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앨리스, 남초회사에 등장하다

제육볶음 나라의 신입 앨리스 #1

by 생각할 윤

지루하고 따분하던 어느 날, 고된 취준생 생활에 힘이 부친 앨리스는 책상에 널브러져 있었다. 잠이 스르륵 오던 그때, '띠링' 하는 알림음과 함께 메일 한 통이 왔다. 메일을 열어보니 굵은 글씨로 크게 쓰여진 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신입사원 채용전형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그 문구를 따라가니 어느새 앨리스의 목엔 사원증이 걸려있었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는 오피스 입구에 있었다. 누군가가 급히 닦아놓은 듯한 빈 책상에 앉은 순간, 낯선 세계에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긴장을 바짝 한 입사 1일차 앨리스는 팀원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는다. 아직은 눈동자에 생기가 돌고, 회사의 때가 묻지 않은 앳된 모습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제법 무게감과 원숙미가 느껴지는 남자 직원들이 수두룩 앉아 있다. 움직일 때마다 남자 스킨 냄새, 남자 향수 냄새가 틈틈이 풍겨 온다. 그 속엔 텁텁한 연초 담배 냄새도 섞여있다.


쭈뼛대며 자리에 앉은 앨리스는 새로 받은 노트북을 투닥투닥 두들겨 본다. 컴퓨터 셋팅 메뉴얼을 보며 떠듬떠듬 회사 계정을 만드는 중이다. 투박한 메뉴얼을 따라가다 보니 막다른 길에 막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옆자리 사수를 흘끗 보니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표정을 보니 누가 봐도 '바쁘니까 가급적 말 걸지 마세요.'라는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용기를 내어 물어볼까 싶으면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다시 눈치가 보여 다시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아무리 봐도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숨만 나온다.


"이렇게 써놓고 나한테 보고를 한 거야? 나랑 장난해 지금?"

팀장이 고 대리를 혼내는 소리가 들린다. 대충 내용을 들어보니 보고서가 부실했던 모양이다. 잔뜩 혼난 고 대리는 한숨을 쉬며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다른 흡연자 팀원들도 고 대리를 뒤따라 나가면서 사무실에는 앨리스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되었다.


팀장님을 포함하여 열명 정도 되는 팀, 그것도 팀원 모두가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걸친 남성으로 이루어진 팀에 20대 여자 신입사원이 입사한 것은 꽤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입사하기 전날, 팀장님은 회의실에 팀원들을 모아놓고 몇 가지를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첫째, 신입사원에게 사적인 질문과 연락은 삼갈 것.

둘째, 신입사원에게 회식자리 참석을 강요하지 말 것.

셋째, 신입사원과 적정한 신체적 거리를 유지할 것.


팀장님이 엄포를 놓은 사항들에는 '제발 회사를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는 사고를 치지 말라'라는 큰 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 덕분에 팀원들과 앨리스 사이에는 보이지 않은 경계가 있었다. 팀원들의 눈에는 저 신입사원이 어떤 사람인지 잔뜩 궁금해하는 호기심이 보였지만, 그 경계를 넘지 않으려 애써 궁금증을 삼키는 것이 보였다. 그들에게 앨리스는 다른 세계에서 온 이방인이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퇴근하는 길, 앨리스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녀가 이 낯선 세상 속에서 그들과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누군가는 굳이 회사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가 있냐며 그 거리감을 즐기라고 했지만 일말의 동료애는 있어야 조금 더 일할 맛 나는 회사생활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팀원들이 그어놓은 선을 뛰어넘고,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지루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끼굴에 뛰어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그때의 앨리스는, 아니 나는 몰랐다. 남초회사에서의 생활이 이렇게나 다이나믹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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