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귀한자식 3
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 배우는 것은 공부보다 다른 것인 경우가 더 많다. 작은 세상을 실습한다고나 할까. 사람이 각양각색인만큼 사건도 다채롭다. 가끔은 세상을 먼저 알아버린 영악한 아이들이 있다.
중학교 3학년. 우리반에 정말 천진난만한 개구쟁이가 둘 있었다. 혼날 때도 웃고, 넘어져도 웃고, 친구들이 욕해도 웃고, 밥먹을 때도 웃고. 아무 걱정없이 매일을 사는 듯 보이는 유쾌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세상살이에 영악하지는 못했다.
그 두 아이가 종례 후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샘, 지난번 수학여행에서 저희가 장난치다가 00이 휴대폰 망가뜨렸거든요."
"그래, 기억난다. 그때 휴대폰이 망가졌었구나."
두 아이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다. 처음에는 살짝 밀치는 정도였는데 점점 세지더니 끝내는 한 아이가 밀려 나자빠졌다. 안타깝게도 왼팔에 온통 문신을 해 토시를 하고 다니는 무서운 일진 아이를 덮쳤다.
"야, 너 죽었다."
"저 자식이 무서운걸 모르네"
주변 아이들이 웅성웅성하길래 장난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일진 아이의 휴대폰 액정이 깨졌다고 한다.
"그래서 저희가 변상하겠다고 했거든요. 근데요. 그게 좀 문제가 생겨가지고."
천진난만이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무언가 많이 억눌려진 모양이다.
"글세 백 만원을 달래요. 그거 나온지 2년 된 폰이거든요. 자기가 살때 백 만원주고 샀다고 백 만원 달라는데 말이 안되잖아요."
"아니, 2년 된 폰을 무슨 백만원을 줘요."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떨어지기 전에도 그 휴대폰은 이미 낡았고 사실 액정에도 한두줄 금이 가 있는 걸 나도 보았었다.
"백 만원? 그건 진짜 너무한데........"
"그니까요. 샘이 생각해도 너무한거 맞죠?"
"너희들 부모님한테는 말씀드렸어?"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말하면 혼날까봐."
"그래서 우리 둘이서 돈 모아서 갚아주려고 했거든요. 근데 백 만원은 진짜."
"걔가 이번주 내로 안갚으면 형들 데려 온다고 그러고."
당시 근무했던 학교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지역은 아니었다. 부모들은 돈 문제에 상당히 민감했다. 백 만원이나 되는 보상금을 부모들에게 선뜻 이야기하기는 힘들었을거다.
그렇다고 문신을 덕지덕지한 아이에게 따지지도 못하고 매일 같이 위협하거나 툭툭치는 일들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고했다. 기간은 다가오고, 무서운 형들이 온다는 말에 꽤나 맘을 졸였나보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상해있는 것 같기도 했다.
다음날 휴대폰 주인을 불렀다. 평상시 돈 문제에 예민던 아이다. 하루는 교복 앞주머니에 담배갑을 꽂고 왔기에 뺏었더니 '남의 사유재산에 왜 손을 대냐?'고 항의했던 일도 있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서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파는 것은 불법이지만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고, 그러니 학교에서 흡연 관련해서 처벌하는 것은 법과 어긋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휴대폰 관련해서는 본인은 백만원을 주고 샀다고 완강히 이야기한다.
"남의 폰을 망가뜨렸으면 새로 사주는게 맞잖아요. 백만원 안주고 어떻게 새 폰을 사요? 샘이 사 보실래요?"
그 아이 엄마와 통화 후 망가뜨린 휴대폰 기종의 현재 중고가격을 보상하기로 했다. 엄마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중고 가격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그리고 양쪽 부모들에게 전화해 자조치종을 말하고 보상액까지 이야기했다. 잘 지도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사과까지했다. 서로 이야기하면 편했겠지만 개인정보를 상대에게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 예상치 못한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천진난만이들도, 나도 세상을 하나 배웠다. 타인의 실수을 이용해 자신이 이익보려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 그들을 고치는 것보다는 자신이 조심하는게 빠르다.
이정도로 이야기하고 넘어가게 된 것은 내가 알게되어 중간에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상 친구에게 뭔가 꼬투리를 잡혀 천 원, 이 천원, 오 백원씩 주다가 합계가 50만원, 백 만원이 넘어가서야 신고하는 경우들을 꽤 보았다. 대부분의 경우 돈을 뺏아간 아이들은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였던 경우가 많다. 약점을 잡는 순간, 그 약점에 친구가 넘어온 순간, 친구가 아닌 채무자로 관계가 전환된다. 처음에는 샤프를 망가뜨렸다던가하는 사소한 일이지만 점점 별일 아닌걸로 꼬투리를 잡고 요구하는 액수가 커진다. 초등학생들은 부모님과 교사에게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들이 다 컸다고 생각해 혼자서 해결하려 한다. 어른들에게 말하는 것을 비겁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고, 부모님들에게 혼나는 것이 무서워 숨기기도 하다보니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져서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다 컸으니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꼭 어른들과 상의해라."라는 말을 평상시에 해 주세요)
학교에서 좋은 경험만 쌓는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학교도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