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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투리 Oct 11. 2023

안녕! 안경!

필섭 시점 상춘일기_06


안녕! 안경!




겨우내 부엌 쪽 베란다에 빙벽이 생겼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동안 거실 쪽 베란다에는 고양이 몇 마리가 드나들었다. 집주인이 나무널을 깔고 대충 지붕을 올려 만든 베란다에 어미 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와 함께 드나든 것이 시작이었다. 고양이를 기르는 친구가 사료를 보내주었다. 사료와 물을 담아 주라며 그릇도 함께. 그렇게 네 마리의 고양이가 수시로 우리 집 베란다를 드나들었다.



얘가 누구고 쟤가 어쩌는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러니까 정을 주려는 게 아니라 부르기 편하자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새끼고양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눈 옆에서 귀까지 줄이 있다. 안경 쓴 것 마냥, 그래서 '안경'. 다른 새끼고양이는 한쪽에만 줄이 있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돌림자로 '안녕'. 어미는 그냥 '어미'(지금 생각해 보니 미안하다. 어미에게도 '어미' 아닌 다른 이름을 지어줄걸......), 다른 한 마리는 흰색에 회색이 조금 섞여 있어서 '그레이', 그 이름에서 성을 떼고 경이, 녕이, 어미, 레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들이 매일 우리 집에 찾아왔다. 볕이 따뜻한 날에는 낮잠도 자다 갔다. 그렇다고 그들과 우리가 친하게 지낸 건 아니다. 우리가 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고양이들은 후다닥 도망가고 어미는 하악 댔다.

어떤 날은 또 한 마리의 덩치 큰 고양이가 드나들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 고양이가 경이와 녕이의 아비라는 것을 알았다. 얼굴이 크고 넙데데하여 '넙데'라고 칭했다. 넙데는 경이 녕이의 밥을 뺏어 먹고 베란다 방충 망에 오줌을 지렸다. 그러니 쫓겨날 수밖에.



날이 따뜻해지면서 우리가 베란다에 나갈 일이 많았다. 빨래도 널어야 하고 봄바람도 맞아야 하고 꽃내음도 맡아야 했다. 나는 너희와 베란다를 함께 써도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고양이들은 후다닥 도망가 근처 풀발이나 나무, 다른 집 지붕 위를 돌아다녔다.

하루는 베란다로 나가는 새시 방충망을 열어둔 사이 녕이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려던 내가 녕이를 보고 놀라 으아악 소리를 지르자 당황한 녕이는 오른쪽으로 파다닥 뛰었다. 나를 보고 놀라 반대쪽으로 뛰 어 나가려다 방충망을 들이받고 나자빠졌다. 이제 어디로 튀어야 할지 모를 당황한 녕이를 보고 상춘과 나는 빵 웃음이 터졌다. 상춘이 조심스레 방충망을 열어주고서야 녕이는 후다닥 뛰쳐나갔다.




봄이 되니 동네 사람들은 텃밭을 일구었다. 옆집 아저씨는 특히나 열심히 정원을 가꾸고 부지런히 물을 주었다. 나도 땅 한 뙈기를 얻어 상추와 치커리, 쑥갓, 고추, 방울토마토, 가지를 심었다. 물은 매번 아저씨가 주었다. 게으른 내가 관리를 못해 토마토와 가지가 죽으면 아저씨가 뽑아내고 다른 걸 심으라며 씨앗을 주셨다. 그렇게 옆집아저씨의 부지런함과 능숙함에 기대어 매일 저녁 샐러드 거리를 뜯어먹는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경이와  녕이가 조용히 우리 집만 드나드는 줄로만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온 밭에 똥을 싸고 심어 놓은 작물을 마구 밟고 다니고 있었다. 옆집아저씨는 밭을 망치는 고양이를 쫓았다. 나는 밥을 주려다 옆집아저씨를 보고 슬그머니 문을 닫는 날이 잦아졌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었다. 어미와 레이가 오지 않았다. 경이와 녕이만 왔다. 경이는 녕이보다 조금 먹고 더 마르고 경계심이 강했다. 그러니 우리는 경이에게 더 마음이 쓰였는데 그렇다고 경이에게 간식이라도 챙겨준 건 아니고 단지 경이를 더 기다렸다. 옆집아저씨가 나오지 않았는지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밥을 내주었다.



나는 동물이랑 그리 친하지 않다. 친하고 싶은데 친해지기엔 동물을 무서워하는 그런 사람이다. 상춘은 동물을 좋아한다. 경이 녕이는 내가 처음 오래 알고 지낸 동물이다. 털끝 하나 스치지 않았지만 그 집을 떠나오는 날 "잘 살아 안경,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걱정하게 되는 그런 사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가끔 이갸기했다. 경이 녕이는 우리가 지들을 먹여 키웠다는 걸 알까. 지들이 우리를 많이 위로했다는 걸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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