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화장실 갔다올게요.”
“......안돼.”
“아, 왜 안돼요? 급해요.”
"참아."
“생리현상을 왜 참아요? 이거 인권침해야. 신고할거예요.”
“수업 시작하고 1분만에 급해질 거였으면 쉬는 시간에 갔어야지. 매번 수업시작하자마자 화장실가는 건 진짜 예의가 아닌 거야.”
“쉬는 시간은 쉬어야죠. 쉬기도 부족하구만. 그럼 10분 있다가 갈게요.”
얼핏 들으면 귀엽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이미 학교를 9년이나 다닌 16세, 중3. 귀엽게 봐주긴 힘들다. 한 두 번 용납하니 매시간 교과서 펴고 수업을 시작하려면 화장실 간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이 대여섯이다. 난감하다. 같이 화장실 간 아이들이 교실로 들어오지 않고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노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다른 반 문을 열고 친구 이름을 부르고 다니기도 한다. 호의가 뒤통수를 치는 순간이다.
그래서 화장실 가는 것도 규칙이 생겼다. 수업 시작 후 10분 뒤부터. 한 명씩.
10분 동안 다리를 떨고 앉았던 아이는 10분이 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10분 됐다. 화장실 갈게요.”
허락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아이는 교실의 무법자다.
4월에 같은 학년 아이를 때리고 스마트워치를 뺏아가서 이미 학폭으로 신고된 처지이지만 7월까지 어떤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학폭은 많고 절차는 복잡해서 교육청으로 넘어가면 최소 3달은 걸린다. 어지간한 아이들은 그 기간동안 눈치를 보면서 몸을 사리지만 막무가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보복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 아이는 소년원에도 다녀왔다. 키는 크지 않지만 몸통이 크고 몸무게는 80킬로가 넘어보인다.
아무도, 누구도 이 아이에게 뭐라하지 않는다.
아이는 뒷문으로 걸어가면서 맨 뒷자리 여학생의 눈 앞에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한다. 조용히 필기하던 여학생이 움찔한다. 아무 친분도 없는 여학생이다.
나 역시 깜짝 놀라 눈이 커진다.
“뭐하는거야? 왜그래?”
“뭐요?”
별일 아니라는 말투. 아이는 귀찮다는 듯이 소리친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
“남의 집 귀한 딸한테 왜 함부로 주먹을 휘두르고 그러지?”
“안 때렸잖아요. ”
어이가 없다. 그 다음에 튀어나오는 말은 나를 더 놀라게 한다.
“샘은 왜 남의 집 귀한 아들한테 뭐라뭐라해요?”
그리고는 밖으로 튀어나간다.
어이없는 한숨이 새어나온다. 다른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교실 문 밖을 쳐다본다. 뜻밖에 주먹을 구경한 여학생은 자리에 엎드려 버렸다.
‘그래, 너도 너희 집 귀한 아들이겠지. 쟤는 귀한 딸이 아니라서 너한테 위협당하고 있는걸까?'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괜찮냐고 묻자 그렇단다. 하긴 안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 딸아이도 중3이다. 내 딸이 학교에서 저런 아이들의 놀림감이 될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이정도 행위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 직접적인 폭행이 없다면 지속적이고 고의적인 괴롭힘이 있었다는 것을 피해자가 입증해야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수업 후 불러 좀 단호하게 앞으로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된다고 얼르는 것 뿐이다.
부른다고 올 가능성도 적고, 뭐 안들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 여학생은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할까? 아마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제도는 멀고 실질적 위협은 가까이 있다. 게다가 아까 아이의 말대로 ‘안때렸는데’ 뭘로 신고하고 처벌하나? 가슴이 답답하다. 주먹을 휘두른 아이는 그동안의 삶을 바탕으로 나보다 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남의 집 귀한 자식들은 이렇게 한 교실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