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유모차를 끌고 가거나 아기띠를 하고 가는 엄마들이 눈에 띄면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된다. 나 또한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경험했던 일이기에 감정이입이 돼서 말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멀쩡한 아기띠를 놔두고 아이를 포대기에 둘러업고 밖을 활보한 적도 있다.옛날 어른들이 왜 포대기를 이용했는지 알 것 같다. 등에 아이를 업으면 아기띠보다 좀 더 자유롭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운전면허증은 땄지만 장롱 면허이기에 여기저기를 뚜벅이로 다녀야 하는 나로서는 애 셋을 데리고 어딜 가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막내는 아기띠를 한채첫째, 둘째는 쌍둥이 유모차에 앉혀 끌거나 첫째가 좀 크고 나서는 둘째, 셋째를 쌍둥이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는 내 옆에 찰싹 붙어 걷게 했다.어딜 가나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쌍둥이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다들 쌍둥이냐고 묻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뇨. 연년생이에요."
말하기도 하고 그것조차 말하기 힘에 부칠 때면
"네!"
짧게 대답하기도 했다.
줄줄이 셋이다 보니 예방접종을 하거나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늘 병원에 같이 가야 했다. 그럴 때마다 병원에 온 다른 부모들은 존경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부류와 나를 한심하게 보는듯한 부류로 나뉘는 듯했다.어찌나 뒤통수가 따갑던지.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꿋꿋하게 아이들에게 능숙한 척 대했다. 속으론 솔직히 힘들면서 일부러 안 힘든 척 말이다. 아이들이 병원에서 뛰거나 장난치면 워낙에는 소리도 지르며 다그쳤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뭐라고 고상한 척 부드럽게
"여긴 뛰면 안 되는 곳이야."
라며차근차근 설명했다.육아서적에 나오는 정석대로 행동하는 나를 보며 '너무 이중적인 거 아냐?'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한 명을 앉혀서 조용히 시켜놓으면 또 한 명이 시끄럽게 하고 돌림노래의 일부분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래 너희들도 신나게 놀고 싶겠지.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니?'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얼마나 움직임이 활발한 시기인데 그걸 엄마가 못하게 하니 자기들도 힘들까. 아이들이 주로 가는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조그마한 비타민을 아이들 손에 들려주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달콤한 유혹에 아이들이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뛰거나 울거나 장난치는 아이들에게는 이 작은 비타민이 뭐라고 제법 큰 역할을 한다. 우리 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작은 비타민을 들고서 조용히 자리에 앉곤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세명을 다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게 아니라 한 명이나 두 명씩 데리고 가는 것이다. 왜 진작 그러지 못했을까.이렇게 되면 나는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아이 셋을 컨트롤하며 힘들게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인 것이다. 유치원 선생님께 미리 연락을 해서 번갈아가며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다. 병원 원무과 직원이나 진료하는 의사도 내가 안돼 보였는지 위로의 말을 한마디씩 건네곤 했다.
지금은 어느덧 시간이 흘러 유모차 탈 나이는 모두 지났지만 일반 유모차, 쌍둥이 유모차, 휴대용 유모차 등 유모차만 해도 여러 대였던 예전을 생각하면 지금은 천국이 따로 없다.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큰 터울 없는 삼 남매를 줄줄이 데리고 어딘가를 혼자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어떤 돌발상황이 있을지 모르니 눈이 뒤통수에도 달려있을 만큼 주위를 두리번거려야 하고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가거나 장난치지 않게 큰 목소리로 지휘를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큰 아이가 8살이 되는 그 시간 동안 큰 사고 없이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준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