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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아름다운 Mar 26. 2024

내 아이를 괴롭힌 너, 어떻게 할까?

남의 집 귀한 자식 7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교무실 앞에 아이들이 모여 웅성웅성했다. 아이들 사이를 헤치고 교무실로 들어갔다. 번쩍이는 견장을 단 경찰이 교무실 탁자에 앉아 있었다.

"3학년 6반 담임 선생님이시죠?"

그 옆에 화려한 차림의 학부모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희서 엄마예요."

어제 수업을 마치고 희서엄마와 통화를 했었다. 희서가 아이들과 사이가 안좋아진 것 같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지도하겠노라고. 그리고 오늘 1교시가 끝나자마자 희서 엄마는 경찰과 함께 학교에 온 것이다.



여자들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친구들 무리가 홀수로 구성되면 얼마나 불안한지. 둘씩 앉아야 한다거나 벤치 같은데 나란히 앉을 때, 모둠이나 팀을 구성할때, 급식을 먹으러 갈때, 혼자 떨어지게 될까봐, 혹은 혼자 떨어졌을 때 괜찮은척 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졸이고 힘든 일인지. 순간순간 닥쳐오는 이런 소외의 시간은 우리의 심장에 상처를 남긴다. 어른이 되어 삶에 내공이 좀 생기면 괜찮아하고 넘길 수 있지만 학창시절 친구들 무리에서 배제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은 극복하기 무척 어려운 문제이다.


 그해 우리반 여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요즘은 한반에 여학생은 대략 10-12명 정도이다. 기껏해야 두세 무리 이상은 만들어지기 어렵다. 일곱명, 다섯명, 일곱명인 아이들은 밝고 적극적이었다. 전교회장인 아이, 운동을 잘하는 아이, 춤을 잘 추는 아이, 이 예쁜 아이들이 학급 단합대회에서도 주도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진행을 도맡아 했다. 우리반 반장은 이 무리에 있었는데 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춤을 잘 추었다. 반장선거 유세에 나와 유연한 웨이브를 보여주며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학급 단합대회때도 힙합 댄스를 멋지게 춰 반 아이들이 단체로 반장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고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그 덕에 우리반은 즐거웠고 단합이 잘되는 반으로 꼽혔다.



그랬던 것이 5월 말에 다녀온 수학여행때부터 뭔가 달라진 느낌이 있었다. 일곱명이 무리를 이루다보니 버스에 앉을 때 한명은 혼자 앉아 갔다. 아이들끼리 의논해서 돌아가면서 한명씩 혼자앉기로 했다는데 왠지 싸늘한 분위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관람을 할때도 반장만 자꾸 뒤로 옆으로 따돌려지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때면 둘씩 마주보는 자리에서 반장 앞에는 다른 친구가 앉지 않았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은근하게가 아니라 드러내놓고 아이들은 반장과 어울리지 않았다. 급식실에 갈때도 미술실에 갈때도 여섯명이 우르르 몰려가고 반장만 혼자 교실에 있거나 늦게 가거나했다.


"희서는 밥먹으로 왜 같이 안가?"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한번씩 쳐다보고는 내 눈치를 살폈다.

"반장 자고 있어서 우리끼리 왔어요."

"자고 있으면 깨워서 같이 가면 좋을텐데"

"요즘 축제 준비한다고 늦게까지 다른 반 애들이랑 연습하느라 피곤하대요."

누군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치자 모두들 우르르 도망가 버렸다.


어두컴컴한 교실에 희서 혼자 엎드려 자고 있었다.

"희서야, 일어나 밥 먹고 자자."

"아, 예? 예? 점심...저 점심 안먹을래요."

희서가 부시시 눈을 떴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다. 피곤해서 자고 있는게 아니다. 전형적인 무기력한 아이의 모습이다. 힘이 없고 다른 이의 말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친구들 다 점심 먹으러 갔어. 요즘 아이들이랑 같이 안놀아?"

희서는 내 얼굴을 쳐다보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점심먹으러 갈 때 같이 안가는 것 같더라. 무슨 일 있니?"

희서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니, 그런게 아니고.... 그냥... 정신차려보면 애들이 벌써 없어요.... 같이 가려고 하면 벌써 저만큼 가있고."


