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은 아프다, 하지만 경험해 볼 가치가 있다.
1.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우리 집은 아파트에 입주했다. 그리고 갓 8살이 된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내 방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그 당시의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그냥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게 마냥 기뻤던것 같다. 아직 차가운 포장도 뜯지 않은 작은 침대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뒤척이며 설레했다.
그렇게 인생 처음으로 혼자 잠을 잤다. 맨 바닥에 요를 깔고 어머니 품 안에서 자던 시절을 벗어나, 처음으로 혼자 어두컴컴한 기나긴 밤을 보냈다. 나만의 공간이 준 설렘은 금새 두려움으로 변질되었고, 금새 어머니가 있는 안방으로 달려가 놀란 마음을 달랬던것 같다. 그만큼, 8살 인생 첫 독립은 설렘만큼이나 두려움이 가득했다.
2. 방이 생긴 기쁨은 일주일도 채 가지 않았다. 매일 밤 온 몸을 뒤덮는 어둠을 감당하지 못했던 어린 나는, 항상 익숙한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갔다. 한참을 내 방과 부모님의 방을 오가는 밤이 지속되던 어느 날, 어머니는 이젠 혼자 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단호한 통보를 했다.
처음엔 무섭다고 울며불며 어머니 품에서 자려고 애썼던것 같다. 그러다 이내 체념하고, 8살의 나는 홀로 잠을 청했다. 자그마한 나의 방이 내 온 몸을 짓누르는 거대한 어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새까만 존재가 나를 집어 삼킬 것 같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두려움과 상상도 잠시, 나는 하루종일 뛰어다닌 피로감을 반찬삼아 금새 꿈의 달콤함을 맛보았다.
3. 두려움을 극복한 뒤로, 나는 내 방이 좋아졌다. 낯설던 어둠이 주던 생경함도 눈에 익기 시작했고, 차갑게만 느껴지던 작은 매트리스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인생 첫 독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는듯 했으나...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내가 잠만 들면, 침대에서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잠든 뒤 1~2시간 뒤, 어머니는 "쿵"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내 방으로 달려오셨다. 왠지 모르겠지만, 혼자 잠들고 난 뒤 나는 항상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쿵-하고 떨어지곤 했다. 놀란 가슴 부여잡고 오셨을 어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침대에서 떨어진 빼짝 마른 어린 나는 세상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고 하고.
4. 내 추락을 막기위해 어머니는 갖은 수를 다 쓰셨다. 내가 잠들때까지 옆에 있다가 슬쩍 떠나보시기도 하고, 아예 내가 잠든 후에 침대로 옮겨보기도 하셨다. 근데 이런 모든 수를 다 써도, 나는 침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이내 쿵-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어머니는 행여나 내가 침대에서 떨어져 다칠까 전전긍긍하셨고, 해답은 없는듯 했다.
근데 해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밑져야 본전이란 마인드로 어머니는 잠든 내 옆에 기다란 베개 하나를 두셨는데, 그 이후로 나는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5. 침대에서는 더 이상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로 나는 수도 없이 크고 작은 추락과 상승을 경험했다. 어쩌다 시험을 한번 잘 보면 끝 없이 상승하던 자신감은, 한번의 실수로 번지점프 하듯 하락했다. 사람에 웃고, 사람에 슬퍼하는 날들도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다가 굴러 떨어지던 시절처럼, 나는 매일 매일을 끝도 없이 상승하다 추락하길 반복했다.
그러다보니 아픈지도 모르고, 무엇을 바로 잡아야 할지도 몰랐다. 매일 쿵-하고 떨어지는 추락이 아픈지도 모르고 하루를 살아가는 내 옆에는, 그 누구도 기다란 베개를 놓아주지 않기도 했고.
6. 8살 나에게 어머니가 놓아준 기다란 베개는 낙하산과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자그마한 침대에서 추락하면,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줄 수 있는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30대인 지금의 나에겐, 아직 기다란 베게가 없다. 지금의 나는 좁디 좁은 나만의 작은 침대 끄트머리 벼랑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떨어져도 쿵-하는 큰 소리 외에는 아픈지도 모를 수 있는데, 난 잠들지 못해서 이 얕은 높이가 두렵고 무섭다. 어찌보면 어머니가 놓아준 기다란 베게는, 여유롭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