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해도 괜찮아

by 작가 전우형

머리를 들지 못했다. 새벽 4시. 기억은 없으나 아내의 귀를 만졌고 짧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아내가 고민하던 일 하나를 해결하고 다시 잠들었다고 했다. 그러곤 죽었나 싶어 쳐다볼 때마다 코를 한 번씩 골았다고, 아내는 창백하게 말했다. 아내는 그 시간에도 깨어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 바쁜 때였다. 고단함이 반가울 때가 있다. 더 버텨낼 수 없을 만큼 온몸이 무거울 때면 어떻게 잠들까 고민할 틈 따윈 없었다. 그러나 때때로 잠은 달아났다. 달아나는 잠을 붙잡을 한 줌의 기력조차 소진된 날에는 한참을 신음하다 어느 순간 세상의 전원이 내려가버렸다. 쌓인 설거지를 하는데 눈물이 흐르던 날도 있었고 슬프지 않고 웃긴데 눈가에 물기가 맺힌 날도 있었다. 그만큼 고단함은 때로 버거웠다.


심장의 두근거림마저 고단한 날이 있었다. 소란스럽던 마음도 잡담을 멈추곤 했다. 아침이 먼 새벽이었다. 바람은 멎었으나 갈대는 여전히 춤을 추었고 초승달 그림자는 흐릿했다. 입모양만 남은 말들이 대기를 떠 다녔고 끝이 바싹 마른 만년필은 아무리 그어도 쓸모없는 자국만을 남겼다. 거울 속에도 나는 없었다. 꾸지 않은 꿈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을 때면 나는 커피를 내리곤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커피 향만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고단해도 괜찮아. 나는 살아있는걸. 나는 숨 쉬고 있고, 사랑하고 있는 걸. 나는 잠들 수 있는 걸. 누군가는 지극히 꿈꾸고 소원할 그런 하루를 나는 살아가고 있는 걸. 죽은 사람은 잠들 수 없어. 그는 잠들어 있을 뿐이야. 죽음을 앞둔 이도 잠들 수 없어. 두려움에 떨다가 깜빡 곯아떨어질 뿐. 그는 다시 눈을 떴을 때 가슴을 쓸어내려. 선택권 따윈 없으니까. 그러니까 고단해도 괜찮아. 그건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꿈은 소리 없이 날아왔다. 날카롭게 벼려진 말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나의 몸은 온통 흘린 피로 흥건해졌으나 아픔은 없었다. 하얗던 생각들이 빨갛게 응고되어갔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멀리 날아가는 자유를 응시했다. 그곳에 선 채로 손을 뻗었다. 어깨를 쭉 내밀고 발 끝을 들었다. 잡을 수 없는 모든 것들이 가만히 멀어졌다. 눈을 떴을 때 나는 여러 개로 갈라진 시곗바늘을 보았다. 코 끝이 뜨거웠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도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다. 손끝과 발끝에 전류가 흘렀다. 양손을 입에 대고 후후 불었다. 머릿속에서 쇠그릇 긁는 소리가 들렸다. 쓴 내가 입 안을 맴돌았다. 무릎을 당겨 안았다. 동그랗게 말린 몸 안으로 얼굴을 묻었다. 뜨거운 호흡이 심장을 달궜다.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축축하게 젖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 음표들이 귓바퀴를 두드렸다. 감각들이 일제히 아침을 속삭이며 눈꺼풀을 당겼다. 눈을 비비며 머리를 드는데 모든 관절들이 삐그덕거렸다. 그 생생한 비명소리가 내게 말했다. 이제 일어나라고. 다시 하루를 꿈꾸며 힘껏 고단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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