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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투리 Oct 06. 2023

구안와사

필섭 시점 상춘일기_02




"나 얼굴이 뻑뻑해."


강릉에서 사 온 식은 닭강정을 먹으며 그가 말했다. 그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졌다.

그날은 12월 30일이었다. 다음 날은 12월 31일 일요일이고 그다음 날은 1월 1일 공휴일이다. 그 후 여러 일을 겪으며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많은 갑작스런 공포는 휴일에 온다는 것이다.








한의원에서 구안와사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얼굴에 마비가 시작되었다고. 며칠 동안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거라고.


구안와사 (口眼喎斜)

입구, 눈안, 입비뚤어질괘, 비낄사

한의학에서 이르는 말로 구안괘사와 같은 말.

서양의학에서는 안면신경마비라 부른다.


어쩜 이리 정확하게도 병명을 지었을까. 그의 입과 눈이 비뚤어져 얼굴 전체가 비스듬해졌다. 그의 오른쪽 뺨이 왼쪽 뺨을 밀고 있었다. 오른쪽 뺨은 자유의지가 없다. 자유의지가 없으면 밀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힘 겨루기에서 밀리는 쪽보다 막무가내로 미는 쪽이 더 무서운 법이다. 밀릴 수 있다는 건 그나마 유연하다는 것.

밀린 왼쪽 뺨엔 깊게 팔자주름이 패였고, 움직일 수 없는 오른쪽 눈꺼풀은 내려앉았다. 눈을 뜨고 감는 것, 입을 움직이는 것, 말하는 것과 먹는 것이 모두 힘겨운 일이 되었다.




오래전 그가 이십 대 후반일 때, 그는 구안와사를 6개월간 앓았다. 그때는 왼쪽 얼굴이었다. 그는 영화잡지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는데, 계속되는 마감과 끝없는 야근과 받지 못하는 월급이 쌓여서 어느 날 갑자기 입이 돌아갔다. 그럼에도 쉬지 못하고 오전에 병원에 들렀다 출근해 늦게까지 일하는 생활을 멈출 수 없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다른 방법이 없었어..."


나는 한동안 그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편하지 않았다. 몸속 어딘가에서 사르르한 통증이 느껴져 눈을 질끈 감곤 했다. 본인에게는 이미 아문 아픔이어서 살짝 간지러울 뿐인 이야기가 상대에게는 생살에 상처를 내는, 그래서 이제야 통증이 시작되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다.





추운 집. 찬바람을 피하려고 털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지내는 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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