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육볶음 나라의 신입 앨리스 #3
와, 이대로는 못 버티겠는데.
입사 3개월 차, 시간이 지남과 더불어 몸무게가 확 늘었다. 원인은 빠르게 먹는 탄수화물 폭탄 점심과 부쩍 잦아진 저녁 회식. 이대로 가다가는 손 쓸 수도 없이 몸이 커질 것만 같았다. 그때 결심했다. 회식은 빠지기 어려우니 점심시간 만이라도 자유를 얻어야겠다고.
우리 회사는 부서마다 점심시간 문화가 다르다. 어떤 팀은 다 같이 먹는 것을 선호하고, 어떤 팀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한다. 보통은 후자를 선택하는 팀이 많지만 우리 팀은 전자를 선택하는 몇 없는 팀이었다. 팀장님을 비롯해 시니어급 팀원들은 팀의 유대감을 중요시했다. 주니어 팀원들도 이를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이 틈에서 신입사원이 밥을 따로 먹겠다고 하면 감히 팀의 문화에 반기를 드는 것일까 봐 며칠을 주저했다. 하지만 '밥을 편하게 먹을 자유'를 얻기 위해서라면 용기를 내야 했다.
"식사하러 가시죠~"
행동파 한 과장님의 한 마디에 팀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면서 점심시간이 시작된다. 이때다 싶어 용기를 내어 한 마디를 뱉었다.
"저는 당분간 따로 먹겠습니다."
팀원들이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진짜요? 왜요?"
"아, 요새 살이 너무 쪄서 샐러드 먹으려고요."
팀원들은 별다른 기색 없이 알겠다고 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오? 생각보다 별거 없네. 다행히 점심시간 독립선언은 성공적이었다. 혼자 구내식당으로 가서 샐러드를 받아 왔다.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 이 시간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점심을 이렇게 천천히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물론 그 누구도 강요를 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온전한 자유는 참 달콤했다.
그로부터 2주 정도 지났을 무렵, 여느 날과 똑같은 점심시간이었다. 나는 구내식당으로 내려가려던 찰나, 고 대리님의 말이 들렸다.
"오늘 밖에 나가기 귀찮은데 그냥 구내식당 어떠세요? 앨리스 씨, 같이 먹어요!"
입사 이래로 팀원들이 구내식당에 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팀원들은 각자 구내식당 메뉴를 받아온 후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당혹스러운 마음과 함께 샐러드를 빠르게 삼켜 넘겼다. '혹시 계속 이렇게 먹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예감은 일부 들어맞아 가끔씩 구내식당에서 팀원들과 같이 먹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겨버렸다. 나의 독립선언은 이렇게 실패로 돌아가는 듯했다.
며칠 후, 대다수의 팀원들은 출장을 가고 한 과장님과 나, 둘이서만 사무실에 남았던 날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올수록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아, 혼자 먹고 싶은데. 그냥 혼자 따로 먹겠다고 할까? 좀 그러려나.. 과장님께 둘이 같이 먹자고 해야 하나?'
오랜 내적갈등 끝에, 자유보다 신입사원의 책임을 선택했다. 과장님은 웬일로 밥을 같이 먹냐며 무심히 말하셨지만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보였다.
회사 건물 지하에 허름한 백반집에 들어왔다. 김치볶음밥 2개를 주문을 하고 자잘한 스몰토크를 하던 중, 과장님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꺼냈다.
"앨리스 씨,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밥 따로 먹는 게 불편한 팀원이 있어서 그런 거야?"
생각지 못한 질문에 놀란 나는 강한 부정을 한 뒤, 잠시 대답을 고민했다. 혹시나 또 다른 오해를 부르기 전에 어느 정도는 솔직한 대답을 말씀드려야겠다 싶었다. 원하는 음식을 먹고 싶기도 했고, 밥을 혼자서 천천히 먹고 싶어서 따로 먹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우려했던 반응과는 달리 과장님은 편한 얼굴로 말하셨다.
"아아, 다행이네. 나는 뭔 일 생겨서 갑자기 따로 먹나 걱정했지. 우리는 말 안 하면 잘 몰라. 혹시 또 불편한 게 있으면 편하게 얘기해 줘."
과장님은 고 대리님이 갑자기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자 하신 것도 혼자 밥 먹는 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셨다. 그러고는 '속으로 앓지 말고 편하게 말해달라'는 말을 한번 더 덧붙이셨다. 그 말을 들으니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한 번에 밀려왔다. 무심한 듯한 남초 회사의 점심시간 속에도 정이 있었다. 많은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쁜 일상 속에 밥 한 끼 같이 하는 것, 선을 지키되 정이 쌓여지는 방법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독립선언은 얼마 안 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밥을 편하게 먹을 자유'는 지켜졌다. 팀원들도 나의 속도, 먹고 싶은 메뉴를 맞춰주려고 하셨고, 나도 일부러 혼자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평화로운 점심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