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38. 재미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일
입춘이 지났다. 나는 천막을 길게 펼쳤다. 재작년 태풍 때 프레임째로 떨어져 나갔던 천막이었다. 2년째 방치돼 있던 걸 작년 가을에 수리했다. 사장의 작품이었다. 리모컨으로 펼치고 접는 기능을 처음 써보았다. OPEN 버튼을 누르면 천막이 접히며 하늘이 열렸고 CLOSE 버튼을 누르면 천막이 펼쳐지며 하늘이 닫혔다. 버튼을 누르면 다시 그 버튼을 누르거나 STOP 버튼을 누를 때까지 펼쳐지거나 접혔다. 넓게 펼쳐진 천막을 보고 있으니 프레임이 휘어져 바닥에 닿을 듯 대롱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날은 따뜻한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부러진 걸 고치는 재능이 없다. 내 지분의 80퍼센트는 멀쩡한 걸 멀쩡한 채로 유지하는 데 있다. 변화가 없고 그래서 재미도 없다. 그게 카페지기의 삶일지도 모른다. 카페지기 이전에도 내 삶은 순탄하고 안정된 편에 속했다. 나는 규칙에 순응했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현재가 유지되길 원했다. 일도 사랑도 인생도, 그렇게 꾸려 왔다. 재미없는 나를 사랑하는 일은 마찬가지로 재미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내는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말 없는 나를 사랑했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있는 걸 먹는 나를 사랑했다. 그건 사랑이었고 또한 도박이었을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기로 했다. 뜻밖에도 첫사랑이 그랬다. 나는 고마웠고 죄스러웠다. 사랑에 그런 감정이 끼어드는 걸 원치 않았지만 결국은 그런 감정들이 모여 사랑이 되었다.
아내는 감기에 걸렸다.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어루만지며 어, 열나네,라고 아내는 말했다. 물이 아직도 안 끓네?라는 말처럼 평온한 목소리였다. 힘든 걸 모르는 사람의 병은 깊다. 며칠 전부터 아내는 왜 이렇게 힘들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병원 갈까? 아니. 아내는 자기가 아플 때는 병원을 가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조금만 열이 나도, 기침을 해도, 코만 훌쩍거려도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간다. 아픔을 참는 것은 부모의 몫이라는 듯 아내는 아이들 몫까지 열심히 참았다. 그러다 늘 마지막에 아팠고 마지막까지 아팠다. 13살까지 아내는 덩치가 무척 작았다. 발목까지 닿는 가방을 질질 끌고 학교를 갔고 공항 옆 분수대에서 지칠 때까지 놀고 난 다음 해가 지고 나서야 집에 왔다. 그러고서는 엄마 보약을 훔쳐먹었다. 아내는 그때 먹은 보약이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의 어릴 때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작고 마르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내는 지는 법을 몰랐다. 엄마에게 바락바락 대들다가 반 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집에서 쫓겨난 다음 날, 간신히 돌아온 집에서 자신을 약 올리던 아빠의 휴대전화를 발로 지근지근 밟아 아파트 밖으로 던져버렸다. 아내는 그 길로 다시 집에서 쫓겨났다. 아내는 이참에 할머니 집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아내는 할머니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도 어디 있는지는 몰랐다. 아내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할머니 집의 생김새를 설명했다. 1층 집이고요, 지붕이 초록색이에요. 대청마루가 넓은데 거기서 다섯 사람이 잘 수도 있어요.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밤에는 배가 아파도 무조건 참아야 해요. 감나무가 있었는데 저번에 잘라버렸고, 노란색 치즈랑 숯 검댕이 같은 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밥만 먹고 가요. 그렇게 설명하면 사람들은 아내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다음 집으로 데려다줬다. 그 일을 두 번 겪은 후 아내는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할머니 집으로 가서 고양이 밥그릇을 발로 찼다. 할머니, 나 배고파. 할머니는 마른오징어무침에 열무김치를 김에 싸서 아내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아내를 일주일 동안 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