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단 엉덩이를 뗀다.
2. 눈을 비비며 샤워를 한다.
3. 출근한다.
4. 에스프레소 머신을 청소한다. 추출구에 잔뜩 낀 찌꺼기를 솔로 긁어낸다. 속이 다 시원하다.
5. 커피 그라인더를 청소한다. 덜 흘릴 방법을 찾다가 그만둔다. 에이.
6. 마른 잔을 정리한다.
7. 쌓인 설거지를 한다.
8. 더치커피를 확인한다. 밤새 많이도 내렸군. 역시 시간의 힘은 위대해. 물과 얼음을 적당히 채워준다.
9. 드립백을 만든다. 팔리는 건 없는데 잘도 사라진다.
10. 더치커피 내려둔 걸 소분해서 병에 담는다.
11. 더치 기구를 세척해 건조한다.
12. 테이블을 닦고 바닥을 쓴다.
13. 에스프레소를 추출한다. 굵기와 색을 확인하고 맛본다. 크으 하고 미간을 찌푸린다. 언제쯤 음~ 하게 될는지.
14. 호퍼통에 원두를 채운다. 별로 없네?
15. 재고 확인도 할 겸 교회로 올라가 본다.
16. 겸사겸사 해피 밥과 물을 챙겨준다. 어제 곰탕 고기를 좀 갖다 줬더니 퍽 친근한 눈빛을 보낸다.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이런 겁보.
17. 닭들이 꽉 꽉 거 린다. 목이 말라서 그런 거란다. 물을 주고 사료도 좀 주고. 아직 우리를 열고 들어가 볼 짬은 못된다.
18. 예배당에서 잠시 멍을 때린다. 기도해볼까? 그런데 안 떠오른다. 하나님?
19. 빈병이 수두룩하다. 고민하지만 답은 없지. 브라질 원두 한 통? 아니 두 통을 챙겨서 내려온다. 이따 틈을 봐서 또 볶아야겠군.
20. 시골길을 달리는 차들을 본다. 아산 쪽에서 나오는 차가 지금은 더 많은 것 같다.
21. 핸드드립을 내린다.
22. 강태공이 된 기분으로 손님을 기다린다.
23.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펼쳐 든다. 잠이 온다. 꾸벅꾸벅 존다.
24. 카톡을 열어본다. 조용하다.
25. 브런치 알림도 체크해본다. 역시 조용하다.
26. 캘리그래피 노트를 펼친다. 감탄한다. 나는 쓸 수 없을 것 같아서 조용히 덮는다.
27. 노트북을 연다. 어디까지 썼는지 한참을 생각한다.
28. 종소리가 울린다. 손님을 맞이한다.
29.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 한잔은 연하게. 타서 드린다. 안녕.
30. 다시 자리에 앉는다. 어디까지 썼는지 생각한다. 자판에 손가락을 살포시 얹어본다. 김영하 소설가가 그랬지. 딱 한 줄. 한 줄만 써보는 거야.
31. 갑자기 더치커피가 궁금하다. 3초에 한 방울. 강박적으로 맞춰본다. 아무래도 안된다. 에이. 대충 내려오라지.
32.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는다.
33. 중간고사 생각에 심란하다. 이래 봬도 이번 주 일곱 과목 시험을 본다. 당연히 공부는 안 했다.
34. 노트를 펼치고 이렇게 고독을 이겨내는 법을 끄적인다.
35. 음... 더 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