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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아름다운 Apr 16. 2024

선생님 신고할게요.

남의 집 귀한 자식 10


한동안 스스로 꽤 유능한 교사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수업의 노하우도 쌓일만큼 쌓였고, 아이들의 상태도 척하면 알아서 적절하게 지도했다. 재미있는 놀이로 수업을 진행하고 행정적인 부분도 능숙하게 처리 할 수 있는 경력이 되었다 믿었다. . 



하지만 작년에 나는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문득문득 죽고 싶었고 갑자기 심장이 아파왔다. 교실 앞에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한참 누르다 들어가고는 했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나는 학생들에게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선생님, 우리반 00이가 선생님을 교육청에 신고해달라는데요."


"예? 신고요? 왜요?"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00이한테 욕했다고요."


"제가요? 무슨 욕을 했을까요? 전혀 기억이 없는데요."


"선생님이 수업중에 개새끼라고 했대요. 증인들까지 세명 데리고 왓어요. @@이랑, &&이랑, **이요."


"휴....이게 무슨 이야기인지......정말 어이가 없네요. 전 욕을 한 적도 없어요. 뭣땜에 그런줄 모르겠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한테 욕한거 사과하시래요."


"..............

선생님, 아이가 선생님한테는 뭐랬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수업 중에 욕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 사과할 것도 없어요. 신고하고 싶으면 하라고 하세요."



신고당할 일은 한 적 없지만, 아이의 기분이 상할만한 일은 했다. 벌점을주고 집에 전화해서 지도해달라고 말하기.


시작은 도서관이었다. 우리학교 도서관에는 공무직 사서선생님이 근무한다. 학교에는 공무직들이 많지만 책임자는 모두 정교사이다.

한 아이가 4월부터 매일 도서관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소란을 부리기 시작했다.무서운 것이 없는 중3이다.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장난이 심하고 말발이 좋아서 친구들을 놀리거나 선생님들 말꼬리 잡기를 잘한다. 왠만하면 다들 대응하지 않는 아이였다. ('무서워서 피하니? 더러워서 피하지'의 현실판이라고나 할까.)


서가 사이에 숨었다가 한 명씩 킬킬대면서 나오거나, 안보이는 곳에서 노래부르고 돌아가면서 기침하기, 도서관 끝에서 끝으로 뛰어다니기,  선생님이 조용히 하라하면 "저희 아무것도 안했는데요"라며 시침을 떼거나 '증거를 내놓으라'고 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cctv 까봐요'라고 대들었다. 또 한명을 지도하고 있으면 다른 아이가 장난을 쳐서 시선을 분산시키고 다들 도망가고는 했다.


처음에는 한 두명이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예닐곱 명이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에 들러 한바탕 휘젓고 나갔다. 정년을 앞둔 사서선생님이 스트레스로 잠이 오지 않는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점심 시간에 몇번 찾아가서 말로 타이르기도 하고 엄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교무실로 불러서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매일 찾아갈 수는 없었다. 

"샘, 제가 수업이 있어서 매일 도서관에서 지도할 수는 없어요. 말로 해서 안들으면 벌점을 주시거나,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하거나, 아님 부모님한테 연락하세요."


"제가 벌점을 주라고요? 아, 그건 안돼요. 선생님이 해주시면 안될까요? 제가 벌점까지 주기는 너무 .......그래요." 사서선생님은 우리학교에 근무한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이들을 혼내거나 벌점을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이들 지도에 부담을 많이 느끼시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두 차례에 걸쳐 주동자 아이에게 벌점을 주었다. 그래도 나아지지 않아서 담임 선생님에게 알리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아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은 지도하겠다고 했지만 문제 행동은 없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아이들이 찾아왔고 복도에서 사서선생님과 나를 큰소리로 조롱하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 시간이면 도서관에 찾아와 난장을 치는 일이 일부 아이들의 놀잇거리가 된듯했다. 결국 생활지도부장이 나서서 지도하고 한 번 더 같은 일이 반복되면 선도위로 보내기로 했다.




