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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Jeff
Jun 28. 2020
7년 전 연남동, 나의 첫 카페 이야기.
커피 한 잔 할까요?
IT회사의 기획자로 10년을 살다가 카페 주인으로 7년째 생존하고 있는 자영업자의 이야기입니다.
'커피'를 주제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펼쳐볼까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금부터 7년 전이다.
나는 당시 Daum, 그러니까 지금 카카오 라는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카페를 오픈하려고 준비를 했었다.
당시 월세가 저렴하다고 소문난 연남동을 찾아왔는데 마침 중개인이 추천해준 곳은 연남동의 동진시장이라는 낡고 허름한 골목에 있는 곳이었다.
시설은 좋지 않아도 괜찮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 자리 앞에 '커피리브레'라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카페 (당시에도 유명했던)가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살펴봤는데 더 큰 문제는 그 바로 옆에 또 '이심' 이라는 드립 가게가 있었으니 나까지 들어오면 이 작은길에 카페만 세 개가 되는 셈이었다.
아, 월세도 장소도 다 마음에 들었는데 유수의 카페들 바로 옆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게다가 당시 '리브레'는 이영돈 피디의 '착한식당'에 뽑히면서 이 타이틀을 얻어서 사람은 항상 줄을 서 있었고 '이심' 역시도 마니아 층이 확실한 카페로 커린이&뉴비인 내가 들어가기엔 겁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고심 끝에 그곳을 살짝 비켜나서 홍대 역에 가까운 연남동에 나의 카페를 오픈했고 그 날부터 한 4년간은 하루하루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한 듯하다.
(결론적으로 연남동 임대료 폭발로 3배 정도 인상되며 결국 쫓겨났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나의 첫 카페 오픈 시절부터 나는 '리브레'를 혼자만의 라이벌로 생각하고 종종 찾아갔다.
가서 새로 나온 메뉴가 있으면 마셔보기도 하고 우리 카페와 비교해서 어떻게 다른지 체크도 했다.⠀
⠀
물론 거기 바리스타들은 나 따위는 누군지도 모를 것이고, 리브레의 대표님도 우연히 작년에서야 만나 뵙게 되었지만 말이다.
내가 리브레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혹은 최애 카페로 놓고 좋아했던 이유는 단지 커피가 맛있어서는 아니다.
리브레는 연남동에 입점할 때 바로 앞 경쟁 카페가 될 수 있는 '이심'에 찾아가서 가게 오픈을 해도 될지 여쭤보고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
그리고 겹치는 메뉴가 되어 경쟁이 될 수 있는 드립 커피는 팔 지 않겠다고 했다는데 그런 마인드도 정말 멋졌다.
과연 나 라면 그런 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했는데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농부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오히려 정가보다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뉴스 기사를 읽었을 때는 참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토록 힘들게 구한 최고의 스페셜티를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에게 공급하는 것은 내가 카페를 하면 꼭 따라 해보고 싶은 평생 숙제가 되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나도 그들과 비슷한 아니 그들보다 나은 커피를 하고 싶어서 많은 부분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덕분에 나처럼 리브레의 모든 지점에 가서 커피를 마셔본 사람도 몇 없을 거다. (리브레는 과테말라에도 지점이 있거든 ㅋ)
누군가를 따라잡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요즘 나는 러닝을 하고 있는데 달리다 보면 10초 앞에 뛰고 있는 사람을 추월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들다.
하물며 러닝으로 치면 나와 비교해서 10분 이상 멀찌감치 앞에서 뛰는 곳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오늘, 연남동에서 나만의 라이벌로 응원하던 리브레가 8주년 기념 커피를 판다고 해서 찾아갔다.
여전히 그곳은 북적거렸고 힙했다.
그리고 8주년 기념이라며 아직 8년째 변하지 않은 가격인 4천 원에 초콜릿과 함께 그 비싼 파나마 게이샤를 멋지게 내어준다.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니 곧바로 한숨이 나온다.
내가 아무리 철학을 가지고 내 카페를 통해 좋은 커피를 싸게 주겠다고 선언했었지만 이들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내가 한 발 뛰어갈 때 이들은 벌써 몇 발씩 더 달려 나간 건지 모르겠다.
우리도 이제 7주년 기념일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멀었다.
저런 퀄리티의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 가격이, 이 맛으로 공급한다는 것은 아무리 기념일에만 제공한 특별한 커피 라지만 이미 우리와는 생각의 범위가 다르다고 느꼈다.
이렇게 나는 오늘 리브레와 한 발 더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한 발씩 더 빠르게 뛸 준비를
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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