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거대한 신화가 있다. 어떤 악인도 탕자도 크나큰 사랑과 헌신이 있다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확고한 믿음인데 대개는 엄마와 선생님이 이 신화의 주인공 역할을 떠맏고 있다.
나쁜길로 빠진 아이를 부모가 목숨걸고 데려온다던가 부모도 포기한 학생이 한 교사의 편애에 가까운 사랑과 감싸주어 '정신을 차리게했다'는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누구의 마음에든 하나씩은 자리잡고 있을것이다.
그들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했을까?
10년도 훨씬 전의 이야기다. 학생인권조례는 아직 없었고 선생님들은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숙제 안한 아이들의 손바닥을 때리고 담배 피는 아이들은 기합도 받고 했을 때였다. 학생들이 약자이던 시절이었다.
우리반에 키가 크고 잘생기고 덩치가 좋은 아이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머리는 좋지 않았고 가정은 불안했다. 항상 은은한 담배 냄새가 풍겼고 싸움을 잘했다. 말은 어눌했고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다. 친구는 없었다. 아이가 열다섯살이었는데 엄마는 서른넷이었다. 태어나서 두살때까지 엄마랑 살다가 이후에 아빠한테 보내졌다고 한다.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할머니가 키웠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자주 싸우고 사고를 쳤다.
그럴때마다 할머니 집으로 엄마집으로 떠밀리듯 맡겨졌다. 아빠가 들어오면 자주 때렸다고 한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할머니가 두 손을 들어 엄마가 맡아 키웠다. 엄마도 안정적이지 않았다. 집에 남자친구가 들락거렸고 학부모 상담을 할때도 담배 냄새에 찌들어 있었다.
아이가 불쌍했다. 어릴때부터 이리저리 옮겨다닌 삶이라니. 아이의 폭력성은 어른들의 잘못이다. 삶은 아이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엄마 역시 원치 않는 아이를 낳고 어린 나이에 고통받았을 것이다. 이 불쌍한 아이를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과 후에 자주 상담을 했다. 학교를 오지 않았을때, 담배를 피우다 걸렸을 때, 옆 친구의 물건을 빼앗았을때, 수업중에 게임을 하다 걸리거나 선생님께 대들었을때. 나는 아이의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빠를 만나고 왔는지, 엄마는 잘 돌보아 주었는지, 지적을 받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등을 물었다. 가끔 밖에 나가 밥도 같이 먹었다. 그 아이의 안타까운 삶을 돌봐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다. 이 아이가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일진짱의 머리를 수돗가에 처박아 버린 것이다. 영화에서 보듯이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타일에 두어번 내리쳤다. 많은 아이들이 급식실에 가려고 줄을 서 있을 때였다. 아이들이 소리치며 물러났고 몇몇 덩치 큰 아이들이 뜯어 말렸다.
곧 학폭위에 회부되었다. 이대로라면 강제전학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우리반 아이는 2학년때 전학온 외로운 늑대였고, 일진들은 마주치면 쑥덕거리거나 째려보면서 지나갔다. 무엇이 자극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반 아이가 먼저 공격했고 수위는 만만치 않았다.
담임 진술을 할 때 나는 위원들에게 간곡히 빌었다. 아이가 불쌍하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잘 할 수 있는 아이다. 다른 학교로 또 옮기면 잘 적응하기 힘들거다. 내가 최선을 다해 지도해 보겠다. 등등.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았던 희생적인 선생님들이 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저렇게 간곡히 말씀하시니 한 번 더 기회를 줘보도록 할까요?
다행히 강제 전학대신 등교정지, 교내봉사가 내려졌다.
뿌듯했다. 나의 애정과 노력으로 아이를 하나 구제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가 감사함을 느끼고 인생이 바뀌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아이는 담배를 끊을 수가 없었다. 체육 시간에 몰래 1학년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렸다. 사소한 일에 시비가 붙어 반 아이들을 툭툭 쳤다. 전학을 보내거나 징계를 내릴만큼 큰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아이를 피했다. 반 분위기는 점점 차가워졌다. (여차저차 고등학교는 진학을 했지만 얼마 못가서 퇴학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 큰 문제는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서 싸우는 일이 생겼는데 지난번 처분을 기준으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복도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를 벽에 친 아이도 전학을 가지 않았는데 왜 우리 아이는 이런 수준의 징계를 주느냐는 항의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징계 수준이 낮아졌고 학년의 생활지도가 엉망이 되었다.
학년부장은 그 아이가 교무실에 올 때마다 "그때 확 전학을 보냈어야 하는건데...."라며 혼잣말인듯 중얼거렸다.
드라마에서는 그런 사람이 악인으로, 아이를 기어코 감싸주는 담임선생님이 선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나는 아마도 좋은 선생님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의도한 것은 선의였던 것 같은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남은 기간 내내 괴로웠다.
그 아이의 마음에 감사 정도는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내 선택이 옳았다는 판단은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맞은 아이가 일진이었으니 적당히 넘어갔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우리반 아이만 생각했지 피해자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하지 못하는 근시안이었다.
교직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학생이 순식간에 바뀌는 극적인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의 긴 시간이 쌓여 현재의 자기 모습이 된다. 가정과 환경의 영향은 교육으로도 사랑으로도 쉽게 넘을 수없는 막대한 것이다.
내 개인적인 판단과 취향보다는 규칙과 질서를 먼저 지키는 것이 공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그 학생을 다시 만난다면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주겠지만 잘못에 대해서는 처벌 받는 것을 막아주지 않을 것이다.
학교는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나에게는 호의와 기적이 깃들기를 바라지만 세상은 공평하게 돌아가길 바란다. 내가 불쌍한 학생에게 베푸는 호의가 다른 이가 보기에는 특권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많은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인 것 같다.
지금의 교사들의 사랑과 헌신이라는 기대와 공정한 조정자라는 기대에서 적절한 선을 찾기 쉽지 않다.
내 아이의 문제에는 한없이 관대해줄 것을, 반을 운영할때는 공정하게 질서를 유지해줄 것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