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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an 11. 2021

노란 닥터마틴을 신은 교사

캐나다 초등학교 첫 출근. 학교 사무실에 있던 비서(한국의 교무행정사)가 자리를 안내하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가슴으로 내려가는 시선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그 비서가 입고 있던 옷 때문이다. 넥라인이 깊이 파인 빨간 브이넥 스웨터. 가슴골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학교처럼 보수적인 공간에서 남의 가슴골을 보게 될 줄이야.


파격적인 패션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 사람은 숏컷 헤어에 크고 화려한 귀걸이를 차고 있었다. 빨간색 트렌치코트와 쨍한 컬러의 노란 닥터마틴 부츠까지 신은 사람. 존재감 넘치는 복장의 이 여자분은 6학년 담임교사였다. 함께 했던 3개월 내내 이 교사의 복장은 참 범상치가 않았다.


흥미로웠다. 교사의 옷차림도 옷차림이지만, 그 교사를 둘러싼 학교의 분위기가 신기했다. 아무도 그 교사를 힐끔거리거나 수군대지 않았다.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학부모를 만났고 노란 닥터마틴을 신고 당당히 교장실에 들어갔다. 누구도 그녀의 옷차림으로 교사의 자질을 의심하거나 판단하지 않았다. 교사의 개성은 그저 개성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었다. ‘아무개 선생은 저런 걸 좋아하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걸까? 교사의 복장이 가십거리가 아닌, 개인의 취향이 되는 그 분위기가 부러웠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교직 문화와는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빨간 바지를 입고 크고 화려한 귀걸이를 하고 있는 초등교사


한국 학교에서 근무할 때, 급식실에 들어오는 초임 교사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황했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복장이었다. 다른 교사들도 나처럼 물음표를 가졌는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급식시간이 끝나고 다시 마주친 그 교사는 민소매 원피스 위에 얇은 여름용 카디건을 걸치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동료 교사들의 시선이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민소매 원피스는 동료 교사들의 가십거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해받을만한 상황적 맥락이 있었다. 에너지 절약 공문이 내려와 실내온도를 26도로 맞춰야 했던 무더운 여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후끈한 교실 속에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 가며 가르치는 일은 모두에게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 원피스는 노출이라고는 팔뚝뿐인 정장용 원피스였다. 휴양지에서 입을 법한 비치 드레스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초임교사는 남 다른 옷차림이라는 이유로 눈칫밥을 먹어야 했다. '교사가 저래도 돼?'라는 물음표 가득한 시선이 교사의 자질을 의심하는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전에 없던 복장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교사 복장 관련 지침에 항상 등장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품위 유지’와 ‘공직 예절'. 교사는 사회적 역할에 따른 미덕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뭐든지 자유로울 것 같은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학교라는 공간, 교사라는 위치가 주는 책임이 있다. 한국보다 자유로워 보일 수는 있으나 여전히 화려하기보다는 단정하고, 특이하기보다는 보편적이다. 문신이 흔하디 흔한 나라지만 드러나는 곳에 얼룩덜룩 문신을 한 교사는 없다. 나이 가리지 않고 레깅스만 입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나라지만 레깅스만 입고 출근하는 교사도 없다. 코로나 시국에도 마스크를 의무화하는데 한참이 걸렸을 만큼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지만, 교사가 사회적 정체성을 무시하고 개인의 자유만을 앞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이 얼굴에 피어싱과 문신을 과하게 해서 징계를 받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 사회가 공무원에게 기대하는 보편타당한 사회적 역할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속에 그어놓은 품위와 예절의 경계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선은 늘 모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호한 선을 무기 삼아 조직 구성원 다수가 그어놓은 보편적인 구역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교사는 옷 입는 문제에도, 머리나 손톱의 색깔에도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교사로서 덕이 되는 일인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교사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다.


그러나 상황적 맥락에 대한 이해나 개성에 대한 존중 없이, 교사의 남다름이 무조건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오직 남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심받아서는 안 된다. 공무원 복장 규정을 보면, 지나치게 개성 있는 복장으로 공무원의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기강이 해이해진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교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은 개성 있는 복장이 아니라, 권한 밖의 일에 대해 뒤에서 수군대는 손가락질이다. 공무원으로서의 기강을 해이하게 만드는 것도 교사의 남다른 복장이 아니라 섣불리 교사의 자질을 의심하며 보내는 불쾌한 시선이다.


옷차림이 남다르다고 헐렁이 교사가 아니다. 물을 흐리는 사람도 더욱 아니다. 교사는 자신의 행동이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경계선을 넘나드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이고, 동료 교사와 학부모는 섣불리 그 자질을 의심하며 타인의 자유와 선택에 선을 넘은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유지해야 할 진짜 품위이고 진짜 예절이다.



커버 이미지 출처: boots-bags-suit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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