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이내 잠들었다. 총소리에 놀란 군중처럼 아이들의 소란은 순식간에 잠잠해지고 고단한 숨소리만 이불에 내린 밤을 어루만졌다.
세 아이는 다투는 게 일상이다. 한 사람만 가질 바에야 아무도 갖지 못하는 게 서로에게 이롭고, 사소한 것 하나도 손해 볼 것 같으면 눈물을 글썽이며 방어로 일관한다. 심지어 잘 자라는 인사도 세 번을 돌아가면서 하고 엄마의 애정 어린 대답을 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걸로 끝은 아니다. 다음 절차로 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엄마 사랑해를 외친다. 이 역시 답을 들어야 끝난다. 샘이 가장 많은 둘째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데 내리 다섯 번을 찾아와서 엄마 사랑해를 외치다가 나한테 방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분리 불안인지 엄마 품에 대한 미련인지, 잠들기 직전에는 그 수치가 최고조에 이르는 모양이다. 둘째가 그러는 것을 보더니 막내도 찾아오기 시작했다. 위안이라면 이제 중학생이 된 첫째는 사랑해 도돌이표 놀이를 시답잖게 본다는 것.
어른도 못하는 걸 아이에게 강요할 방법도 없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지만, 내가 극혐 하는 건 조르거나 애걸복걸하는 모습이다. 뭐든 적당한 게 좋다고, '적당함'의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달라짐에도 나는 늘 도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으면 신경이 곤두서고 만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과민함도 따지고 보면 '적당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어서, 나 또한 '그만해 병'같은 것에 걸려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잠드는 순간까지도 누가 가운데에 잘 건지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결국 막내는 눈물을 글썽였고 둘째는 입이 툭 튀어나왔으며 첫째는 애매한 판결문을 읊으며 동생들의 속을 더 뒤집어놓았다. 셋 다 감정만 상한 채로 차례차례 서로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다. 전쟁도 잠은 자면서 해야 한다는 걸 아이들은 몸소 보여준다.
긴 하루 끝에 불이 꺼지고 아내는 충혈된 막내의 눈을 살피며 내일의 일과를 정해주었다. 안과를 간 후에 학교로 데려다주라고. 알레르기 때문인 것 같은데 처방받은 약 먹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몇 가지 전달사항을 내게 알려주었다. 대충 알아들었나 싶게 대화는 끝을 맺었지만 아마도 나는 내일 안과 의사 선생님 앞에서 특별한 말을 내뱉지 않을 심산이었다. 어제부터 오른쪽 눈 흰자가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다고 말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해주시겠지.
그나저나 내일이면 개강이었다. 아내는 피곤에 지친 얼굴로 강의자료를 살피고 있었다. 블루라이트 필터 기능이 있는 안경을 쓰고 있는데 썩 괜찮아 보였다. 평소와는 다른 지적인 이미지랄까. 물론 아내는 '평소와는 다른'이라는 대목에서 눈을 치켜뜨겠지만. 대개 내 앞에서는 장난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한다는 걸 본인도 인정할 것이었다.
아내는 슈퍼맨이자 원더우먼이다.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풀어내고 말도 조리 있게 한다. 논문과 연구도 척척 해낸다. 요리도 잘하고 아이들도 성실하게 챙긴다. 전투의지가 높아 내가 지레 체념하고 물러설 때도 손해보지 않게 나서서 해결해 줄 때도 있다. 일상적인 부분, 그러니까 오늘 저녁으로 뭘 먹을까? 이번 주말에는 어딜 놀러 갈까? 와 같이 특별히 고민하지 않아도 결정 내릴 수 있는 것들을 잘 정리해준다. 운동신경이 조금 부족하고 곳곳에 잘 부딪혀 몸에 늘 상처나 멍자국이 있고 가끔 주차된 차를 빼지 못해 나를 부르거나 내 속마음을 도통 모른다는 것만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나는 늘 존경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내의 듬직한 뒷모습을 바라본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아내에 비하면 나는 모든 면에서 엉성하다. 결정장애도 심하고 말도 늘 생각에 막혀 버벅거린다. 어디에서도 특별히 무시당하는 일은 없는데 이상하게도 아내 앞에 서면 특별히 내세울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파워포인트에서 선을 직선으로 긋는 법을 알려준다던가 간단한 엑셀 함수 입력하는 법을 알려준다던가 하는 일 외에는 가끔 팔도 짜장면을 대신 끓여주는 것 정도다. 아, 라면은 내가 더 잘 끓인다. 그건 아내도 인정했다.
힘은 내가 더 센 것 같지만 싸우면 늘 진다. 아내는 가끔 살벌한 눈빛으로 달려드는데 그때는 당할 방법이 없다. 달리기도 평소에는 느림보 거북이 같던 사람이 나를 쫓아올 때는 우사인 볼트 저리 가라다. 그리고 아직 한국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때리는 건 가정폭력으로 보지 않는다. 쪽팔리게 그런 걸 신고할 남편도 없고. 이래저래 불리한 싸움이다. 하지만 힘쓸 일이 생기면 아내는 먼저 나부터 찾는다. 나는 또 좋다고 그걸 받아 든다. 우리 집에 싸움이 잘 없는 건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어서다. 인간이 원더우먼을 이길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