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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아름다운 Mar 19. 2024

우리 아이 기분 상해죄

남의 집 귀한 자식 -6

마음의 무게를 잰다면 얼마나 될까? 새털처럼 가볍지만 때론 지구보다 무겁다. 또 상처는 얼마나 잘 받는지. 그 힘듦을 잘 알기에 사람들은 자식이 상처 입는 것을 막으려 필사적이다. 힘든 일을 대신해 주거나 친구를 만들어 주거나. 요즘은 아이가 못하는 것이 있으면 아예 그것을 없애려고도 한다. 그래서 받아쓰기나 그림일기가 없어졌다. 

하지만 상처를 입으면서 자라는 것이 살아있는 존재의 숙명이 아닐까? 아이의 아픈 마음을 지켜보는 것은 힘들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올해 겪은 몇가지 짧은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중학교에서는 항상 말썽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를 대처하는 부모들의 태도였다.    


      

수업 중 휴대폰으로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 단원이 있었다.

"자 지금부터 딱 20분간 자료를 찾아서 학습지에 적으세요. 필요한 사이트에만 들어가고 카카오톡, 인스타, 페이스북, 게임, 음원사이트 금지. 딴짓하다 걸리면 반성문, 벌점, 부모님한테 연락 쓰리콤보로 가니까 제발 조심하자. 서로 곤란하지 않게해라."

엄포를 놓기는 했지만 세상에 완벽한 통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90퍼센트의 학생들은 선을 넘지 않지만 항상 예외의 10퍼센트가 있다. 그들도 서로 얼굴 붉히지 않을 선에서 예의를 차려주면 암묵적인 관용이 베풀어진다는 것을 중학교 3학년쯤 되면 스스로 알게 된다.



휴대폰을 나눠주자마자 교실 안은 적막이 감돈다.  나는 천천히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10분쯤 지났다. 한명의 남학생이 낄낄거리기 시작하더니 참지 못하고 폭소한다.

그리고는 대뜸 "선생님, 저새끼가 DM보내요"라고 외친다. 상대로 지목된 아이도 실실웃으며 맞받아친다.

"아니, 저새끼가 먼저 저한테 00날렸어요."

한숨이 새어나왔다.

'DM을 받았으면 혼자 알고 있을 것이지 왜 나한테 큰소리로 알려주는거지? 수업 중에 다른 짓하다 걸리면 쓰리콤보라고 이야기했는데 상관없다는건가?'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불러갔다. 회의실 의자에 앉아서도 두 아이는 연신 서로 툭툭치고 실실거리고 웃고 있다. (요즘은 세워놓고 지도하는 것도 인권때문에 잘 못한다.) 그 중에 한 아이는 반성문을 쓰게 시키는데도 3줄 정도 쓰고는 웃으며 ㅡ쓸 말이 없는데요. 저 새끼가 먼저 그랬는데 저는 왜 혼나요? 집에 전화 할 거예요?ㅡ 등의 말을 계속 했기에 다음 쉬는 시간에도 불러서 더 지도를 했다.

수업 중에 다른 사이트 들어가는 건 잘못이다. 수업 중 장난에 맞대응하고 그걸 웃으며 이야기하는 건 잘못이다. 네가 초등학생도 아닌데 몰랐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등의 이야기를 하고 벌점을 보냈다. 집에까지 전화를 하기에는 귀찮고 바쁘고해서, 또 부모들에게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무섭기도 해서 패스했다.



다음날 아침 그 반 담임이 찾아왔다. 어제 저녁 더 혼난 아이의 엄마가 전화를 했는데 "우리 아이가 잘못한 건 맞지만 선생님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셔서 아이가 굉장히 기분이 안좋았다고 했다. 좋게 이야기해도 되는데 혼내고 짜증내서 힘들었다고 한다. 아이가 지도한 선생님에게 꼭 전해달라고 이야기해서 전화드렸다. 전달 부탁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담임도 나도 어이가 없어서 마주보고 웃었다.

그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나의 태도와 말투라는 것과 그것을 학교에 그대로 전했다는것이 당황스러웠다.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중학교에서는 처음이다. 사실 지난 3년간 코로나 시국으로 아이들이 등교를 하지 않았기에 학부모들의 인식도 초등학교에 머물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을 들어갔더니 이번엔 어제 조금 혼난 아이가 도를 넘게 떠들고 무례하게 굴었다. 선생님에게 예의를 갖춰서 말하라고 했더니 "샘들이 먼저 억까(억지로 깐다)하는데 왜 예의를 갖추냐, 내가 잘못한게 뭐가 있냐? 수업 중에 친구랑 말도 못하냐?" 등의 대꾸를 했다. 어제 벌점 준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후 교무실로 불러도 여전했다. 아이를 보내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선생님, 선생님 말씀은 잘 알겠는데요. 집에서 아이 마음이 어땠는지 먼저 물어볼게요. 그 다음에~"

순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마음이 안좋았으면 잘못이 없어지는게 아닌데. 이대로 계속 듣고 있으면 어떠한 지도도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아이 마음을 먼저 물어보신다고 하셨는데, 세상에 마음이 안다치고 사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자기 마음을 먼저 생각하면 누구나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해야죠. 30명이 모인 교실에서 자기 마음 먼저 생각하면 생활이 안됩니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고, 마음 다칠 수도 있지만 지켜야 할 질서나 상대에 대한 예의를 먼저 가르치고 마음을 이야기하는게 순서 아닌가요?"

마음에 참아둔 말이 마구 흘러나오며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예, 예, 알겠어요. 집에서 얘기할게요." 

전화기 너머에서 짜증이 역력한 말투가 들렸다.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주변 선생님들이 놀랍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세상에, 엄마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다구요? 대박인데요.“    


 

어제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했어야 한다는 후회가 들었다. 미뤄둔 대가는 더 크게 돌아오는 법이라는 것을 꼭 경험해봐야 안다. 미련하게도. 조금 마음 불편한 일을 피해보려다 더 복잡해졌다. 

다음날부터 두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살면서 잘못은 누구나 한다. 우리가 배워야하는 건 잘못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했을 때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것, 깨끗하게 사과하는 것, 그리고 같은 잘못은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요즘은 잘못했을 때 큰소리치고 인정하지 않고 역으로 타인의 태도를 문제 삼는 것이 똑똑한 것이라는 분위기가 번지는 것 같다. 당장은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교묘하게 빠져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배워야할 때 배우지 못해 괴물로 자란다면 그 대가는 가장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치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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