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회사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방법

제육볶음 나라의 신입 앨리스 #6

by 생각할 윤

사무실에는 많은 대화가 오간다. 그리고 많은 감정이 오간다. 트여있는 공간이라는 특성상 내가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대화들이 있다. 특히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혼나는 대화를 듣게 되면 이걸 들어도 되나 싶다. 주니어급뿐만 아니라 시니어급도 혼이 난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시니어급에게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실수에는 신랄한 비판이 가해진다.


그날은 7년차 강 대리님이 그 신랄한 비판을 들은 날이었다.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심각한 이슈가 발생하자 팀장님은 그 담당자인 강 대리님을 자리로 부르시고는 크게 화를 내셨다. 실수에 대한 지적만으로 충분할 텐데 그와 무관한 지적들도 날아왔다. 강 대리님은 묵묵히 그 화를 듣다가 죄송하다는 말을 끝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늘 긍정적인 강 대리님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팀원들은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을 들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팀 막내는 무슨 일을 해야 하나 눈치가 보였다.


팀장님이 자리를 비우자 한 과장님이 강 대리님에게 다가갔다.

"강 대리, 담배 피우러 가자. 오늘 다 외근 나가서 같이 필 사람이 없네."

두 분은 터덜터덜 흡연장으로 향했다. 사실 강 대리님은 비흡연자였다. 비흡연자를 왜 굳이 데리고 나가는 것이지? 가뜩이나 기분 안 좋으실 텐데. 의문이 들었다. 두 사람은 20분 정도 후에 커피 한 잔을 각자 들고 사무실에 들어왔다. 강 대리님의 얼굴이 아까보다 밝아보였다. 나중에서야 알았던 사실은, 한 과장님이 굳이 강 대리님을 데리고 나갔던 것은 잠시나마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일부러 시간을 마련한 것이었다. 서로에게 인색할 것이라 생각했던 남초 회사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깨졌던 순간이었다.




갓 신입사원 딱지를 뗀 나도 경우에 따라서는 업무 실수에 대해 잔뜩 혼이 날 때가 종종 있다. 임원에게 보고될 자료에 타 팀과 협업한 내용을 적다가 잘못된 단어를 적어버린 바람에 그 팀의 대리님께 세게 꾸중을 들은 적이 있었다. 살면서 딱히 혼이 나본 적이 없는 삶을 살다가, 순식간에 문제아로 전락해 버린 것만 같아서 괴로웠다. 화장실 구석칸에 들어가 펑펑 울고 나왔더니 어느덧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시점이었다. 빨갛게 부은 눈이 부끄러워서 최대한 팀원들을 마주치지 않고 자리로 가던 찰나, 복도에 모여서 업무 얘기를 하고 있던 팀원들과 딱 마주쳐버렸다. 왜 울고 있냐며 놀란 눈빛으로 다가오셨다. 아뿔싸, 너무 민망하면서도 걱정해 주시는 팀원들이 내심 고마웠다. 결국 겨우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며 이러저러한 실수를 해서 혼이 난 것을 말씀드렸다.


"아니, 신입이 실수하면서 크는 거지 그걸로 혼내는 게 말이 되냐? 지는 뭐 실수도 안 하고 대리 달았대?"

팀원들은 당사자가 된 것 마냥 나를 대신하여 화를 내주었다. 그러고 누군가의 책상에서 휴지를 한 움큼 뜯어와 내 손에 쥐어 주셨다. 한 과장님과 강 대리님은 눈짓을 주고받더니, 나에게 저녁일정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딱히 일정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들은 말했다. 기분이 더럽고 짜증 날 때는 '술'이라는 최고의 기분전환이 있다고. 그렇게 우리 셋은 집으로 가지 않고 치킨집에 갔다.


눈 깜짝할 새에 메뉴 주문이 들어갔고, 물컵과 포크를 세팅했더니 치킨과 맥주가 나왔다. 치킨을 먹으면서 우리는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억지로 무언가를 묻지도 않았고, 억지로 사담을 꺼내지도 않았다. 퉁퉁 부은 눈으로 입만 웃고 있는 나에게 그저 과장님과 대리님이 내게 몇 마디를 건네줄 뿐이었다.


"아저씨들만 있는 곳에서 고생 많아요. 회사라는 곳은 어쩔 수 없이 기분 더러운 일이 많은데, 그럴 때는 속으로 상대방 욕 시원하게 해 주고 훌훌 털어야 해요. 걱정 마요."

"강 대리도 저번에 팀장한테 털리는 거 봤잖아. 우리도 다 실수해. 잘하고 있으니까 걱정 말어."


그 몇 마디가 든든한 위로가 되었다. 아직은 말랑한 마음이 지적에 무뎌질 만큼 단단해지기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분들과 함께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격하고 무심하게 느껴졌던 남초회사에 속에도 속정이 담긴 위로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험난한 회사생활을 견디고,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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