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하고아름다운 Mar 05. 2024

어떤 씨앗

남의 집 귀한 자식 4 

대통령도, 살인자도 모두 거쳐가는 곳이 학교다. 온갖 군상들이 학교라는 연못에 모였다가 사회로 흩어져간다. 아직 미성년자, 학생라는 이름으로 같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씨앗들인지. 학교라는 밭에서 모두 좋은 나무가 되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들이 타고난 삶을 살아간다. 교육으로 그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아주 소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남자아이들이 위층 남자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고 우르르 교무실로 몰려왔다.

"화장실이 왜? 그럼 아래층 쓸래?"

"아니, 그런게 아니고. 저기"

아이들은 무척 난처해 보였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이 고자질쟁이가 될 수는 없는거니까.

"무슨 일인데 그래? 같이 올라가보자."

2층 남자화장실 앞에 아이들이 바글바글하다. 나를 보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뒤로 물러나거나 교실로 사라져 버린다.  두 명의 아이들이 화장실 앞을 막고있다. 사건이 있다하면 꼭 끼어있는 똘마니들이다.

"왜 화장실을 못들어가는 거야?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니예요. 샘은 그냥 갈 길 가세요."

내 앞을 가로막으며 위협적인 눈빛을 보낸다. 

고개를 기웃기웃하며 들여다보니 유리문 너무 아이들의 머리가 셋 보인다.

"왜 여자샘이 남자 화장실에 들어갈려고 그래요? 이거 성희롱 아니야?"

똘마니들이 큰 소리로 떠들어 댄다.

나는 다짜고짜로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소변 냄새가 확 끼친다.

"어딜 들어가요? 여기 남자 화장실이라구요."

나는 대꾸하지 않고 바깥에 구경하고 있는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 교무실 가서 선생님들 좀 오시라고 해"



한 아이가 화장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평소 헤헤 거리고 다니는 순한 아이다.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 앞으로 두 아이가 기세등등하게 서서 무어라 말하고 있다. 서 있는 두 아이는 뒤태만 봐도 누군지 아는 말썽쟁이다. 아니, 말썽쟁이라고 하면 너무 순한 느낌이다. 일진 아이들이다. 교무실을 밥먹듯이 드나든다.

"차가운 화장실 바닥에 왜 무릎 꿇고 앉아 있어. 나가자."

내가 앉아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끌었다.

일진 아이들이 즉시 달려들었다.

"우리끼리 할 말이 있어서 불렀는데 샘이 왜 상관이예요. 여기서 나가요. 여기 남자화장실이잖아요."

"할 말이 있으면 화장실 말고 다른 데서 찬찬히 해.

"아니, 할 말이 있어서 불렀는데 우리가 알아서 할건데, 샘이 왜 끼어들어요."

아이들이 기세등등하게 나를 향해 소리친다.

밖이 소란스럽고, 다른 여선생님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무릎 꿇고 있던 그 아이가 주춤주춤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딩동댕동"

고맙게도 종소리가 울렸다.

"그래, 그래, 알았으니 일단 수업 들어가. 할 이야기 있으면 나중에 다른데서 하자."

밖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이 제 교실로 흩어진다.

그런데 화장실에 안에 있던 아이 하나가 교무실로 따라들어온다.

"수업 들어가야지. 종 쳤잖아."

아이는 제 분에 못 이겨 몸을 부르르 떤다. 교실에 들어갈 낌새는 전혀 없다.


"아니, 지금 수업이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우리끼리 할 얘기가 있다는데 샘이 왜 중간에 방해를 하냐구요? 샘이 뭔데, 뭔데, 얘기도 못하게 해요? 예? 샘들이 그렇게 대단해요? 우리는 얘기할 자유도 없나구요?"

소리를 마구 질러대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와 제어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런 아이들은 항상 억울하고 분해한다.

교무실의 선생님들은 대부분 교실에 들어가고 부장과 나만 남아 있다.

비는 시간에 다음 시간 수업 준비를 해야하는데, 아이의 감정에 얽히지 말고 이성적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나도 짜증이 올라온다.

"뭔 얘기를 해야되는데 애를 화장실 바닥에 앉혀놔? 걔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얘기를 들어야돼?"

"그 새끼가 지나가면서 00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구요. 그랬으면서 사과도 안하고 실실 웃고, 그걸 가만 냅둬요?"

동네 건달도 아니고.

"어깨 부딪혔다고 화장실 바닥에 앉혔어? 다른 애들 못들어가게 망도 보게 하고? 지나가다가 어깨 좀 부딪칠 수도 있지. 네가 뭔데 그렇게까지 하는데."

"말했잖아요. 사과도 안하고 실실 웃고 갔다고. 샘이라면 그냥 둬요 그걸?"


사실 이 아이는 영리하지 못하다. 영리한 일진 아이들은 이렇게 대들고 화내고 소리치지 않는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온갖 학폭에 연루된 아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실은 행동대장 똘마니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구구단은 물론 한글 쓰기도 어려워할 때가 많다. 수업 중 말을 건네면 잘 못알아 듣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같이 이런저런 사건에 중심에 있다.


'샘 같으면 그냥 두겠냐'는 말은 아이의 세계가 꼭 그만큼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 이게 교사에게 따질 일이 아니고 말을 하면 할수록 본인에게 불리하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당장 하려고 했던 일(무릎 꿇히고, 욕하고, 때리고, 심하면 돈을 가져오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을 제지당한게 무척이나 분하고 억울한 상태인 것이다.     


남을 괴롭히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하는 건 아니다. 본능적으로 행동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행동이 저지당하는 순간 무척이나 분개하고, 억울해 한다. 처음에는 그 아이들이 무엇을 억울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자신들이 하려는 행동이 저지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려고 했던 것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저지 당하는 순간 분노가 미친 듯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날 퇴근하면서 오래오래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억울한 걸까?'

화장실에 친구를 무릎꿇혔던 아이는 결국에는 눈물까지 줄줄 흘리며 소리질렀다.

"선생님이 아이들 화장실도 못가게 하는게 인권침해인지 교육청에 전화해서 따지겠다"라는 말까지 한다. 아이의 인식정도가 안타깝다. 결국 나는 응대를 포기했다.     



오늘 나의 행동은 상당히 영웅적으로 보인다. 일진사이를 뚫고 들어가 학생을 구출해 오는 선생님. 

실은 이 글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고작 열네살, 중학교 1학년이다. 키가 160도 되지 않는 꼬맹이들이 어깨 부딪힌 아이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고, 둘은 망을 보고, 둘은 협박하고, 말리는 교사에게 왜 참견이냐며 따진다.

아직 어린 아이들인데 이렇게 분업을 해가면서 타인을 괴롭히는 것을 어떻게 배운걸까? 배워서 알게 된 일일까? 내면에서 나온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가 돈을 주고 시켜도 하지 못할 일이다. 



지금은 조그맣고 볼이 포동하지만 이 아이들은 순식간에 자랄 것이다. 일년에 키가 30센티씩 크는 아이도 있다. 이들의 키가 180센티가 넘어가고 몸통이 굵어지면 자그마한 여교사인 나는 오늘처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무서워서 일단 숨을 고를 것같다. 다행인 것은 중3 아이들은 이렇게 억울하다며 달려드는 경우가 적다. 학교를 다니면서 숱하게 제지당하고 처벌당하면서 그것이 문제 영역에 속하는 것을 알게 되면 좀 더 은밀하고 교묘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기 때문이다. 

이전 03화 그런 계산법은 안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