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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아름다운 Apr 02. 2024

이제 누가 가해자가 되는거지?

남의 집 귀한 자식 - 8

법은 가깝고 주먹은 먼 시대다.

뭔가 순서가 바뀐듯하지만 전화 한 통이면 경찰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한다. (물론 출동하거나, 경찰서를 찾아간다고 해도 항상 친절하게 도와주는건 아니다)

그다지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법을 자기 입맛에 맞게 주물러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 자기는 피해자 행세를 한다. 학폭 가해자가 상대를 맞고소하고, 조사하거나 지도하는 교사를 신고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자기의 잘못은 신고자라는 위치에 가려진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다.

이른바 기분상해죄의 가해자가 되는거다. 인터넷을 통해 그런 방법들이 당당히 공유된다. 학폭으로 신고당하면 맞고소 하라거나 절차를 문제삼아 무효화시키라고.



올해 우리 학교에 경찰이 두 번 출동했다. 두 번 다 신고자가 같다. 키가 작고 목소리가 큰 3학년 남학생. 키가 작으니 아이들한테 괴롭힘 당할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는 않다.

학교 안의 온갖 사건사고에 안끼어있는 곳이 없다.  인근 주택가에 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고 있다던가 주변 아파트에서 학생들 시끄럽다고 신고가 들어오면(학교에서 이런것도 처리함) 일단 그 아이가 있는거다. 본인은 작지만 덩치 큰 일진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앞에서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다닌다.

몸은 작지만 입이 어찌나 험한지, 여학생들을 보면 일단 '뭘봐 이 쌍년아'라고 소리치고 간다. 수업시간에도 수시로 벌떡벌떡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 올게요"하고 나간다던지 "아, 재미없어" 라고 큰소리로 말한다.



처음 경찰을 부른 이유는 주말에 있던 청소년 단체 수련회에서였다. 평소 사이가 안좋던 아이가 있었는데 어쩌다 같이 수련회를 갔던 모양이다. 같이 갔던 아이들 말에 의하면 차가 급정거 하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두 아이가 서로 부딪혔다고 한다. 그날은 '왜 쳐 이새끼야!' '내가 언제 쳤어. 넘어진거지.'하고 넘어갔다.



다음날 점심시간에 이 아이가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차가 학교에 들이닥쳤다. 번쩍번쩍하는 견장을 단 경찰들이 들어서자 학교는 난리가 났다. 신고자가 맞았다고하니 조사를 했다. 어찌됐든 신체적 접촉이 있었고, 맞은 사람이 아팠다고 하니 사건 접수가 되었다.

학생들간의 사안은 경찰에 신고를 해도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니면 다 학교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건은 학교폭력으로 접수되어 때린 아이는 교내봉사를 받았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이 맞는걸 봤다고 거짓 진술을 해준게 아주 큰 역할을 했다.

그 후로 이 아이의 어깨는 더욱더 뒤로 젖혀졌다. 복도를 지나면서 큰소리로 욕을 해대고 누가 가까이 오면 "어어, 치네, 쳐. 때리냐?"라고 했다. 수업중에 선생님들이 어깨나 머리에 손을 올리면 "어어, 때리지 마세요. 아파요. 아파."라고 외친다.



두번째 신고 대상자는 같이 놀던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점심시간에 여럿이서 몸싸움 겸 서로 치고 만지고 놀고 있었는데 누군가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졌다. (좋은 건 아니지만 이러고 노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원래 한패거리였으나 요즘 둘 사이에 시비가 오갔다고 한다. 우리의 주인공은 바로 경찰을 불렀다.

 또다시 경찰이 왔다. 이번에는 복도에서 벌어진 일이라 목격자도 많았다. 죄목은 동성간 성희롱.

경찰들이 요란하게 오긴했지만 이번에도 교내 성희롱으로 신고되어 가해학생이 교내봉사를 받았다. 가해 피해가 분명하긴 하지만 어딘지 찝찝하다. 평소 행실로 보아 단죄받아야 마땅한 아이가 도리어 큰소리치며 신고하겠다고 으르렁대고 다닌다. 엄마는 아이가 키가 작아서 늘 친구들에게 당하고 산다며 안타까워 어쩔줄 모른다.



대부분의 목소리 작은 학생들은 숨죽이며 살아간다. 그리고 교권이 추락한 자리에 패거리를 이룬 작은 폭군들이 활개를 치며 위협한다.

요즘 학폭은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힌다는 전통적 관념과는 많이 다르다. 어제까지 친구였다가 어느 순간 수틀리면 신고를 한다. 작은 다툼도 법의 힘을 빌려 해결한다. 그래야 상대에게 영구적인 영향을 남길 수 있으니까.

인터넷을 찾아보면 학폭전문 변호사들이 무척 많다. 이들은 신고하는 요령이나 신고당했을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등을 소상히 알려준다. 대화나 조정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신고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학부모들의 감정싸움으로 번지기라도 하면 몇년이나 이어지는 소송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감히 나를 건드려, 가만두지 않겠어!!


교사들도 이 굴레서에 자유롭지 못하다. 앞에 나와서 수학문제를 풀게 헸다고 신고당하는 교사, 실습시간 내내 떠드는 여학생들을 지적했다가 성추행으로 신고당한 교사들이 주변에 있다. 학폭 사안을 조사하다가 언성이 높아지거나 말꼬리를 잡혀 신고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들은 경찰에 신고되어 있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

신고라는 선빵을 날리면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희미해진다.


강자와 약자, 선함과 악함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대이다. 강자라서 악한것도 아니고 약자라서 선한것도 아니다. 선이 영원하지 않듯 악도 힘을 옮긴다. 어제는 친구지만 오늘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선다.

인간의 논리가 법의 논리보다 멀어지고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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