나 역시 여중 여고를 나왔고 교사생활 이십년이 되어간다. 말로는 드러나지 않는 여학생들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어긋남.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름 붙인다면 명확한 따돌림이다. 그냥 친하지 않기만하다면 별일 아니지만 정말로 따돌림이나 괴롭힘으로 갈 수도 있다. 듣기로 반장 엄마가 좀 세다고 했다.

'제가 이렇게 먼저 이야기할때까지 선생님은 모르고 계셨어요?'

이런 소리를 듣기 전에 내가 개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전화를 했더니 희서 엄마는 일때문에 한 달째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희서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른다고 했다.

"어머니, 희서가 아이들하고 사이가 안좋아져서 그런지 많이 우울해해요.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날도 있구요. 그렇게 서로 다정하고 좋았는데, 서로 오해들이 있을것 같아요. 제가 아이들과 이야기해볼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고 퇴근을 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자마자 이런 일이 일어난것이다.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희서 언니도 이 학교를 졸업했어요. 언니 3학년때도 아이들이 왕따를 시키더라구요. 기집애들이 어찌나 못됐는지. 학교에서 책임지고 조치해주실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어요.  저도 여학교 다녀봐서 아는데 남 따돌리는 애들은 그냥 말로하면 안되는거 아시죠?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면 안될것 같아서요."

나는 어리둥절해서 잠자코 서 있었다. 희서 엄마가 중얼거렸다.

"나쁜 것들. 좀 본때를 봐야 정신을 차리지."


경찰은 아이들을 불러줄 것을 요구했고, 내가 다음 수업을 간 동안 아이들과 몇마디 대화를 한 후 생활지도부로 갔다. 학폭의 경우 경찰에 신고를 해도 조사와 처분은 학교에서 처리한다.


그 이후 우리반은 쑥대밭이 되었다. 여섯 여학생들이 차례로 생활지도부에 불려갔다. 여섯 아이들은 난생처음 경찰에게 조사받고 생활지도부에서 사유서 경위서 반성문 등을 썼다. 매일 누군가는 울었고, 희서에게 미안하다고 했지만 다시 사이가 좋아질 수는 없었다. 만약 징계가 내린다면 전교회장 선거를 다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학급 담임으로써 나는 무기력했다. 학급 구성원들 사이의 문제라 담임은 조사와 지도에서 배제 되었다. 어떠한 이야기를 해도 누군가를 편들어주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경찰까지 출동할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오해도 아니었다. 반장을 시샘했던 한 아이가 의식적으로, 그러나 은밀하게 따돌림을 주도했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우물쭈물하다가 주동자의 편에 서게 된 것이다. 반장도 그저 밝기만했지  약삭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자기편을 만들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한 달 가까운 절차를 거친 후에 주동자 둘은 사과문과 교내봉사, 나머지 넷은 사과편지를 쓰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관계는 봉합되지 않았다. 반장은 다른 무리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들과 어울려 다닐만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전 친구들과 다시 화해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평범한 여중생이 수업 중에 경찰에 불려가 조사 받은 기억을 쉽게 잊을 수 있을까? 법이나 규정은 누군가 괴롭히거나 놀린다면 제지할 수 있는 것이지 사람의 관계와 마음까지 봉합해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학생들간의 따돌림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한번 틀어진 사이가 선생님이 설득을 한다고, 혹은 억지로 붙여 준다고 다시 돌아올리가 없다. "화해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어른들이 자기 편하자고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서로 미워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 교실에서 공존할 수만 있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처벌이 나오자 따돌림 주동자로 지목된 아이의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이 그쪽 엄마한테 전화하지 않고 그냥 두셨으면 이렇게까지 안될 일이었던것 아닌가요? 우리 아이가 아무리 잘못했지만 선생님이 우리 애를 경찰로 넘긴 꼴이 된거잖아요."

아이의 잘못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의도야 어쨌든 좋지 않은 결과를 빚었다.



아직 미숙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기에 갈등은 항상 벌어진다. 아직 말랑말랑한 영혼은 어른들보다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인생 첫 시련이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어떤 크기든 어떤 방법이든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어른들의 역할은 상처를 안입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잘 극복하고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내 아이를 괴롭힌 사람을 찾아 복수하는 일은 영화로도 흔히 만들어지는 주제이다. 경찰을 부른 엄마는 어쨌거나 속은 시원했을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니었다고 본다.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지지도 않았고 아이가 더 행복해하지도 않았다.


그해 그 햇살처럼 밝았던 아이들에게 우리는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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