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섭 시점 상춘일기_04
병원을 바꿀 때마다 그는 앓는다. 마치 이번 단계 '실패'라는 도장을 받는 기분이라고.
한 달이면 삐뚤어진 얼굴이 돌아올 거라고 의사는 말했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 증상이 나타나자마자 지체 없이 바로 치료를 시작했고, 일주일에 6일을 매일 빠짐없이 치료를 받았다. 보약과 치료약을 지어 꾸준히 먹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자 새로운 병원을 알아보았다. 구안와사 전문 한의원.
그날은 새로운 한의원에 처음 가는 날이었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 그는 힘없는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하철역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참을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면서 나는 또 울었겠지.
어떤 신경외과 의사는 안면마비가 왔을 때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일상생활을 해나가라고 말했다. 무심하라는 뜻이겠지. 무언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비로소 그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것이 곧 그 무언가를 얻는 최상의 방법이니까. 묻고 싶었다. 다들 정말 그게 그리 쉽게 되는 거냐고. 무심해도 되는 일과 무심할 수 없는 일들 사이에서 우리는 자주 갈등했다.
상춘은 매일 거울을 보며 언젠가는 얼굴이 돌아오겠지라고 기대했는지, 결국 돌아오지 않겠지 이게 최선이겠지라고 단념했는지, 기대와 단념 사이 절망이 끼어들었는지 나는 그때 무심했다. 나에게는 기대만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