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안은 대대로 축복받은 '모발 금수저' 가문이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어르신들은 칠순이 넘어서도 빗이 부러질 듯 빽빽한 아마존 밀림 같은 머리숱을 자랑하셨다.
그런데 그 풍성한 유전자 틈바구니에서, 하필이면 나의 대에 이르러 기이한 사막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20대 초반, 한창 멋을 부릴 나이에 머리카락이 가늘어지는 현상을 느꼈다. 처음엔 기분 탓이라며 현실을 부정했지만, 얼마 후 동창회에서 확인 사살을 당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놈이 내 정수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야, 너... 슬슬 '약' 먹어야겠는데? 우리 삼촌이 그러다가 훅 가셨어."라고 했다. 그렇게 내 머리카락은 그날의 술안주가 되었다.
명절 풍경은 더 가관이다. 백발을 풍성하게 휘날리시는 집안 어르신들(심지어 80대 후반인 우리 할아버지도 머리숱이 많으시다) 틈에 앉아, 탈모 고민을 토로하는 20대 손자라니. "젊은 애가 빠지긴 뭘 빠지냐"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할아버지께서 내 정수리를 가까이서 보시더니, 웃음기를 싹 거두고 나지막이 탄식하셨다. “음... 여기가 좀 휑해지긴 했네.” 순간 명절 거실에는 숙연한 공기가 흘렀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탈모 초기가 의심된다고 했다. 억울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벌써 내 청춘을 제물로 바쳤단 말인가.
그날 이후 나는 평소보다 거울 앞에서 머리 세팅에 시간을 더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그래봤자 머리에 나는 털일 뿐인데, 내가 남들 눈 때문에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과거에는 머리숱이 적은 사람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자기 관리가 부족해 보인다'거나 '나이 들어 보인다'라고 멋대로 재단했었던 것 같다. 내가 그토록 혐오하던 외모 지상주의적 시선을, 실은 나도 타인에게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상대를 외모로 평가하지 마라. 그러나 명심해라, 당신은 외모로 평가될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짧은 문장은 거울 속 휑한 정수리와 마주한 나에게 뼈아픈 통찰을 준다. 나는 이것을 단순히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수한 병리 현상인 '썸네일 사회'의 단면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외모'란 단순히 잘생긴 이목구비나 명품 옷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과 소통하는 첫 번째 관문이자 '사용자 인터페이스'다. 문제는 현대 사회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이 유튜브 영상이나 SNS 피드를 소비하는 방식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매일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너무 많은 콘텐츠,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바쁜 일상. 이 '효율성'의 지옥에서 우리는 대상을 깊이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를 잃어버렸다.
우리는 1초 만에 판단한다. 영상의 썸네일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클릭조차 하지 않고 스크롤을 내리듯, 사람 또한 첫인상이라는 썸네일이 흐릿하면 그 사람의 내면을 궁금해하지 않고 '스킵' 해버린다. "내면이 중요하다"는 말은 옳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클릭되지 않은 영상은 조회수가 '0'이듯,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진국 같은 성품은 발휘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내가 아무리 성실한 청년이라 해도, 부스스한 머리와 자신감 없는 태도로 서 있다면 사람들은 나를 '관리 안 된 콘텐츠'로 분류하고 시선을 거둘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인간을 직관적으로 소비하길 원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이 만든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자신의 외면을 가꾸는 것은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다. 이 가혹한 '썸네일의 시대'에 나의 가치를 클릭하게 만들기 위한 생존 기술이다.
결국 나는 머리카락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하지만 나의 전략은 단순히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나는 내 인생이라는 콘텐츠를 다루는 기획자로서, '전략적 이중성'을 취하기로 했다.
우선, 나 자신은 철저히 '상품'처럼 관리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외모라는 1차원적인 잣대로 평가할 때, 단정한 용모와 관리된 태도로 그 평가의 문턱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 썸네일이 별로라는 이유로, 내가 가진 풍성한 내면의 콘텐츠가 재생조차 되지 않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타인을 볼 때는 '알고리즘'을 거스르는 눈을 가질 것이다. 나는 타인을 썸네일로만 판단하는 세상의 속도에 저항할 것이다. 상대가 화려한 명품과 풍성한 머리숱으로 치장했더라도 그 내면의 빈곤함을 간파하고, 반대로 겉모습이 초라하거나 '조회수'가 낮아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진 단단한 알맹이를 발견해 내는 '진득한 구독자'를 추구할 것이다. 썸네일의 위력을 알기에, 역설적으로 썸네일에 속지 않기 위해 더욱 부단히 노력할 거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다짐한다. 최소한 타인의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의 겉모습이기를, 그러나 나의 눈은 누구보다 본질을 꿰뚫기를. 대중의 시선을 머물게 하는 피사체가 됨과 동시에, 프레임 밖의 진실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사진작가가 되는 것. 이것이 내가 머리카락의 공포와 썸네일의 시대 앞에서 세운, 이 복잡한 세상에서의 생존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