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없이 끝나는 대화는 군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점심을 먹고 직장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그동안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오늘의 주제는 초등학교 들어가면 스마트폰을 꼭 사줘야 하나였다.
선배맘들에게 들은 얘기는 우선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사주고 싶지 않아도 사줘야 하는 것이 스마트폰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하교 후 엄마가 퇴근하기 전까지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학원 2~3곳은 보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학원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이 필수라는 것이다.
다음 들은 얘기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쪼로록 모여 앉아 스마트폰을 켜고 게임을 한다는 것이다.스마트폰이 없는 아이는 게임을 하고 있는 친구 옆에 붙어 앉아 부러운 시선으로 보고만 있던가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가 둘 중하나라고 했다. 내가 직접 본 풍경이 아니라 믿을 수 없었지만 아예 없는 말은 아닐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들은 얘기는 학교 준비물과 전달사항들을 단톡방을 이용해 전달한다는 것이다. 카톡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 소식에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얘기만 듣고 보면 스마트폰은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꼭 사줘야만 하는 필수품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다행히 아직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기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우연히 권장희 소장님의 <스마트폰으로부터 아이를 구하라!> 세바시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 스마트폰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매체를 통해 알고는 있었지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었다. 이 영상을 보니 스마트폰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영상에서는 머리에 128개의 전자극 장치를 한 아이가 게임을 할 때와 책을 읽을 때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줬다. 실험 영상에서는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 뇌의 전두엽 부분이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이가 책을 읽고 있을 때는 전두엽 부분과 뇌 전체가 크게 활성화되었다.
사고와 판단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부분은 초등학생 시절 가완성 되고, 사춘기 동안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한다. 전두엽 부분이 만들어지고 있는 시기에 스마트폰으로 활발하게 움직여야 할 뇌가 정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실리콘벨리 2세들이 다니고 있는 발도르프 학교에선 초등학교 아이들의 창의력 사고를 위해 스마트폰을 학교에 반입은 물론 사용도 금지하는 교육을 한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 또한 14년 동안 자녀들에게 IT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기간을 정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열다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을 사용할 수 있었는 데 사용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했다고 한다. 트위터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에번 윌리엄스 또한 집에는 IT 기기가 아예 없고, 대신 책으로 가득한 거대한 서재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스마트폰에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정작 그것들을 만든 사람들의 가족, 특히 자녀들에게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알고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난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내 아이를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다. 집안의 평안을 위해 내 안위를 위해 아이들에게 최대한 스마트폰을 늦게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스마트폰 활용능력은 필요할 때 배우면 된다. 기술 습득은 필요한 시기에 넣어주면 된다. 하지만 아이의 사고능력은 단시간 내에 키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에 아이의 소중한 시기의 시간을 빼앗기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하고 있는 친구 옆에서 부러운 눈빛으로 쭈그려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쓰리지만 스마트폰의 영향을 안 이상 아이에게 사줄 수도 없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갖고 싶다고 말할 때가 오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왜 사줄 수 없는지 내 생각이 어떤지 최대한 잘 설명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재미있는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음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노출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노력들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친척집에 갈 때는 책, 그림도구, DVD 플레이어를 챙겨갔다.
보통 아이가 심심해하는 것 같으면 어른들은 먼저 아이들에게 TV를 틀어주거나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친척집을 방문할 때면 항상 책과 그림도구, DVD 플레이어를 챙겨 갔다. 책은 가지고 이동하기 편하게 바퀴 달린 캐리어에 담아 갔다. 파일박스에 A4 용지 몇 장과 색연필, 가위 등을 챙겨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가위질을 하면서 놀도록 했다. 휴대용 DVD 플레이어는 어른들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 유용하게 사용됐다. 어른들도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대화할 거리가 많은데 아이들에게 영어 DVD를 틀어주면 대화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 또한 어른들이 대화하는 시간에 무방비 상태로 TV에 노출되는 것보다 영어 DVD를 보여줘 영어 소리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도록 했다.
두 번째. 집에서 아이가 심심해할 때는 영어 DVD를 보여줬다.
집에서도 아이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쉽게 허용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아이와 놀다 놀다 지쳐 더 이상 해줄 것도 없고, 아이도 심심해하는 것 같고, 책도 충분히 읽어준 것 같은데 밖에는 비도 와 나가지도 못할 때, 그럴 때 영어 DVD를 보여줬다. 파닉스를 저절로 떼게 해주는 립플로그나 메이셋영어와 같은 학습용 DVD를 틀어주었다. 이런 학습용 DVD를 아이가 잘 볼 때면 내 마음도 참 느긋해진다. 만약 아이가 보고 있는 것이 한글 만화였다면 언제 TV를 꺼야 하나 아이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을 것 같다.
세 번째. 아이와 있을 때는 최대한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다.
회사에 있을 때는 모바일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하였기에 책상 위에 기종별, 버전별 스마트폰을 깔아 두고 업무를 보았다. 당연히 퇴근 후에도 카톡으로 업무 대화가 많이 오갔기 때문에 집에서도 스마트폰을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있을 때는 업무 외에 아이의 시선을 외면한 채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하루에 고작 많아야 3시간 정도였기에 아이들 대화 들어주고 책 읽어주다 보면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었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그냥 엄마가 일하는 도구쯤으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을 보니 스마트폰이 초등학생들의 필수품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음날 필요한 준비물들을 공책에 연필로 꾹꾹 눌러 써왔고, 학부모들은 '알리미'라는 앱을 통해 공식적인 학교 소식을 빠짐없이 챙겨 볼 수 있었다.
아이의 행동반경이 넓어져 연락이 필요할 땐 스마트폰보다는 피쳐폰을 사주려고 한다. 스마트폰은 어른이 되면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집 규칙이라며 우겨도 보고, 한 해 한 해 아이의 나이에 맞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도 준비하려고 한다. 동시에 피처폰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 아이로 키우기 위해 나 또한 노력해야 함을 안다.
몇 년 전 직장 동료들과 했던 스마트폰 노출에 대한 고구마 같은 대화의 결론은 몇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만의 답을 찾아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답답함을 해소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