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날이 많아졌어

둔하긴

by 작가 전우형

내가 웃음이 많아졌대. 원래 웃음이 없었는데 자꾸만 웃고 있다지 뭐야. 그래서 거울을 살짝 들여다봤지. 티 나지 않게, 몰래 웃어봤어. 그러다 그만 홱 돌아서고 말았지. 얼굴이 뜨거워졌어. 역시 어울리지 않더라고. 하지만 좋았던 것 같아. 그의 목소리가. 무심히 빛나는 시간들이.


실없는 웃음이 피식하고 터져 나온 건 아마도 투명한 말풍선 때문이었을 거야. 그는 혼잣말을 한 후에 0.3초 정도 멍하게 허공을 바라봐.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난 분명히 목격했지. 그리곤 "으이그!" 하며 가벼운 자책을 시작하는 거야. 그 버릇이 소설 캐릭터처럼 독특했어. 내가 얼굴에 옅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는 건 뒤늦게야 알게 되었지. 그가 왜 웃냐고 자꾸 물어봤거든. 그러다 문득 안색이 불그스름해지더니 말이 없어지는 거야. 그 후로는 웃음을 참아보려고 노력했어. 내가 웃는 순간 그가 멈춰버리니까. 하지만 그게 요즘 약간 느슨해졌나 봐. 다시 타이트하게 조이기로 하고.


입술을 만지작거리던 그가 손뼉을 탁 치며 말했어. "맞다! 할 일이 생각났어!" 그러고는 주섬 주섬 연필통을 뒤졌고, 이내 그의 손에는 손톱깎이가 쥐어졌지.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자신이 왜 어제 손톱을 못 깎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내가 또 슬며시 웃고 있었나 봐.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되는 걸. 그는 그렇게 눈앞에서 잠깐 사라졌어. 주변이 온갖 소음으로 시끄러웠는데도 또각또각하는 소리는 선명하게 들렸어. 연속으로 여섯 번. 가끔은 일곱 번. 돌아온 그에게 또 핀잔 아닌 핀잔을 들었지. "오늘 좀 많이 웃는 것 같다?" 그랬나? 난 내가 왜 웃었는지를 생각해봤어. 결론이 나왔는데. 그건 비밀로 하려고.


그가 기다랗고 무거운 검은색 두터운 천으로 덮인 무언가를 낑낑거리며 앞에 놓았어.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지. 이건 또 뭔가 싶었거든. "그게 뭐예요?" "신디." "신디?" "신디 몰라 신디?" 내가 눈만 끔벅이고 있자 그는 혀를 찼어. "애들도 다 아는걸?" 모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디지털피아노랑 비슷한 것 같은데. 결국 그는 신디가 무엇인지 내게 설명하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어. 나는 전학 첫날처럼 '신디' 앞에 대면 대면하게 홀로 서 있었지. 그래서 오늘 또 다른 '그'에게 '신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어. "저거 뭐야?" "아아 그거. 신디 말하는 거야, 신디." 그래서 신디가 뭐냐고. 난 여전히 신디가 뭔지 모르는 채로 그저 웃고 말았지. "너 요즘 많이 웃는 것 같다?" 그러게 말이다. 하도 신디, 신디 하다 보니까 이제는 알 것 같더라고. 신디. 그래, 신디. 사람 이름 '신. 디.' 이제부터 네 녀석 이름은 신디다. 이 거먼 천에 덮인 거대하고 길쭉한 놈아. 그나저나 얜 또 어디다 치우지?


아침부터 날이 거무죽죽했어. 소나기라도 한 바탕 쏟아질 것처럼. 그런데 비는 안 오고 공기만 온통 축축한 거야. 이런 날은 브라질이 제격이라고. 그래서 Feima 그라인더에 브라질 원두를 붓고 버튼을 눌렀지. 커피콩의 비명소리가 들렸는지 그가 묻더라고. "커피 내려 주려고?" "어? 응..." 물론 혼자 먹을 건 아니었지. 같이 마실 생각으로 준비를 시작한 거긴 한데... 그냥 문득 웃음이 나오더라고. 내가 커피를 내리면 같이 마시는 게 당연한 거구나. 얼마 전까진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보통은 내가 먼저 물었었지. "커피 내려줄까?" 하고. 그게 기분 좋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는데. 그러곤 잔에 커피를 따라주는데 그가 또 그러는 거야. "너 요새 자주 웃는다?" 그러게. 웃을 일이 많아졌나 봐. 자주 웃는다는 말. 많이 웃는다는 말. 그리고 웃고 있다는 말.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는데. 자꾸 듣게 되는 이유가 뭘까. 실없는 웃음이라기엔 이유가 너무 명확한걸.


넌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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