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섭 시점 상춘일기_01
상춘과 나는 2011년 봄에 처음 만났다. 그 후 8년 동안 연인이었다가 2019년 봄 부부가 되었다.
함께 한 시간 동안 나는 띄엄띄엄 상춘을 그렸다. 사실 시작은 좀 더 결연했다. 하루에 하나씩 100일간 그림을 그린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그걸 계기로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 곰이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단군신화는 어쩌면 진짜가 아닐까 싶다. 무엇이든 최소한 100일은 꾸준히 해야 변화라는 걸 하는구나 싶었고, 그게 멋있어서 나도 100일간 100장의 그림 그리기에 도전했다.
그렇게 촘촘한 마음과 기대를 갖고 시작하였으나 나는 절실하게 사람이 되고픈 마음은 없었나 보다. 결국 간간이 잊지 않을 만큼만 그렸고 그 간격은 점점 길어졌다.
2017년 겨울 상춘에게 안면마비가 왔다. 쉽게 지치고 울던 그 겨울에서야 상춘을 자주 그리기 시작했다. 매일 상춘의 비뚤어진 얼굴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그렸다. 내가 보는 건 비뚤어짐과 뒤틀림, 찌그러짐과 어색함이었다. 상춘이 겪는 건 불편함과 좌절감, 원망과 외로움이었다. 나는 그걸 보는 게 힘들어서 상춘의 얼굴을 그림 속 대상으로만 바라보려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림의 대상으로서의 비뚤어진 얼굴은 꽤 매력적이었다.
눈썹이 생각보다 고집스럽게 났네, 구안와사 때문에 눈이 더 작아졌구나, 눈 모양이 찌그러진 오각형이네, 눈꺼풀이 더 내려앉아서 앞도 잘 안 보이겠네, 속눈썹은 어쩜 이리 아래로 났을까. 턱은 은근히 강인해 보이네, 오른뺨 중간의 점은 그림의 포인트가 될 수 있겠어, 얼굴이 삐뚤어지면서 오른쪽 팔자주름이 깊어져버렸네, 팔자주름 그리면 늙어 보이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상춘의 얼굴을 다시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몇 년 전 '뜨거운 싱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다 그날들이 떠올랐다. 상춘과 나는 특히 아홉 명의 남자 배우들이 함께 부른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좋아했다. 바람의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우리가 그 해답이 사랑이라는 걸 의식했던 건 아니지만 어쩌면 본능적으로 알았는지 모른다. 나는 상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그림으로서 나의 사랑을 그에게 주었고, 그는 비뚤어지지 않은 마음과 유머와 꿋꿋함으로 나에게 사랑을 주었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나만 그를 보살핀 게 아니라 그도 나를 보살폈다. 우리는 그렇게 이인삼각을 하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서로의 보살핌이 간절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글이 시작되었다. 이 글은 필섭 시점 상춘 관찰기이다. 내가 상춘을 그리는 시간, 우리가 함께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 담겨 있다.
제주에서 처음 만나 서울과 제주를 오가던 시절, 서울에서 지내던 기간 중 암울했던 마지막 해, 그리고 원주로 이사한 후의 날들을 성기게 엮으려 한다.
그 사이 상춘의 얼굴은 조금씩 회복되다 결국에는 비뚤어진 채로 굳어버렸다. 그 얼굴이 예전만큼 슬프지는 않다. 상처가 익숙해지듯 좌우 비대칭인 그의 얼굴이 이제는 더 익숙하다. 그 얼굴 속에 우리가 단단하게 견뎌온 시간들이 남아 있다.
어느 날 친구는 상춘을 항상 상(常), 봄 춘(春)이라 풀이하고는 '늘봄'이라 불렀다. 상춘과 나는 그 이름의 뜻풀이를 참 좋아한다. 봄은 지나치게 짧고 겨울은 지겹게 길지만, 나는 '상춘!'하고 부를 때 우리가 봄날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것만 같다.
상춘
여행작가. 섬세한 듯 투박한 남자. 잘 잃어버린다. 운전은 못한다. 엄마와 함께 여행한 책을 썼다.
필섭
목수. 치밀한 듯 어설픈 여자. 잘 잊어버린다. 상춘의 김기사. 상춘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