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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하고아름다운 Feb 20. 2024

응, 너네 아빠 둘!!

최근들어 교사로서 가장 많이 느끼는 감정은 무력감, 무기력함이다. 선도위나 학폭위감은 아니지만 누가 봐도 옳지 않은 일이 발생할때 어디까지 지도해야하는지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 이렇게 하면 신고당할 것 같고, 저렇게 하면 무시당할 것 같고, 그렇게 하면 논란이 될 것 같고. 반항하거나 싸우자고 덤비면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저렇게 눈치를 보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남는다. 그럴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보호가 필요한 약한 아이들이다. 


  초등 3학년 때 엄마가 재혼한 아이가 있다. 새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도 생겼다. 두 아이의 성이 다른 것이 문제가 될 것 같아 엄마는 개명신청을 했다. 새학기가 시작되면서 새이름으로 불러줄 것을 학교에 요청했다. 담임선생님은 반아이들에게 새이름을 알려주었는데 이것이 놀림의 시작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생부가 개명신청을 거부해서 출석부와 생활기록부에는 여전히 옛이름이 적혀있다.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남자아이들이 단체로 툭툭치고 놀리며 이 여자아이를 장난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여자 아이가 발끈하기라도 하면 더 재미있어했다. 

 

중학교에 와서도 놀림과 장난은 계속되었다. 여러차례 문제가 되어 나까지도 사건을 알 정도였다. 

 어느날 그 여자아이가 있는 반에 보강을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전교에서 제일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은 남자애와 같은 반이었다. 갑작스러운 보강이어서 자습을 시켰는데 아이들은 지루해서 몸을 꼬고 있었다. 

 목소리 큰 그 남자아이가 화장실을 가겠다며 일어서더니 책상 밖으로 삐죽이 나온 여자아이의 발을 툭 찬다.     

“김00, 발 치워! 드러워!” 

“왜 차고 지랄이야 이 개새끼야.” 

여자아이도 지지 않는다. 

 남자아이는 신난다는 듯 한마디 덧붙이고 나간다.     

 “응, 니 아빠 둘”     

순간적으로 나는 몸이 얼어붙었다. 저런 개인적이고 모욕적인 말을 여러 사람이 듣는 곳에서 하다니. 여자 아이를 도발하기 위해 발을 찬게 틀림없다. 

     

교실 문 앞에서 화장실 간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한마디했다.      

“아니, 걔네 아빠가 둘이라서 둘이라고 했는데,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왜 나한테 그러세요?

쟤가 저한테 개새끼라고 한 건 괜찮아요?“     

 복도가 울리도록 소리를 지른다. 다행히 교실문들이 꽁꽁 닫겨 있기는 하지만 움츠러드는건 오히려 내 쪽이다.      

 어쨌든 나는 네가 한 행동이 옳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벌점을 주었다. 아이는 여전히 억울해했다. 

"내가 거짓말한 것도 아니고, 왜 벌점을 주냐구요?아니,  쟤는 대놓고 욕했는데, 쟤도 벌점 줘요. 아, 진짜 억울하네."

다른 아이들이 소리치는 아이를 쳐다보며 킬킬대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저 아이들이 여자아이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수업이 끝난 후에도 교실에서 다른 일을 하는척 하며 머물렀다. 우르르 몰려나간 남자아이들은 복도 끝에 모여서 뭐라고 소리 지르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지도하는게 좋은 방법이었을까? 혼자서 시뮬레이션을 짜봤다. 


1. 남자아이 부모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한다.

 - 죄송하다며 아이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면 다행이지만 다른 엄마들에게 여자아이네 집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의도치는 않았지만 남의 집 알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동네에 퍼지는 시발점이 내가 될 수도 있다.      


2. 선도위에 보내서 징계를 준다면 어떨까?          

"야? 너 왜 선도위갔어."

"김00  아빠 둘이라고 했다고."

"걔네 아빠 둘이야?  뭔데 뭔데?"


입이 싼 남자아이 덕에 더 많은 아이들이 알게 될거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서로 잠깐 말싸움한 걸로는 애초에 선도위를 열 수가 없다. 피해자 부모가 적극적으로 처벌을 원해야하는데 여자아이 부모님이 소문나는 걸 감수하고 처벌해달라고 할까?     

여자아이의 엄마도 이런 일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고 했다. 두 번 째 결혼 역시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는 여전히 돈을 벌러 나갔고 둘째를 키웠고 남편은 전남편의 딸에게 냉정하다.   

 

담임도 아니고 교과교사도 아니니 담임에게 이야기하는 선에서 끝내기로 한다. 오랫동안 이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했어야 이 악순환을 멈출 수 있었을까? 나에게 그런 힘이 있는건가? 


도덕은 재미없고, 재미있는 일들은 자극적이다.  여자아이를 놀리는 것은 어지간해서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괴롭힘과 놀림은 끊임없이 지속되다 1년 후 남자아이 여럿이서 여자아이 뺨을  때려서 결국 징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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