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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명 Oct 23. 2023

03화
내 취미는 효도, 엄마 아빠와 울릉도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울렁대는 울릉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 남짓, 천혜의 비경을 품은 그곳에 문득 부모님을 모시고 가고 싶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오르면 늘 엄마에게 영상전화를 걸곤 했다. 

이번에는 핸드폰 화면 너머의 풍경이 아닌 진짜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제법 긴 여정을 위하여 매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맞이한 여행 당일, 한 손에 쥔 수첩에 ‘엄마 아빠 컨디션 체크(수시)’, ‘비상약, 보건소 위치 확인’이라는 두 구절을 적고 포항에 도착할 때까지 단잠에 빠졌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한 여행이 아닌, 엄마 아빠를 위한 여행이었다. 

배낭을 둘러메고 울릉도 곳곳을 걸으며 문득 엄마의 여행은 어땠을까라는 궁금증이 일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 “엄마,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 언제야?”, “다시 떠나고 싶은 곳은 어딘데?”라며 다짜고짜 물었을 때, 엄마는 잠시도 고민하지 않고 “여행? 너희랑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 먹는 거지!”라고 답했다. 엄마에게 여행은 우리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고, 아빠에게 여행이란 우리를 좋은 곳에 데려다주는 것이었으리라.



엄마는 여행이 가져다주는 희로애락을 느껴볼 새도 없이 청춘을 보냈고, 그런 엄마 아빠의 청춘 한가운데에 나와 내 형제가 있다. 어린 엄마는 여행의 재미를 알기에 너무 분주했고, 어린 아빠는 여행의 이유를 깨닫기에 너무 고단했을 것이다. 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여행을 준비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이, 늘 건강하고 즐겁게 새로운 여행길에 오를 수 있도록 해 준 사람을 다름 아닌 부모님일 테니까.



울릉도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도 이미 여러 번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했다. 그때마다 여행의 주인은 당신 자신들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첫 번째 해외여행에서는 부모님이 느낀 점을 직접 쓸 수 있는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도록 하기도 하고, 그 나라의 인사말과 간단한 단어를 알려드려 현장감을 한껏 느껴볼 수 있게 하였다. 이번 여행에서는 울릉도 스탬프북을 이용했다. ‘스탬프 찾아 섬 한 바퀴’라는 글귀와 함께 독도 전망대, 독도박물관, 봉래폭포, 관음도, 나리분지, 울릉천국, 예림원 등 총 18곳의 관광지를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스탬프북은 울릉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엄마 아빠는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았고, 지도를 보며 가보고 싶은 곳을 직접 정하였다. 이런 여행을 하고 나면 잊지 않으신다. 그때의 감정을 더욱 진하게 기억하고 추억하신다. 장소와 지명에 대한 에피소드도 퍽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에까지 말씀하시곤 한다.



울릉도의 여러 명소 가운데 가장 기억나는 곳은 두 곳이다. 첫 번째는 바로 울릉천국이다. 

울릉천국 아트센터는 포크 가수 이장희가 제공한 울릉천국 일부 부지에 경상북도 울릉군이 힘을 합쳐 세운 아트센터로, 전시장과 카페, 야외 공연장과 연못 등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나리분지에서 잠시 쉬었다가 웅장한 송곳산이 바라다보이는 울릉천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살이 지치고 힘들어도 걱정 없네, 사랑하는 사람 있으니.’ 울릉천국 아트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울릉도는 나의 천국’ 노래의 첫 소절이다. 우리네 삶도 세상살이 아무리 지치고 힘들지언정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가 곁에 있으니 걱정 없다, 끄떡없다. 카페로 올라가자 음악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어렴풋이 장발의 어린 아빠가 보이는 듯했다. 아빠의 청춘을 엿보고 싶어 이곳에 들렸으니, 여행 계획이 제대로 성공한 셈이다. 울릉천국을 다녀오고 난 뒤 아빠와 엄마는 울릉도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 ‘모~두들 잠드는 고요한 밤에’, ‘그건 너’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렸다고 한다.



두 번째는 예림원이다. 

울릉 예림원은 국내 최초의 문자 조각 예술공원으로, 울릉도 자연의 아름다움과 문자를 나무에 새기고 다듬어 조형미와 생명력을 가득 담고 있다. 층층의 계단을 올라 전망대로 오르면 멀리 현포항과 대풍감 전경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다. 아빠는 빼어난 경관에 연신 환호성을 질렀고, 엄마는 한걸음에 한 장씩 연신 꽃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이처럼 들뜬 엄마의 모습을 보니, 그 들꽃을 온통 뜯어다 엄마에게 가져다주고 싶었다. 가수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라는 노래에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이라는 가사가 있다. 예림원에 핀 수많은 들꽃보다 더 아름다운 당신의 웃음꽃이 우리의 여행에서 더욱 깊어지기를 바란다.


효도(孝道)는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일이라는 뜻이고,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한다. 우리말샘에서는 효도 여행을 ‘자녀가 부모를 정성껏 잘 섬기는 마음으로 보내 드리는 여행’이라고 정의하였다. 하지만 나는 두 분만 보내 드릴 마음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내가 같이 갈 거니까.




여행 중 찰나의 순간을, 직접 기록하는 엄마 ⓒ 김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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