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곤지암 허브를 향한 텔레파시

by 김이밤


곤지암 허브와 출근길 지하철


나에게는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약간은 강박에 가까운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틈만 나면 택배 배송 조회를 ‘새로 고침’하는 버릇이다.


분명 3분 전에 확인했을 때 "곤지암 Hub 입고"라는 문구를 봤다. 이 거대한 물류의 미로에 한 번 갇히면 당분간은 소식이 없으리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 엄지손가락은 이성적 판단을 거부한다. 마치 짝사랑에게 보낸 카톡의 "1"이 언제 사라지나 기다리는 사람처럼,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습관적으로 아래로 당겨 새로 고침을 멈추지 않는다.


아마 무의식 중에 믿고 있는 듯하다. 내가 조회 버튼을 100번쯤 누르면, 이 간절함이 텔레파시로 전해져 택배 기사님이 "아, 이 청년이 어지간히 급한가 보구나!" 하고 엑셀을 조금 더 밟아주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디지털 샤머니즘을 말이다. 물론 바뀌는 건 내 스마트폰 배터리 잔량과 닳아가는 내 지문뿐이다.


아침 출근길 지하철역에서도 비슷한 촌극이 벌어진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저 멀리서 지하철 진입음이 들려오면, 나는 평소엔 찾지도 않던 신을 급하게 찾는다.


'신이시어, 제발 저 "전 역 출발"이 시스템 오류이기를. 기관사님이 오늘따라 인류애가 넘치셔서, 계단을 굴러 내려오는 이 가여운 중생을 위해 30초만 더 문을 열어두는 자비를 베푸시기를.'


하지만 신은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지 않으시는 모양이다. 스크린도어는 나의 애절한 눈빛을 비웃듯 가차 없이 닫히고, 열차는 1초의 오차도 없이 내 코앞에서 멀어진다. 남겨진 것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뻘뻘 흘리는 나와, '다음 열차'를 알리는 매정한 전광판뿐이다.




주식 차트와 통제감의 착각


나는 일상 속에서 '통제감의 착각'이라는 달콤한 오류에 빠져 살고 있었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외부의 변수를, 스스로의 내부적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이 착각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집단 신경증에 가깝다.


주식이나 코인 시장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내 친구들의 화면을 훔쳐보면, 열에 아홉은 빨간색과 파란색 막대기가 춤을 추는 차트 창이다. 그들은 1분 간격으로 호가창을 확인하고, 커뮤니티의 글을 새로 고침 한다. 마치 내가 택배 조회를 많이 하면 물건이 빨리 올 거라 믿는 것처럼, 그들 역시 차트를 뚫어져라 쳐다보면 파란 불이 빨간 불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개미 투자자가 모니터를 노려본들 글로벌 경제 흐름이 바뀔 리 없고, 내가 기도를 한다고 떡락하는 코인이 부활할 리 없다.


많은 사람들은 '걱정'을 '노력'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정보를 확인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행위를 '무언가 하고 있다'는 위안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것은 노력이 아니라 '뇌세포의 낭비'다. 정작 업무나 공부, 자기 계발에 써야 할 소중한 에너지와 집중력을, 오지 않는 택배와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차트에 탕진해 버리는 꼴이다.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노를 젓는 게 아니라, 파도에게 "멈추라"라고 소리 지르며 목만 쉬게 하고 있는 셈이다.





'기다림의 근육'을 기르는 법


그래서 나는 이제 내 노력으로 결과값을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과감하게 그 간절함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기다림의 근육'을 회복하겠다는 의미다. 기술의 발전으로 모든 것이 '즉시 완료'되는 세상에서,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렸다. 로딩 시간이 3초만 넘어가도 분노하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내 손을 떠난 일은 내버려 두는 용기'다.


택배 주문 버튼을 누른 순간부터 "배송 완료" 알림이 울리기 전까지, 그 물건은 내 손을 떠난 '남의 일'로 간주할 것이다. 또한, 지하철을 놓치거나 주식이 떨어졌을 때, "내가 ~했어야 했는데"라는 가정법으로 나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나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그저 세계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맞지 않았거나 거대한 흐름의 일부일 뿐이다.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문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멘탈 관리 지침일지 모른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 라인홀드 니버


떠난 열차의 뒤꽁무니를 보며 욕을 하거나 멈춰버린 차트를 보며 한숨 쉬는 대신,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읽을 책 한 페이지를 펼치겠다. 통제할 수 없는 운명에 감정을 저당 잡히지 않고, 지금 당장 내 손으로 넘길 수 있는 책장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이로운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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