그 이후부터 주동자 아이가 있는 반에서 수업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그반 수업을 들어가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도서관에서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돌아가면서 기침하기, 물병던지기(이강인 3인방이 했던 그 물병 던지기다), 사물함에 물건 가지러간다하고 돌다가니기, 돌아가면서 노래부르기.  큰소리로 욕하기. 등등


"제가 뭘했는데요. 증거 있어요?"

"수업 중에 노래부르면 왜 안돼요? 기침도 하지 마요? 인권침해 아닌가?"

"저 선생님한테 욕한거 아니고 혼잣말한건데요.


내가 행동을 지적하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빙글빙글 웃으며 딱잡아떼었다. 다들 눈동자가 즐거워보였다. 

다른 선생님들한테 물어보니 남자선생님 시간이나 생활지도부장 시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기간제 선생님, 약해 보이는 여자선생님 시간에는 항상 난동을 부렸는데 그들을 그냥 참아넘기고 있었다.


"귀찮아. 그런애들 상대하면 뭘해. 지 인생 지가 망치는거지."

"전 여기 3개월 후면 그만두는게 그냥 참으려구요. 제가 뭐라고 했다가 더 날뛸까 무서워요."



나는 참지 않았다. 벌점도 주고, 소리도 지르고 한 번 더 그러면 수업 방해로 신고할거라고 위협도 하고, 한 명 한 명 옆에 가서 떠들지 못하게했다. 아이들의 행동을 하나하나수첩에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자 수업중에 난동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복도에서 큰 소리로 내이름을 노래처럼 부르는 아이들이 생겼다. 


그리고 주동자 아이가 담임선생님과 엄마에게 나를 신고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스로 교육청에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학생을 수업에서 분리해 줄 것을 요구했다.  


교감이 강력하게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자고 했다. 하지만 생활지도부와 교장은 학생에게 사과를 받고 사안을 정리하는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 역시 학생을 처벌한다는데 부담을 느꼈다. 좋은 선생님이라면 학생을 한없이 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다. 내가 무능해서 아이를 지도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활지도부장이 훈계하고 학생이 반성문을 써서 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 하기로 했다. 



생활지도부장이 방과 후에 지도한 다음날 아침 아이 엄마가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 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생활지도부에 불려가서 지도를 받고 왔는데 너무 힘들어 한다. 내가 지도할테니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달라. 상담도 싫고, 담임선생님과 이야기도 싫다. 반성문도 못쓰겠다라는 이야기였다.


모두 얼굴을 마주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처음 분리요구를 한 뒤 거의 한 달 가까이 흐른 시점이었다. 차일피일 미루다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린다고하니 학생과 학부모는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선생님을 신고하겠다며 위협했는데 도리어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린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듯 했다. 


그제서야 학부모가 사과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학생은 위원들 앞에서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며 따져물었고 받아들일 수 없다말했다한다. 





작년에 교권관련 이슈가 많았다. 한 초등교사의 죽음을 계기로 교사가 갑의 자리가 아니라 괴롭힘대상이 되는 일도 많다는것이 드러났다. 나도 서명에 동참하고 한여름 뙤약볕 아래 집회에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작년 가을을 지나고는 누구도 괴롭힘과 갑질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경력이 어떻고, 인품이 어떻고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사소한 이유로 재미삼아 타인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타겟이 될 수 있다. 



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기도 좋아하고 농담을 하며 수업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학생들이 모여서 웃고 있으면 무서워서 자리를 피하게 된다.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또다른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 
요즘 내가 마주하는 것은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일 뿐이라고 계속해서 나를 달랜다. 그리고 교단에 서 있는 한 가르칠 것은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가 없다.


요 몇년새 우리학교는 신규교사가 많이 늘었다. 퇴직자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교권하락을 경험하며 50대 중반을 넘기는 여교사는 거의 없다시피 한다. 젊은 교사들 역시 빨리 그만두는게 낫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조심스레꺼낸다. 



앞으로 누가 학교에 남아 있을까? 



교사가 힘을 잃은 자리에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지 않았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작은 폭군들이다. 그들은 쉬는 시간마저 우리 아이들 옆에서서 숨통을 조이고 괴롭힌다


교사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같은 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뻔하다. 당신의 아이가 괴롭히는 아이가 될 수도 있고,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어쨋든 모두가 교실이라는 한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오랜 날들을 지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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