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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투리 Oct 06. 2023

봄을 그리는 시간

필섭 시점 상춘일기_01




상춘과 나는 2011 봄에 처음 만났다.   8 동안 연인이었다가 2019  부부가 되었다.

함께  시 동안 나는 띄엄띄엄 상춘을 그렸다. 사실 시작은   결연했다. 하루에 하나씩 100일간 그림을 그린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그걸 계기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곰이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는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최소한 100일은 꾸준히 해야 변화라는  하는구나 싶었고, 그게 멋있어서 나도 100일간 100장의 그림 그리기에 도전했다.  

그렇게 촘촘한 마음과 기대를 갖고 시작하였으나 나는 절실하게 사람이 되고픈 마음은 없었나 보다. 결국 간간이 잊지 않을 만큼만 그렸고  간격은 점점 길어졌다.

 


2017 겨울 상춘에게 안면마비가 왔다. 쉽게 지치고 울던  겨울에서야 상춘을 자주 그리기 시작했다. 매일 상춘의 비뚤어진 얼굴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그렸다. 내가 보는  비뚤어짐과 뒤틀림, 찌그러짐과 어색함이었다. 상춘이 겪는  불편함과 좌절감, 원망과 외로움이었다. 나는 그걸 보는  힘들어서 상춘의 얼굴을 그림  대상으로만 바라보려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림의 대상으로서의 비뚤어진 얼굴은  매력적이었다.

눈썹이 생각보다 고집스럽게 났네, 구안와사 때문에 눈이  작아졌구나,  모양이 찌그러진 오각형이네, 눈꺼풀이  내려앉아서 앞도   보이겠네, 속눈썹은 어쩜 이리 아래로 났을까. 턱은 은근히 강인해 보이네, 오른뺨 중간의 점은 그림의 포인트가   있겠어, 얼굴이 삐뚤어지면서 오른쪽 팔자주름이 깊어져버렸네, 팔자주름 그리면 늙어 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상춘의 얼굴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몇 년  '뜨거운 싱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다 그날들이 떠올랐다. 상춘과 나는 특히 아홉 명의 남자 배우들이 함께 부른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 좋아했다. 바람의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우리가 그 해답이 사랑이라는 걸 의식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모른다. 나는 상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림으로서 나의 사랑을 그에게 주었고, 그는 비뚤어지지 않은 마음과 유머와 꿋꿋함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나만 그를 보살핀 게 아니라 그도 나를 보살폈다. 우리는 그렇게 이인삼각을 하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서로의 보살핌이 간절했던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서  글 시작되었다.  글은 필섭 시점 상춘 관찰기이다. 내가 상춘을 그리는 시간, 우리가 함께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 담겨 있다.

제주에서 처음 만나 서울과 제주를 오가던 시절, 서울에서 지내던 기간 중 암울했던 마지막 해, 그리고 원주로 이사한 후의 날들을 성기게 엮으려 한다.

 사이 상춘의 얼굴은 조금씩 회복되다 결국에는 비뚤어진 채로 굳어버렸다.  얼굴이 예전만큼 슬프지는 않다. 상처가 익숙해지듯 좌우 비대칭인 그의 얼굴이 이제는  익숙하다.  얼굴 속에 우리가 단단하게 견뎌온 시간들이 남아 있다.

 

어느  친구는 상춘을 항상 (),  ()이라 풀이하고는 '늘봄'이라 불렀다. 상춘과 나는  이름의 뜻풀이를  좋아한다. 봄은 지나치게 짧고 겨울은 지겹게 길지만, 나는 '상춘!'하고 부를  우리가 봄날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만 같다.





오랫동안 애정했던 검정 뿔테 안경 쓴 상춘





상춘

여행작가. 섬세한 듯 투박한 남자. 잘 잃어버린다. 운전은 못한다. 엄마와 함께 여행한 책을 썼다.


필섭

목수. 치밀한 듯 어설픈 여자. 잘 잊어버린다. 상춘의 김기사. 상춘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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