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을 Eat 하거나, Drink 하거나

제육볶음 나라의 신입 앨리스 #2

by 생각할 윤

주변 남자 지인들을 만나게 되면 이 질문을 종종 물어본다.


Q.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소울푸드는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대부분 돈까스, 제육볶음, 순대국밥 이 셋 중 하나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음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남초 회사 직장인의 데일리 식단이 된다. 이는 남초 회사에 들어온 여자 신입사원에게도 적용이 된다. 주어지는 선택은 두 가지뿐이다. 음식을 먹거나, 마시거나.




입사 둘째 날, 점심시간이 되자 팀원들과 함께 회사 밖으로 나왔다. 옆에 있던 한 과장님이 내게 물었다.

"앨리스 씨, 뭐 먹고 싶어?"

겨우 입사 2일 차인 신입사원이 답하기엔 고 난이도의 질문이다. 어쩔 수 없이 '아무거나 다 좋아요.'라는 가장 보편적이나 가장 비효율적인 답을 내놓는다. 한 과장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옆에 있던 고 대리님을 쳐다본다. 눈치 빠른 대리는 그들은 '거기 갈까요?' '거기 괜찮지.'라는 암호 같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일사천리로 메뉴를 정했다.


도착한 곳은 꽤 커 보이는 고깃집.

'아니, 점심부터 고기를 구워 먹는다고? 여기 돈 많은 회산가?'

회사를 잘 들어온 것 같다고 뿌듯해하며 식당으로 들어섰다. 점심시간임에도 사원증을 매고 있는 직장인들로 북적였다. 6명이서 테이블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메뉴판을 가져왔다. 삼겹살, 목살, 차돌박이 등 화려한 고기들의 라인업에 제법 마음이 설렜다.


"메뉴 정했어요? 고르면 말해줘요."

2번째 질문이 들어왔다. 이제는 신속히 답을 해야 할 타이밍이다. 너무 비싸지 않으면서 다 좋아할 만한 삼겹살이 낫겠다 싶어 '저는 삼ㄱ'을 말하던 찰나였다.

"음, 저는 제육이 괜찮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아, 오른쪽 페이지에 있던 점심특선 메뉴를 미쳐 보지 못하였다. 점심특선 메뉴 먹으러 온 거였구나. 그럼 그렇지.


점심특선 메뉴에는 제육볶음 정식, 김치찌개 정식, 된장찌개 정식이 있었다. 과장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저도 제육이요.' '저도요.'라는 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다. 모두가 만장일치로 제육볶음을 고른 상황에서 나의 선택지는 무엇일까? 결국 6개의 제육볶음을 주문하는 것으로 메뉴 릴레이를 끝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6인분의 제육볶음 접시와 공깃밥이 나왔다. 마치 제육볶음 공장럼 음식이 순서대로 놓여졌다.


음식이 놓이자마자 '맛있게 드십쇼!'라는 외침과 함께 여러 젓가락들이 부지런히 춤을 췄다. 팀원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식사에만 집중했다. 그나마 나오는 얘기들은 나에 대한 시시콜콜한 질문들 정도. 그 질문들에 부지런히 답변을 하고 부랴부랴 제육을 두 입째 먹었을 때, 팀원들은 제육볶음 절반을 해치운 상태였다. 급하게 두세 숟갈을 한 번에 떠먹었지만 슬슬 식사를 마친 팀원들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음식을 씹은 게 아니라 음료처럼 마신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점점 한 명씩 앞치마를 벗고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핸드폰을 본다. 식사를 마쳤다는 신호이다.

"앨리스 씨, 천천히 먹어요. 우리가 빨리 먹는 편인거지, 앨리스 씨가 느린 거 아니니까 걱정 말고."

결국 나는 배부르다고 말하며 절반도 못 먹은 음식 옆에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음식이 나온 지 대략 15분 만에 식당을 나왔다. 배는 애매하게 찼고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점심시간 1시간이 결코 부족할리 없는 '남초 회사점심 타임어택'이구나.


이렇게 점심 타임어택은 꾸준히 진행되었다. 종 제육볶음 외에도 '순대국밥 타임어택'과 '돈까스 타임어택'이 종종 진행되었다. 놓여진 음식들 볼 때면 나에게 이렇게 묻는 듯 하다.

'Eat me? or Drink me?'

초짜 신입은 아직 음식을 마실 수 없어 먹는 것을 선택했다. 식당을 나올 때면 애매하게 허기진 배가 나를 따라다녔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을까. 타임어택에 조금 적응이 된 나는 나름의 팁이 생겼다.


1. 최대한 메뉴를 통일해서 음식 빨리 받기

2. 팀원보다 내가 먼저 음식을 받으면 양해 구하고 먼저 먹기

3. 묻는 질문에만 대답하고 묵묵하게 밥 먹기


그렇게 신입사원 앨리스 점심시간이 되면 묵묵하게 열심히 먹었고, Eat me와 Drink me를 골고루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그녀의 배는 커지고 작아지고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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