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예비전력을 갖추자

'열린 결과' 받아들이기

by 작가 전우형

사관학교 시절 달리는 것은 일상이었다. 일어나면 달렸고, 식사 후에 갑자기 달렸고, 해가 뜰 때도 달렸고, 해가 질 때도 달렸다. 해를 보면서도 달렸고, 달을 보면서도 달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달리기는 점점 익숙해졌지만 한 가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달리다 보면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온다. 심장은 폭주하고, 폐부는 답답해져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신호를 보내온다. 옆에는 같이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만 뒤쳐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들과 어깨선을 맞추려 안간힘을 쓰다 보면 어느새 골인지점은 다가와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순간도 있었다.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지점에서 멈추지 않을 때였다. 그 순간은 달려온 거리와 관계없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고통스러운 훈련이 끝날 것이라는 간절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느끼는 절망과 당혹감, 더 버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더욱 죄어오는 것만 같았다.




달리는 것은 정해진 코스가 있었다. 군가를 부르며 달릴 때도 있었고 부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 난이도는 큰 폭으로 변했다. 5km를 달리더라도 체육복으로 자연스럽게 달릴 때는 편했지만, 3km를 달리더라도 군화를 신고 무장이 추가되면, 거기다 번호를 붙이고 군가까지 부르게 되면 난이도는 몇 배가 되곤 했다. 하지만 훈련에도 정해진 루틴이 있었다. 경험이 축적되면 각각의 훈련에 대한 예상치가 형성된다. ‘매주 금요일은 단독 무장으로 3km 코스를 달리는 날’과 같은 계획된 훈련이 있었고,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오늘의 난이도에 대한 심적 준비를 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목표’가 되었고, 목표를 정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거기에 맞춰 세팅을 시작한다.


개인 운동과는 달리 단체훈련은 나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예상과 다른 여러 가지 변수들이 발생한다. 종료지점이 도달했는데 달리기가 끝나지 않거나 주위 사람의 등짐에 추가로 들어야 하기도 하며, 속도 역시 훈련을 주관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졌다. 그래서 내가 정한 ‘목표’는 때때로 내가 정한 ‘한계’로 작용하는 일이 많았다.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한계를 정하지 않는 것’이었다. 습관적인 예측은 버리고,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한 ‘심적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예비전력’을 남겨두는 것이었다. 정해진 곳에서 훈련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언제든지 상황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삶을 살아내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무엇하나 계획한 대로, 예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언제나 ‘우발상황’이 발생하고 ‘돌발변수’가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한계선’을 긋지 않아야 한다. 정해진 목표에 집착하면 낙심하기 쉽다.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의기소침해지고 계속하기를 그만두게 된다. 실수나 실패를 부정하고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하고, 남 탓과 환경 탓을 하기 쉽다.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할수록 상황을 바라보는 렌즈는 흐릿해지고 왜곡된다.


‘열린 결과’를 받아들이려면 ‘마음의 예비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괴로움에 휩싸여 눈앞의 상황을 부정하기보다,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불필요한 자책, 감정 소모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감정’은 곧 ‘에너지’다. 그것을 유용한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적은 줄이고 아군은 늘리는 중요한 과정이다. 필요한 방향으로 모든 노력을 집중할 수 있을 때,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도 생겨난다.




오늘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그것에 심각하게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저 ‘잘 안 되는 날’도 있는 것일 뿐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통해 부정적인 자기 평가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열린 결과’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자책과 비판에 쏟을 에너지를 원인 분석을 통한 계획 수정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목표를 조정하고, 자신에게 적합한 방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모든 목표는 ‘시간’이 완성해준다.


삶을 살다 보면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때마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자책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히려 좌절, 절망, 자책 등의 감정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하던 목표에 더욱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상황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내가 세운 완벽한 계획은 사실 허점투성이라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할 때 새로운 시도를 지속할 수 있다.


‘마음의 예비전력’을 갖추는 것은 작은 ‘보조배터리’를 두는 것과 같다. 언제든 우리의 마음은 갑작스럽게 방전될 수 있다. 위기의 순간을 버텨줄 예비전력을 확보해둔다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삶의 태도를 통해 원하는 그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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