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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Oct 19. 2021

자유의 여신 상(賞)

미운 오리(지널)의 품격

처음 탈매직을 결정한 것은 단순한 이유였다. 시간과 돈을 아끼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곱슬머리를 기르고 나니 무엇인지 모를 해방감까지 느꼈다. 처음 곱슬머리로 집 밖을 나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용기를 내어 발을 앞으로 내딛자 오래도록 묶여있는 줄 알았던 줄이 스르륵 풀려버린 기분이었다.


펴려고 했을 때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곱슬머리에 드디어 해답이 보였다. 더 이상 머리를 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이 경쾌했다. 더 이상 다른 ‘예쁜’ 머리 모양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이건 진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니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1830, 소장처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자유’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7월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그림은 첫 프랑스혁명 이후, 또다시 자유를 탄압하려는 왕위에 맞서 싸운 영광의 3일 중 한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그림의 중심이 되는 한 여인이다.


그림의 제목처럼 그녀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여신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다른 여신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오늘날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를 들고 있다. 혁명의 참혹한 현장 한가운데서 시민군을 이끄는 그녀는 그 어떤 여신보다 기백이 넘친다.


이 여신의 진취적인 에너지는 내가 곱슬머리를 받아들이고 얻은 자유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CGM(Curly Girl Method) 이후, 나의 삶의 태도는 훨씬 독립적으로 바뀌었다. 미(美)를 결정하는 기준이 내 것이 되자 나의 자원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싶은 곳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일까를 결정하는 것은 어떻게 살까도 결정하는 일이었다. 보이는 모습을 위해 해왔던 노력이 나의 일과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곱슬머리로 살기로 결정하고 나니 더 이상 여유로운 아침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매직 스트레이트 펌보다 오래도록 가치 있는 것에 돈을 쓰고 싶어졌다. 하루면 없어져버릴 예쁜 헤어 스타일이 아니라 오리지널 나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가며 쾌감을 느꼈다.


나는 어느덧 무엇을 쫓아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한 손에는 편견에 맞설 무기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자유를 들며 내가 나를 이끌어가는 삶을 살고 싶어졌다.




세상이 정해주는 아름다움은 빠르게 변화한다. 불과 이십 년 전 트렌드도 세기말 화장, 세기말 패션이라 불리며 놀림거리가 된다. 이제는 백세가 다 된다는 우리의 긴 인생을 생각하면 결국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미(美)의 현실이다.


하지만 나의 아름다움을 내가 결정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깻잎머리를 하고 갈매기 눈썹을 한 졸업사진은 촌스럽지만, 유행에 상관없이 내 모습 그대로를 찍은 졸업사진은 그렇지 않다. 앳되고 꾸밈없는 모습이 아득하게 느껴질 수는 있어도 촌스러운 것은 아니다. 내가 나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 아무리 트렌트가 바뀌고 강산이 변해도 나는 나일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영원한 가치에 쓰일 수 있는 자원과 에너지를 예뻐 보이는 것과 맞바꾸지 않기로 했다. 오리지널 내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곱슬머리는 프로페셔널하거나 단정하지 않다는 시선, 자기 관리가 안 되어 보인다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이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세상에 내놓는 행위로 내가 나에게 인정받고 있고 사랑받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가치관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다른 사람의 인식 따위는 쉽게 뒷전으로 밀어둘 수 있다.
- 에리카 라인,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자신의 가치관과 어울리는 삶을 사는 사람은 이미 각자의 삶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다. 정답이 정해져 있는 아름다움은 때론 SNS 피드 같다. 그 틀에 맞지 않으면 열등감이 생긴다. 하지만 지구 상에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각자의 오리지널리티는 결코 그렇지 않다.


곱슬머리는 중화제로 모발의 결합을 분해하고 뜨거운 열로 납작하게 누르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나'다. 나는 나라서 누군가의 ‘좋아요’가 필요하지 않다. 또 누군가 ‘싫어요’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세상이 정해놓은 미의 기준을 쫓아가려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나의 중심을 흔들 만큼 큰 영향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미국 뉴욕시 리버티섬에 세워진 자유의 여신상


미의 기준이 바뀌자 삶의 기준도 바뀌어 가는 것처럼 자유는 또 다른 자유를 낳나 보다. 그림 속에만 존재하던 프랑스 역사 속 자유의 여신은 미국 뉴욕주의 자유의 여신상의 모티브가 되어 허드슨강에 우뚝 서 있다. 곱슬머리에 자유하기로 결정한다면 외모뿐만 아니라 삶의 다른 부분에서도 자유 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유의 맛은 누구에게나 공정하면서도 달콤해서 계속해서 또 다른 자유를 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프랑스 민중을 이끌던 자유의 여신이 56년 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뉴욕항을 들어오던 이민자들에게 또 다른 자유의 횃불이 된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미의 잣대로 재어질 수 없다면, 누군가의 삶의 잣대로도 재어질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이 땅의 자유의 여신들이 평생에 걸쳐 받게 될 자유의 여신 상(賞)이다.




참고 및 사진 출처

namu.wik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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