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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투리 Oct 11. 2023

엄마의 바다

필섭 시점 상춘일기_07



새해가 왔고 설도 지났다. 상춘은 엄마에게 비뚤어진 얼굴을 보여야 하는 큰 일을 해냈다. 기대했던 한 달이 지났고 우려했던 두 달이 다 되어가는 때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이때 즈음이면 좋아질 거라 생각해서 두 달간 사실을 숨겼다. 1월 초 아버지 기일에도 2월 설에도 출장 핑계를 대고 엄마를 보러 가지 않았다.


이십 년도 더 전, 처음 구안와사를 겪었을 때 그는 스물일곱이었다. 엄마는 상춘을 데리고 전국의 용하다는 의사를 찾아다녔다. 한방과 양방을 가리지 않았다. 침을 잘 놓기로 유명한 서울의 어느 침술가에게 침을 맞기 위해 새벽 다섯 시부터 줄을 섰다. 차례가 다 되었을 때 상춘을 불렀고, 상춘은 그렇게 엄마한테 기대어 몸을 돌봤다.


엄마를 만나러 가기 며칠 전부터 상춘은 상태가 좋지 않다. 그 옆의 나 또한 좋지 않다. 대체 언제쯤 나을 건가, 이대로 지속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다시 우리를 감싼다. 이럴 때 우린 특별히 할 게 없다. 서로를 바라보는 게 힘들 뿐.


오월 칠일. 어버이날 하루 전 상춘은 엄마를 보냈다.

간단한 위암 초기 수술이었는데, 엄마는 아픈 상춘이 걱정되어 서울로 오지 않고 집 근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상춘은 엄마 곁에 머물며 틈틈이 출장을 가고 원고를 마감했다. 호주에 사는 동생이 들어와 함께 했고, 이렇게 얼굴 보네 하며 지나는 해프닝일 거라 생각했다. 수술 후 엄마는 쉬이 회복하지 못했다. 며칠 후 재수술을 했다. 의사는 분명 수술이 잘 됐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삼일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호주에 사는 상춘 여동생 가족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함께 장례를 치렀다. 상춘의 둘째 조카 노아는 할머니를 많이 좋아했다. 발인 날 노아는 숨이 넘어갈 듯 크게 많이 울었다. 상춘은 노아가 그렇게 운 게 이상하게 많이 위로가 된다고 했다.


엄마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매일 걷고 많이 웃었다. 오랜 시간 아버지를 간병하면서도 그랬다. 혼자 아픈 남편을 돌보며 아들에게는 늘 밝았다. 엄마는 아들을 정말 좋아했다. 운전을 못하는 여행작가 아들이 가끔 출장길에 동행하자 하면 엄마는 기쁘게 운전기사가 되었다. 아들 뒤에서 눈물을 훔칠지언정 꽃 앞에서는 누구보다 환히 웃었다.


나는 상춘 엄마를 세 번 만났다. 상춘 아버지 장례식에서 처음 인사드렸을 때 그녀는 내 손을 꼭 잡고 고맙다 말했다. 발인 날 아침 나를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는 봉투를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갈 때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며 또 고맙다 말했다.

상춘이 엄마와 함께 동생이 있는 호주로 여행을 떠나는 날 공항에서 그녀를 두 번째로 만났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라며 아쉬워했다. 두 달 후 상춘이 엄마랑 호주에서 돌아오는 날 난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날 서울로 돌아가는 저녁 하늘이 지나치게 예뻐서 우리 셋은 기분이 좋았는데 그녀는 상춘과 함께 영주에 놀러 오라고 꼭 놀러 오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곳이 낯설 나를 챙기고, 어느 명절에는 '고맙고 감사해요'라고 봉투 겉면에 적어 상춘을 통해 내게 용돈을 보냈다. 아들 집에 왔다 갈 때는 '사랑하는 아들 상준아'로 시작하는 편지를 써놓고 갔다. 내가 아는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가 떠난 후 상춘은 엄마의 바다 속에 오래 머물렀다. 엄마가 곁에 있을 때는 바다 위에서 바다 밖을 바라보다가 엄마가 떠나니 바다 깊이 들어가서 바다 속을 보기 시작했다. 엄마의 바다는 많이 깊고 어두워서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상춘은 자주 지쳤다. 그 지침에 힘이 되는 것은 오로지 엄마인데 엄마가 없으니 지침에 지침을 더해 더 깊이 가라앉을 뿐이었다. 바다 속에서 쏟은 눈물이 해수면을 조금은 높였을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춘이 엄마의 바다 깊이 들어가는 일은 가끔씩이다. 엄마의 바다에 들어가려면 여전히 꽤 큰 용기와 체력이 필요한데, 보통은 일을 핑계로 들어가지 않다가 어떤 특별한 날에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의 바다에 빠지곤 한다. 명절, 어버이날, 크리스마스, 연말, 엄마 생일, 아빠 기일, 아빠 생일, 부모님 결혼기념일, 엄마 기일, 본인 생일. 그런 당영한 날들에 더해 상춘 엄마와 나이와 고향과 성씨가 같은 나의 엄마를 볼 때, 꽃을 볼 때, 엄마와 함께 갔던 곳을 갈 때, 엄마가 좋아하던 '봄이 오는 길' 노래를 들을 때, 진짜 봄이 올 때, 가을바람이 불 때, 눈이 올 때,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은 곳에 머물 때,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를 보았을 때, 아플 때, 먼 산을 바라볼 때, 거울을 볼 때, 나를 볼 때.


그러니까 어쩌면 매 순간.



엄마 장례를 치르고 엄마가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엄마가 틈틈이 쓴 일기를 발견했다. 일기장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편지봉투, 포스트잇, 노트를 찢은 종이에 빼곡히 쓰여 있었다. 딸에게 쓴 편지도 있고, 가족을 위한 기도도 있었다. 그중 여러 글들은 아들을 위한 기도이거나 아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에 대해 쓴 것이었다. 그 글들을 발견한 날은 동생네 부부와 함께였고 동생이 몇몇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며 "뭐야 죄다 오빠 니뿐이다!" 하여 우리는 울다 웃었다. 그 글들 뭉치가 지금 책상 아래 종이상자에 아무렇게나 들어있다. 판도라의 상자라도 되는 양 차마 꺼내어 보지 못한다.


아들은 말하길, 엄마는 몸과 마음이 참 건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늘 밝고 긍정적이었다고. 엄마의 그런 면을 닮은 건 자기가 아니라 동생 같다고. 내가 보기에 아들은 엄마의 따스함과 평화를 닮았다. 배려심과 깊은 마음도.



엄마 장례식이 끝나고 할머니네 과수원에 갔어.

버려진 엄마 물건들 틈에서 무지개색 운동화를 봤어. 어 저건 내가 갖고 싶은데.

그 운동화를 챙겨 할머니 방으로 갔어. 거기 엄마가 있었어.

본인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있더라. 엄마답다고 생각했어.

엄마가 내게 물었어. 막내고모에게 연락했냐고.

난 아니라고 말했고 엄마는 마치 아빠에게 하듯이 내게 말했어. 으이그.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을 했어.

내가 이렇게 아픈데 엄마가 가면 어떻게 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엄마는 들은 것 같았어. 엄마가 나를 보며 웃었어.

아부지는 석 달 만에 꿈에 와서 "나 이제 간다"라고 말하고 떠났는데, 엄마는 두 달 만에 꿈에 와서 웃네. 아부지는 아부지답고 엄마는 엄마답다. 아부지는 삶에 미련이 많았고 엄마는 미련이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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