 이리저리 흩어졌고 마음 속은 한결 개운해졌다.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아이가 잘 놀고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별탈없이 잘 있는 듯 했다. 아침에 등원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어려움을 겪은데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만 지나간 일이었다. 이미 엎어진 물을 걱정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침에 아이를 섭섭하게 보낸만큼, 하원은 통학차량을 통하지 않고 직접 데려오기로 했다. 막내아이는 직접 데리러 오는 것을 은근히 반길 것이었다.




어떤 일에 과도하게 심각해지거나 복잡해질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에 관한 일이라면 부모는 종종 그런 심경에 빠지곤 한다. 그만큼 부모에게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원하는대로 될 수 없는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과정도 마음먹은대로 잘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일상을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때로는 시간이나 조건, 상황 등에 쫓겨 충분히 숙고하지 못한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도 맞이한다. 그래서 우리가 내리는 선택과 결정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조차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때 그러지 말걸... 내가 왜 그랬을까...’ 이렇게 때늦은 후회를 한다.


스스로 반성하고 분석하는 자아성찰의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여기에 과도하게 얽매여 자책, 후회, 불만족, 자기비하와 같은 반갑지 않은 감정들을 양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반성할 부분은 받아들이고 고쳐나가야 겠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에는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 불편한 감정을 오래 가져갈 필요는 없다.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는데는 청소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의 이미지는 우리의 마음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집에 처음 들어설 때 현관에 신발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면 뭔가 기분이 말끔하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는 사소한 일로도 평소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민해지고 별 것 아닌 말에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공간을 맞이하면 우리의 마음도 평온해질 뿐 아니라 한결 개운하게 정리된다.


더불어 사람은 어떤 일에 집중할 때 다른 것을 잊어버릴 수 있다. 인간의 인지용량은 한정적이고 우리의 뇌는 멀티태스킹을 하지 못한다.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은 한정적이다.

주변의 물건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가는 동안 우리 마음속의 응어리나 감정도 함께 정리된다. 물건들은 형상화된 감정덩어리가 되고, 그 물건들이 정리된 모습은 우리 마음 속 공간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정리에 필요한 새로운 공간을 제공해준다. 물건을 정리할 때 가장 답답한 순간은 정리할 물건들은 가득한데 공간이 없을 때다. 그래서 많은 정리 노하우에서 최우선 단계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다.

일단 공간이 생기면 정리는 의외로 쉽다. 새로운 공간에 물건들을 꺼내어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한 후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고, 나머지는 차곡차곡 정리해서 넣어주면 된다. 청소와 정리를 하는동안 시간이 흐르고 마음속에 폭발하던 물음표와 느낌표들이 진정되고 나면 한바탕의 전쟁이 지나간 것이다. 다시 마음 속 상황을 살펴보면 복잡할 것만 같았던 감정들이 의외로 쉽게 정리되는 경우도 많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 폭발하는 그 순간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오로지 빨리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강박적인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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