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하고아름다운 Mar 12. 2024

남의 집 가정교육에 왜 참견입니까?

남의 집 귀한 자식 5

급식실 공사로 몇개월 아이들이 도시락을 싸와야 할 때였다. 한 아이가 일주일이 넘게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불러서 이야기를 해보니 부모님과 어떤 약속을 했는데 지키지 않아서 한달동안  점심을 굶기로 했다고 한다. 아이가 잘못을 할 수는 있지만 벌로 밥을 먹어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성장기 아이인데 잘 먹어야할텐데.     

지난 주말에는 방청소를 하지 않아 팬티만 입은 상태로 대문 앞에 2시간을 서 있었다고 했다. 이게 처음이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자주 팬티만 입은 채고 문 앞에 서 있었다고 한다. 그애는 중학교 1학년, 열네살이었다. 팬티만 입고 문앞에 서 있을 나이는 아니었다.      

평소 아이의 주눅든 행동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가까이 오거나, 뭔가 위협을 느끼면 몸을 움츠리는 아이었다. 다른 아이들 말에 따르면 애들이 큰소리를 내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시늉을 하면 "오백원 줄게 때리지마"라고 한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 걱정된다고 했더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거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참을 이야기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고, 이제 사춘기이니 팬티만 입고 쫓겨나는 벌은 가혹한 것 같다라고 했다. 아이가 위축되어 있어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것 같았지만, 저경력 교사였던 나는 열심히 이런저런 교육적인 이야기를 했다.      

다음날 아침, 교무실에 있는데 저쪽에서 1학년 6반을 담임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키가 180이 넘는 듯하고 뼈대가 우람하면서 단단한 느낌의 아저씨 한 분이 나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점잖게 양복을 입었지만 굵은 눈썹이 위로 치켜올라가고 얼굴이 붉은 것이 관운장이 있다면 저런 느낌일까 싶게 내게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지만 그분이 내뿜는 어마어마하게 차갑고, 위협적인 분위기에 나는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 00이 담임선생님입니까?"  무섭고, 깊고, 정중한 목소리. 곧 터질듯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쾅" 

그분이 내 책상을 내리쳤다.     

"왜 선생님이 남의 집 가정교육에 이래라저래라 하는겁니까?"

몸에서 불이 내뿜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다시 책상을 "쾅"     

"남의 집 가정교육에 참견하지 말란 말입니다. 우리 아이는 우리 방식으로 키웁니다."     

"쾅"     

"선생님이 우리 아이의 부모입니까? 우리가 우리의 방식으로 키우겠다는데 선생님이 왜 참견하십니까?"     

커다란 고함소리가 교무실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나는 얼어붙어 그분이 자신의 할 말만을 뱉은 후 몸을 돌려 사라질 때까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다들 교실에 들어가고 교무실에는 나 혼자 밖에 없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교실로 갔다. 복도에서부터 왁자지껄 한바탕 난리여야 할 교실이 조용하다.

"얘들아, 오늘.... 분위기가....... 왜 이렇지? 왜 조용하지?"

잠시 침묵. 전에 없이 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누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생님, 대가리를 뽀개버린대요."

"의자를 집어던졌어요."

"와, 나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잖아."

"진짜 무서워. 대박"

갑자기 아이들이 왁자지껄 이야기를 쏟아냈다.      

교무실에 아버지가 와서 소리를 지르는 동안 어머니가 교실에 들어왔다고 한다.     

 "어떤 놈이 우리 아들 건드렸어?"

그러고는 가까이 있는 의자를 집어서 벽으로 던졌단다.      

"한번만 더 까불어대면 대가리를 뽀개버릴거야?"

라고 소리지르고는, 교탁을 여러번 내리치고, 어머니도 그대로 사라졌다고 한다.      

담임이 없는 동안 서른 명의 열네살 아이들은 그 어머니가 고함지르는 것을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보고 있었다. 교무실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이후로, 위축되었던 아이가 좋아졌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도시락도 여전히 싸오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남의 집 가정교육에 함부로 끼어든 내가 잘못한걸까?"

어쩌면 아동학대로 신고 당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가정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는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그 이후로 변한 건 나였다. 옳고 그름을 떠나 남의 집 가정교육에 함부로 참견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는 걸까? 교사가 어디까지 남의 집 가정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교육의, 인생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의 한계를 누가 정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은 집에서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을까?

밖에서, 타인에게 우리 아이가 귀하다고 소리치는 분들이 오히려 집에서는 그 아이들을 억압하고 폭력적으로 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리고 가정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집 밖에서 누군가 자녀를 위협하거나 다치게 하는 일이 생긴다면 절대 참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나는 그 사랑이 비뚤어져있으며 그 사랑으로 아이가 점점 더 시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입을 열어 말하기가 어렵다. 

'폭력은 아이를 성장시키지도 보호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표현도 아닙니다.‘

이전 04화 어떤 씨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