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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brosia Sep 16. 2020

우리를 움츠러들게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관하여

<플로리다> 로런 그로번

 플로리다.
사시사철 따사로운 태양이 비추고 하루 종일 모히또를 홀짝거릴 수 있는 꿈의 휴양지라 상상했던 곳.

하지만 이상하게 책장을 넘길수록 황금빛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다의 풍경 대신 습도 높은 여름날 에어컨도 없이 밀폐된 작은 방에 갇혀있는 착각이 든다. 심호흡을 해가며 천천히 11개의 단편을 끝마쳤다. 꾹꾹 눌러 넣은 불안과 고독의 농도가 숨쉬기 어려울 만큼 짙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듯 밤마다 오래오래 달을 쳐다보면
옛날 만화가 맞는다는 사실을,
달은 사실 웃고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달이 보고 웃는 대상은 우리가 아니다.
우리 외로운 인간은 너무 작고,
달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알아차리기에
우리 삶은 너무 순식간이다.

<유령과 공허>

 

 재개발을 기다리는 옛 주택가엔 노숙자들이 숨어 들어오고, 치안이 불안한 와중에도 밤마다 뛰지 않으면 존재적 고독을 떨쳐낼 수 없는 여자가 있다. (유령과 공허)
뱀과 악어가 득실거리는 집 안에서 감정을 거세당한 채 홀로 자라나는 한 소년이 있었고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공간에서), 무인도에 버려진 어린 자매는 배고픔과 사투를 벌인다.(늑대가 된 개)
집을 통째로 뜯어낼만한 폭풍우 앞에서 망자들과 함께 죽음을 묵묵히 마주하는 여인이 있는가 하면 (아이월), 늙고 병든 어머니를 돌보느라 늪 같은 고향을 떠날 수 없는 딸도 있었다. (살바도르)

하루아침에 대학 강사에서 노숙자의 신세로 전락한 여자에게 플로리다의 겨울은 결코 따뜻하지 않고, (위와 아래) 앨리게이터와 표범이 살고 있는 깊은 습지는 21세기의 인간에게도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미드나이트 존)


시간은 무감정하고,
인간이기보다는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당신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 없이도 계속 흘러간다.
시간은 당신을 볼 수 없다.

<미드나이트 존>


 코로나로 온 세상이 정지해버린 올해도  ‘인간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벌써 반 이상이 지나가버렸다.

인간에게 무감정하게 흘러가버리는 시간, 손쓸 도리 없이 닥쳐오는 자연재해, 가정과 개개인을 삶의 밑바닥으로 처참하게 내동댕이치는 경제 위기, 그리고 미묘하게 어그러진 인간관계들. 이 모든 것이 지극히 작고 불완전한 인간을 움츠러들게 한다.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에게도 엄습해오는 이 근원적인 불안과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고, 담담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도, 우리 삶이 그렇듯이, 작가는 숨쉬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산소호흡기 같은 희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엄청나게 큰 유성이 하늘에서 떨어져 인류가 공룡처럼 멸종된다 하더라도, 그 직전까지 바다와 아이스크림과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존재하듯이.

어쩌면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목덜미에 머리를 묻고,
거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내쉬고
그녀의 사랑과 끈적거리는 여행의 흔적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자신이 운이 좋았음을,
굶주린 어둠을 또 한 번 모면했음을 깨달았다.

<둥근 지구, 그 가상의 구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극찬한 <운명과 분노>의 작가, 미국의 젊은 거장 로런 그로프의 최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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